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내 고향 속살을 더듬는 행복

[전병열 에세이]내 고향 속살을 더듬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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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도시로 거듭난 내 고향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 감동을 지인들에게 ‘등잔 밑이 더 밝다’라고 전하고 싶다.”
전병열 발행인(언론학박사)

“부산 해운대에 있지만, 부산 사람들은 여기를 잘 몰라요. 오히려 외지인들이 더 많이 알고 찾아와요.” 타지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관계자의 말이다.

왜 그럴까? 의아스럽기도 했지만, 나 자신도 그날 처음으로 탐방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떠올라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사실 타지에 있는 지인들이 부산으로 휴가를 간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부산에 살고 있는 나는 다른 관광지를 물색했었다. 부산의 명소를 자주 들르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았던 것이다. 동행하는 지인에게 물어 봤지만, 자신도 해운대 가본적인 몇 년이 된 것 갔다며 휴가 때는 외국이나 타 지역 여행 코스만 찾았단다. 자기 지역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타지의 명소만 귀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곳 ‘해운대블루라인 파크’만 해도 2020년 10월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을 활용한 해변열차가 개통하고, 스카이 캡슐이 2021년 2월에 개통돼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지역에 살면서도 이제야 단체 관광에 이끌려 찾은 것이다. 이 외에도 오시리아관광단지를 비롯해 해운대, 송도, 태종대, 광안리 등 부산의 관광명소는 수년간 급격한 변화와 개발을 거듭해 국제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내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남의 것만 탐낸 격이 돼 버렸다.

며칠 전 국제로타리 금정클럽에서 ‘함안악양생태공원’으로 관광을 간다는 연락이 왔었다. 고향이라서 안가 봐도 잘 아는 곳이라 별 관심이 없었지만, 회원으로서 빠질 수가 없었다. 재선으로 함안을 견인하고 있는 군수는 취임 초기 ‘함안말이산고분군’ 세계문화유산등재를 계기로 ‘역사문화관광도시’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군민들은 물론 직원들까지도 별로 볼 것이 없다며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분군 정비와 입곡군립공원 둘레길 조성, 악양둑방꽃단지 조성, 승마공원 확장 등 관광인프라 구축이 완료되자 지난 10월 말 관광객이 무려 100만 명을 넘어 관계자들이 기염을 토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제대로 된 관광명소는 별도의 홍보가 필요없다”며 “한번 다녀 간 사람들이 SNS나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하면서 외부에 자연스럽게 알려 진다”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출향인들은 고향의 관광지를 타 지역 명소만큼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오히려 외래 관광객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번 국제로타리 회원 탐방만 해도 고향 사람이 추천 한 것이 아니라 타지의 자매클럽에서 주관했다.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어 동행했지만, 어릴 때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 별 의미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모임 장소를 향하면서는 별천지에 가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도로와 변화된 주변 환경은 어릴 적 그곳이 아니었다. 철지난 핑크뮬리가 빛이 바랬지만, 군락을 이룬 장관에 동료들은 휴대폰 카메라를 연속적으로 눌러댄다.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조성된 둑방길을 거닐며 드넓은 평야를 가슴에 품고 상쾌한 호흡으로 마음을 씻어낸다.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산책로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치유해 주는 느낌이다.

‘악양루’로 오르는 가파른 데크길이 강물을 따라 이어져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정자에 올라 둘러본 광경은 중국의 명승지 웨양(岳陽)의 이름을 따왔다는 설을 실감케 한다. 가물거리는 추억을 더듬어 봤지만, 이런 감흥은 떠오르지 않는다.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에 담기 바쁜 동료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진작 와보지 못했던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절경을 지척에 두고 굳이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이 쑥스러웠다.

고향 방문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비경의 속살을 더듬어 보는 행복은 생전 처음인 것 같다. 고향이라는 정서적인 느낌만으로 만족해왔지만, 문화유산과 생태환경, 그에 걸맞은 인프라로 조화를 이뤄 관광도시로 거듭난 내 고향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 감동을 지인들에게 ‘등잔 밑이 더 밝다’라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