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열 칼럼 l 명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차례는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기제사와 달리 명절에는 어디서든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자위해 본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명절 때 아니면 온 가족이 만나기가 어렵잖아요. 명절 차례는 지내야 합니다.”
“형님, 잘 생각하셨어요. 시대가 변했잖아요. 요즘 명절 차례는 안 지내는 게 대세랍니다. 명절 때는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즐기면서 힐링도 한답니다.”
사실 코로나바이러스로 모임이 제한되면서 명절 차례를 아내와 단둘이서 지내게 됐다. 온 가족이 만나 회포를 나누던 전통 명절조차 코로나에 쫓겨나야 할 형편이다. 명절 제사를 산소 참배로 대체한다고 연락하자 동생들의 생각이 달랐다. 늘 명절 때마다 차례 준비로 몸살을 앓던 아내는 반기는 반응이다.
대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이 못될 바에야 각자 가정에서 명절을 즐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지난 설에는 코로나를 이유로 참석하지 말라고 전했었다. 명절 차례는 조상님들께 올리는 정성이며,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날이다. 모두 모실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면 명절 차례는 의례보다 정성을 들이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가족이 함께하면 음식도 장만해서 조상님께 먼저 올리고 가족의 안녕과 장래의 행복을 기원한다. 부부가 단둘이 차례를 올릴 경우는 별도로 제사 음식을 만들기보다는 정성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설에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 모임이 제한돼 산소를 찾아 정성을 올리는 것이 보람이 더할 것 같아 산소에 들렸었다. 과일 등 간단한 제수를 놓고 아이들과 새해 인사를 드린 것이다.
소싯적에는 가족이 그리워 명절을 기다렸었다. 산업화 세대들은 당시에 쉽게 오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객지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가족이 한없이 그립다. 더군다나 휴일도 없는 고된 일과에 지치면 명절 휴가가 간절해진다. 명절에는 교통지옥을 헤치고 그리움을 좇아 고향을 찾았다. 사실 명절 외는 휴가가 없었던 시절이라 애타게 기다렸었다.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고향이 아니라 천 리를 떠나 있는 처지에서 고향이 그리울 수밖에 없었다.
지척에 고향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움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명절에는 조상의 음덕을 기원하면서 차례에 온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부모님들께서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올린다. 명절 외는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애절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세상이 도래한 현대는 천 리가 지척으로 지구촌을 만들고 있다. 화상 대화까지 가능한 이제는 간절한 그리움이 없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교통체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명절을 기다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포를 풀 수 있다. 가족이 그리워 명절을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란 것이다. 부모·형제가 그리워 고향을 찾는 일도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명절의 의미를 크기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의 ‘제4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했으며, 20대 응답자는 63.5%가 제사 폐지를 찬성했다. 나 역시 조상에 대한 숭배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고 차례는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기제사와 달리 명절 차례는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자위하기도 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차례의 의미도 변해야 한다. 이날만큼은 숭조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상께 감사를 드리자. 의례적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번 추석에도 부모님 산소에서 참배를 드리고자 한다. 전통 제례는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다. 좀 불편하다고 해서 없애자는 것은 아니라, 다만 시대에 부응해 개선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