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인구 집중 등으로 지방 자치단체가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통계청의 재정자립도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과 광역지자체는 58.2%, 8개 도는 34%로 나타났다.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재정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 재원으로 얼마나 조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행정구역을 세분해서 보자면 서울시 전체가 81.4%로 최상위를 차지, 전라남도 신안군이 6.6%로 엄청난 낙차를 기록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비단 신안군 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253개 행정 구역 가운데 86곳이 20%미만이며, 이는 전체의 34%에 달한다.
지방자치시대가 올해로 30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중앙과 지방의 세입규모는 7.6대 2.4, 세출규모는 4대 6으로 세출규모가 세입규모를 크게 초과한 상황이다. 부족한 재원은 중앙재정에 의존해야만 하고, 지자체의 재정력은 악화되며 동시에 중앙재정에 대한 의존도는 심화된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고향사랑 기부제’, 즉 ‘고향세’ 제도다. ‘고향세’란, 타 지역 거주자가 고향이나 특정 지자체에 기부를 하면 금액의 전체 또는 일부를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는 세재 혜택 제도다.
해외에서는 고향사랑 기부제도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미국·캐나다·호주·독일·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일본은 특히 이용률이 높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2008년부터 후루사토세(고향납세)를 도입했으며, 거주지 외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누구나 2000엔(약 2만2500원)을 뺀 나머지를 공제받을 수 있다. 시행 초기 실적은 미미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기부가 증가하기 시작, 2015년 세제 혜택이 확대되고 이후 ‘고향납세 원스톱 특례제도’로 이용자의 편의성이 높아지자 국민들 사이에서 연말 이벤트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향납세는 라쿠텐을 비롯한 다양한 사이트에서 진행할 수 있다. 기부금 형태로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지역의 특산품을 답례로 받는 형태로, 사이트에서는 답례품 정보를 품목별, 가격대, 지자체별, 인기 순위 등으로 정렬해서 보기가 편하다. 포털 사이트가 직접 고향납세 홍보와 신청자의 수납대행까지 맡아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편의를 높인 덕에 2020년 기준 일본의 주민세 공제액은 3391억엔(약 3조5800억원)으로 고향납세 원스톱 특례제도 시행 전인 2014년 대비 약 56배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판매되는 답례 상품은 농수산품을 비롯 지역 유명 맛집과 콜라보한 상품, 지역 술 등 먹거리를 비롯해 카메라와 전자기기 등 해당 지역에 위치한 제조 상품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달걀과 농산품을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상품도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온천 패키지, 관광명소 입장권 등을 고향납세 상품으로 내어놓기도 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원도 충당하고 해당 지역을 간접적으로 홍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상품 중 가장 독특한 아이템을 선보인 곳은 홋카이도 치토세시로 인기 애니메이션의 지역 콜라보 시즌을 제작할 비용 펀딩이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인기 애니메이션 팬층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전략을 펼친 것으로, 가장 많은 액수인 5만엔(한화 약 52만원)을 펀딩하면 애니메이션 엔딩크레딧 자막에 후원자의 이름이 기재된다. 펀딩은 당초 목표금액인 2000만엔을 훌쩍 뛰어넘어 1억 8천만엔을 달성하며 크게 성공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 인기가 많은 작품의 경우 해당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팬들이 찾아오는 성지순례 문화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후루사토 납세 이후의 지역 관광 활성화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홋카이도의 또 다른 지역 유바리시는 소멸 위기에 직면했지만 고향납세를 통해 부흥하는 기적을 펼쳤다. 2007년 일본 지자체 가운데 처음 파산한 홋카이도 유바리시의 경우 고향납세로 재원을 마련해 유바리고교 매력화 프로젝트라는 교육 프로그램과 콤팩트 시티로 이름 붙인 노인복지 프로그램에 투자를 진행했고, 인구 5천이 안되는 작은 마을이 세수의 3배이상인 21억엔(약 222억원) 규모 고향납세를 유치하며 큰 화제가 됐다.
고향납세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부터 논의되고 있지만, 여야가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매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큰 이견 없이 정리된 골자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개인’이, 도시가 아닌 ‘지방’에 기부를 하면 일정 금액을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기부금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되고, 1000만원까지는 16.5%, 1000만원 초과 금액은 33%까지 가능하다.
기부를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감사의 의미로 지역 특산 농축수산물을 이용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는데, 세액공제 규모와 기부금 모금 형식, 답례품 제공의 규모와 주체 등이 논란의 주역이다. 법안 통과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제도 도입이 불러올지 모를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납세자들의 기부 선택이 자치단체의 재정력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므로 고향납세 제도에 의해 지역 간 재정력 격차를 완화하기 어렵다.
또한, 기부에 대한 답례품 제공으로 지역경제 활성화하려는 것은 자치단체 간 부정적인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답례품 생산할 민간 업체를 선정함에 있어 ‘제3자 뇌물’을 초래하거나, 역으로 지자체에서 압박이 가해져 위법·불법 행위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도시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구 960만을 보유한 서울은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지역 세수가 외부로 유실되는 것을 마냥 달가워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제도가 도입이 되기도 전이지만 지방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자체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고향납세 제도가 지역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아니다. 고향납세 제도 혹은 다양한 재원 확보를 통한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