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매화 향기와 함께 영글어 가는 인생

[전병열 칼럼] 매화 향기와 함께 영글어 가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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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 편집인 (정치학 박사 · 언론학 전공)

모처럼 찾아온 화창한 봄날을 느끼고자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이 시즌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다. 주말이라도 평소에는 마음속에서만 맴돌았지 실행에 옮기는 일을 쉽지 않았다. 주말마다 벌어지는 결혼 잔치나 행사 등으로 대부분 주말을 뺏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주말 행사가 사라지고 이런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객지에 터를 잡아 살면서도 향수(鄕愁)는 잊지 않았다. 고향의 향기는 먼발치에서도 느껴진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강가에서도 그 향기는 쉼 없이 코끝에 맴돈다. 뭉클한 가슴에 아련한 추억들이 소환된다.

마을 초입, 연못 위에 위치한 고향집은 나의 생가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객지로 나갔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집에 머물렀다.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어머님마저 맞벌이 동생의 살림을 돌봐줘야 한다며 상경한 후 15여 년 동안 빈집으로 있었다. 조카들이 성장한 후 귀향하시겠다는 어머니를 위해 고택을 허물고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을 했었다. 지금은 간혹 후회스러운 부분도 있다. 당시의 초가 흔적을 남겨뒀다면 아이들한테도 그 낡은 집이 가족사의 기록으로 남았을 텐데, 좀 아쉽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초라했던 과거를 지워버리겠다는 생각에 모두 폐기물로 처리해 버렸다.

이제야 부모님의 흔적이 남은 유품들이 보이면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챙겨보지만, 현재 실용되는 농기계 외는 없다. 그것도 새 기구들에 자리를 내주고 폐기되기 직전이지만, 그 소중함을 아는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고물을 왜 챙기느냐는 핀잔만 듣기 일쑤다. 그러나 나에게는 귀중한 역사가 담긴 물건들로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보존하려 챙겨둔다. 창고 한쪽 구석에서 어머니 손때가 묻은 빨래 방망이와 숯불 다리미가 나왔다. 큰아이가 분리수거용 쓰레기봉투에 버린 것을 보물찾기 하듯이 소중하게 찾아 귀중품으로 보관하자 아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 한다. 하기야 도회지 같으면 보관할 장소조차 마땅찮아 천대를 받았겠지만, 부모님 흔적이 남아 있어 고향 품속이 더 아늑한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모신 농장으로 향했다. 참배도 할 겸 올라갔지만 사실은 다른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하얗게 온 등성이를 뒤덮은 화려한 매화를 느끼기 위해서다. 농장에 만개한 매화를 감상해 보는 게 소망이었다. 늘 고마운 사람과 흐드러진 매화 숲에서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때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시간이 있으면 매화가 기다려주지 않았고, 바쁜 일상이 나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매화 농장을 조성한지 1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제때를 맞추지 못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대미문의 코로나19가 그때를 맞춰줬다. 오늘은 그 소원을 풀고 매화 향기에 잔뜩 취해 보련다.

매화의 절정기로 온 천지가 마치 눈꽃으로 덮인 것 같다. 그 속을 거닐며 그동안 세월을 더듬어 본다. 30여 명의 직원들이 소풍날에 이곳을 방문해 기념으로 함께 매실나무를 심었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제멋대로 자랐지만, 울창하게 매화 숲을 이뤘다. 조경 전문가의 전지작업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방치해 뒀더니 매실은 제대로 수확을 못해도 매화는 향유할 수 있다. 당시는 매실도 부수입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매화 속에서 한세상을 되돌아보며 힐링의 시간을 갖고 또 내일을 구상해 본다. 매화가 지면서 매실이라는 희망을 잉태하는 것과 같이 내 인생에도 내일은 매실이 영글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