지난 2일,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3월 학교 현장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언론에 공개하고 시연 행사를 열었다. 이는 세계 최초로 공교육에서 모든 학생이 사용하는 AI 교과서가 선을 보인 것이다. 내년부터 각 학교에서는 초3·4학년 수학·영어, 중1·고1 수학·영어·정보 과목의 AI 교과서 76종 가운데 원하는 것을 골라 종이 교과서와 함께 가르치게 된다.
이날 시연은 초4·중1 영어 교과서 2종으로 진행됐으며, 발음 교정부터 문법 교정까지 AI 교과서가 학생별 수준과 진도에 맞춰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이 중점적으로 소개됐다. ‘AI 챗봇’은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답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과 부적절한 대화를 주고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교과서 내용과 관계없는 질문을 하면 ‘교육과정 내에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또는 ‘수업과 관련 있는 질문만 해주세요’라고 뜬다.
학부모들은 AI 교과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게임이나 소셜미디어 등 ‘딴짓’을 할 것이라는 걱정을 가장 많이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 교과서는 대부분 ‘딴짓 예방 기능’을 넣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헌법 가치를 부정하고 역사 왜곡 문제까지 불거졌는데도, 당국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다고 지적한다. 교육 효과가 검증되지 않고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문제투성이 교과서를 왜 서둘러 도입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차 검정을 통과한 AI 교과서에 탑재된 AI 챗봇이 ‘독도는 영유권 분쟁지역’으로 답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챗봇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도 잘못된 답을 내놨다고 한다. 시연회를 본 현장의 교사들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쓴다는 점만 빼면 사교육 프로그램과 큰 차이가 없고, 수업 효용성도 당장 알 수 없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육부가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 교육 격차 해소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일부 사교육에서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공교육에 이식했으니,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학생은 중위권 이상의 학생들이고, 격차가 벌어진 학생은 교사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교원 연수에 활용된 AI 교과서가 실제 도입되는 것과 차이가 있어 적응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실혁명 선도교사 연수를 필두로 한 AI 교과서 연수는 지금까지 완성품 없는 프로토타입만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며 “AI 교과서 적용이 예고된 학년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 과제’ 보고서를 통해 해외에서는 교과서나 교육 자료를 정부에서 정해주는 경우가 적다며 AI 교과서를 의무 사용이 아닌 ‘교육 자료’로 도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학교에서 전자책 형태인 ‘디지털 교과서’를 연방법 규정에 따른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 자료’로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당장 정규 교과서를 도입하기보다는 일단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검증을 거친 후 교과서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AI 교과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 AI 의존도가 심화하면 창의력은 물론 학습 욕구도 떨어질 수 있다. AI 교과서 채택은 급히 서둘기보다 좀 더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다.
전병열 기자 ctnewso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