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전병열 에세이 | 내 인생의 ‘참나(眞我)’를 찾아서

전병열 에세이 | 내 인생의 ‘참나(眞我)’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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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성장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우월감이나 자만심을 경계하고 배려와 포용으로 전진한다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전병열 편집인 정치학박사(언론학)

모처럼 휴일 골프를 약속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5일 시조(始祖) 제향 행사를 주관해 치르면서 피로가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매년 같은 날 개최되는 행사지만, 코로나 펜데믹으로 2년간 중단했었다가 방역수칙이 해제되면서 이날 전국적인 규모로 대제(大祭)를 올렸었다. 20만 종원(宗員)을 대표하는 대종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아 처음으로 주최한 행사라 심신이 지쳐있어 휴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내의 핀잔이 쏟아졌다. 그날이 4월 초파일로 우리 가족에게는 년 중 큰 명절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5월 8일 일요일인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약속을 파기 할 수도 없어 오후에 참배를 가겠다고 이해를 구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못했다. 오전 6시에 티업이니까 마치는 즉시 서두르면 아내와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새벽 4시 반에는 출발해야 할 거리인데 15분 정도 늦게 나서서 급히 차를 몰았다. 오십견 휴유증으로 어깨 놀림이 약간 불편해 진통제를 먹었지만, 두뇌가 약간 흐릿한 기분이었다. 그린이 고산 중턱이라 새벽 공기가 쌀쌀해 옷깃을 여미게 했다. 9홀을 돌 때까지 찬바람이 가시지 않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에 동료들을 바라보니 아주 태연하게 샷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점차 오한이 들기 시작하면서 뼈마디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18홀을 마치고 혼미한 상태에서 서둘러 귀가했다. 결국 참배도 못하고 몸져눕고 말았다. 아내는 초파일을 거꾸로 보냈다며 부처님이 노해서 그렇다고 참회하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초파일을 알고부터 이렇게 보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 가족에게 초파일은 축제이면서 신성한 날로 인식돼 왔다. 인생에서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을 때마다 의존해온 곳이 사찰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고자 열심히 기도를 한다. 특히 아내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이날이 되면 연등을 달고 사찰 순례를 하며 기도로 삼매경에 든다. 아내를 따라 참배를 하면서 소원을 빌고, 기도에 몰입해보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이날의 일탈을 꾸짖어 발생한 사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잘못된 약속임을 알고 약간의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반면교사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다. 다음날 병원에서 ‘몸살에다 체했다’는 진단을 받고 처방을 받았다.

신은 마음속에 있지, 외부 시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나름의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의례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숙명을 받아들이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신의 영역을 인정하기 때문에 진인사대천명에 따르고자 한다. 종교적인 의식에서가 아니라 나만의 인생철학을 정립한 것이다. 한때는 반드시 불상을 찾아 참배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초파일만 되면 피로할 정도로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외형보다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안에 존재하는 나 자신부터 제대로 알자는 의미로 참나(眞我)를 찾아보고자 한다.

부처가 마음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자신임을 깨우치고 존재감을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성장 동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우월감이나 자만심을 경계하고 배려와 포용으로 전진한다면 주어진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형식이 의식을 지배하기도 하고 의식이 행동을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형식에 얽매여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인생의 주체로서 내 삶을 살고자 참나를 찾을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