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풀꽃같이 사는 국민시인 풀꽃시인 ‘나태주’

풀꽃같이 사는 국민시인 풀꽃시인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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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풀꽃문학관 전경

글 사진 / 최해혁 『월간 모빌리티』 발행인

2024년 10월 7일 한국잡지협회 발행인 문화기행 동호회(가칭) 회원들이 공주와 세종시 문화기행을 다녀왔다. 공주에서 국민시인, 풀꽃시인으로 불리는 나태주(羅泰株) 시인을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만났다. 나태주 시인을 뵙기란 강연이 많아서 쉽지 않은데 쾌히 승낙을 받아 귀한 간담회가 마련되었다. 나태주 시인은 한해 200여 차례가 넘게 전국을 다니며 문학 강연을 한다. 그만큼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나태주 시인이 지금까지 낸 시집과 작품집을 헤아리면 우리나라 시인 중에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한국시인협회 회장도 하셨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제일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공주풀꽃문학관 측면

나태주 공주풀꽃문학관은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아담한 일본식 목재가옥이다. 1930년대 지어진 건물인데 지금은 공주시가 소유하고 있다. 공주시는 문화재 보호 및 활용 차원에서 2014년 10월 17일 공주풀꽃문학관으로 단장하고 개관했다. 문학관이 내부가 낡고 협소하여 현재 문학관 뒤에 나태주 문학창작 플랫폼 조성사업으로 신축 문학관 건물을 짓고 있다. 총사업비 69억원(국비21억원)으로 대지 463평에 건평 288평(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올해 말 준공예정이다. 이 신축 건물이 개관하면 보다 많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많은 방문객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나태주 시인은 1945년 충남 서천군 시초면 초연리 홍현마을에서 출생했다. 소작농이던 아버지 나승복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초초등학교, 서천중학교, 공주사범학교(공주교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 졸업하고, 1987년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심리 및 교육방법 전공으로 교육학 학위를 취득했다. 공주사범학교 졸업 후 1964년 경기도 연천군 군남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43년간 교직 생활을 했고,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에서 정년 퇴직했다. 퇴직할 때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나태주 시인 강의

2007년 정년 퇴직한 후에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공주문화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공주풀꽃문학관 소속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43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공주중앙장로교회 명예집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소개하기 위해 간증 집회도 나간다. 무엇보다 평생을 풀꽃처럼 살아온 국민 시인이란 점에서 더욱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 같다.

나태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는 ‘풀꽃’ ‘행복’ ‘사랑은 담합이다’가 있다. 풀꽃은 현대 시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다. 그래서 ‘풀꽃시인’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고 쉽고 단순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시에는 시인의 인생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오랜 기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서 시어가 마치 천진한 아이처럼 순수하고 솔직하다. 소탈하고 가슴에 확 다가오는 감동이 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가 나태주 시인의 시향이다.

언제 읽어도 그의 시는 쉽고 간명한 시어들로 잔잔한 감동으로 위로감을 준다. 팔순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소년 같은 맑은 눈빛을 간직한 채 한 줄 한 줄 흐르는 시어는 푸르름과 청순미를 갖게 한다. “저는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아니에요. 늙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한테 좋은 시로 위로해 달라는 강연 요청이 전국에서 들어오네요. 좋은 시란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는 것, 외로울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아닐까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세대와 장벽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고 보듬고 쓰다듬어준다.

나태주 시인의 친필 사인하는 모습

나태주 시인의 주옥같은 말씀을 듣다 보니 어느새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나 시인이 갑자기 풍금 쪽으로 갔다. 여러분 함께 불러볼까요? 3장의 악보를 나눠주었다. 『오빠 생각』 『엄마야 누나야』 『과꽃』 노래 악보다. 이 동요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부르던 노래들이다. 나태주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니, 마치 우리가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도 비쳤다. 오늘 우리가 나태주 시인을 만나서 노래 불렀다는 것은 우리에게 오랜 기간 잊지 못할 큰 선물을 주신 것이다. 요즘 몸이 많이 아프시다고 한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며 우리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돌아서는 귓전에는 아직도 나태주 선생님의 풍금 소리가 맴도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