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에세이 l 새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떠올리다

전병열에세이 l 새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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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자식 사랑보다 더 큰 어머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때는 몰랐다가 아내의 모습에서 새삼 그 당시를 회상하며, 불효자식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민다.”
전병열 정치학박사/수필가

“당신 새벽부터 뭐해요?” “절에 갔다가 기도 마치고 공주 밑반찬과 김밥 가져다주려고요, 청소도 하고,”

모처럼 아내와 휴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늦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새벽부터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오늘 일요일’이라고 볼멘소리를 높였더니 식당에서 들려온 아내의 목소리에 피로가 묻어있다.

“오늘 좀 쉬라고 했잖아요?” “공주가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독서실에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쉬어요.” 그동안 아내의 건강이 염려스러워 만류도 했지만,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끔찍한 딸애 사랑은 맹목적이고 헌신적이다. 딸애의 행복이 마치 자신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물론 모든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고금을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곁에서 직접 느껴보는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아침 7시 기상에서부터 밤 11시 귀가 시간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챙기고 일주일에 2번씩 딸애 원룸으로 찾아간다. 방문 하루 전에는 딸애가 먹을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다. 딸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방 구석구석 쓸고, 닦고, 씻고 온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 4시면 기상해서 절에 갈 준비하고, 1시간을 넘게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서 도착해 12시까지 기도에 매달린다. 운전에 신경 쓰다 보면 기도에 열중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극성이라는 생각에 만류도 해보지만, 헌신적 사랑을 막을 수가 없다.

“우리 공주도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학교와 학원, 독서실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애처롭기 그지없잖아요. 물론 우리 애만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아내의 불만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하기야 20여 년을 넘게 학업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생각할 때는 가슴이 먹먹하기도 한다. 부모의 정성과 희생이 아이들의 성공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을까. 그저 정서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지만, 마음만이라도 딸애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평가해 줄 수밖에 없다. 최근에도 자신의 육신을 방패로 자녀의 생명을 구한 고귀한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언론보도로 접하고 있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다.

역설로 최근 언론에 영유아 살해 유기 사건들이 헤드라인으로 보도돼 시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자식에 대한 희생과 비정함이 극한 상황으로 대비돼 혼란스럽지만, 위대한 어머니 사랑은 영원불변이다. 맹목적인 헌신이기에 가능한 일로, 그야말로 자식에 대한 순순한 아가페적 사랑의 구현이다. 아내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불현듯 나의 어머님과의 추억이 소환된다. 오직 자식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다. 그 당시에는 엄마로서 당연히 그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지, 조금도 안쓰러운 마음이 없었다. 그때 지금 아내에게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면, 후회막급이지만 어머님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다.

흉년이 들어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뙤약볕에서 김을 매다 땀범벅이 돼 들어오셔서 우리 점심으로 보리밥과 고구마를 챙겨주시면서 당신은 냉수를 들이켜고, 배고프지 않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려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삼 어머니와의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학비를 늦게 준다며 창피해서 학교 안 가겠다고 생떼 쓰던 일, 당신 밥그릇은 늘 물 반 나물 반이었지만, 별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일, 일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논밭에 사시던 모습, 돈 빌리려 여기저기 쫓아다니시던 모습 등등, 지금에서야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가슴 아파 하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아내의 자식 사랑보다 더 큰 어머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때는 몰랐다가 아내의 모습에서 새삼 그 당시를 회상하며, 불효자식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민다. 우리 아이들도 자기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의 헌신적 내리사랑을 아마 나처럼 느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