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의 핵심은 자연경관인데 노르웨이가 으뜸이다. 그중에서도 걸작품이 ‘피오르’다. 송네 피오르를 지나면서 산 중턱에 걸린 구름 같은 안개에 내 눈이 멈추었고, 높은 빙하지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계곡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홀함에 빠져들었다. 노르웨이 자연경관이 으뜸이라 하더라도, 껍데기만 볼 것이 아니라 삶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북유럽인들을 바이킹이라 한다. 바이킹이라는 말은 뱃사람 혹은 전사, 식민자 등의 의미이며,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스웨덴인을 지칭한다. 바이킹 시대는 고대 북유럽인들이 세력을 확장시킨 780년에서 1070년 사이를 일컫는다. 그들이 팽창한 데는 추운 겨울이 길고, 황무지가 넓고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인구가 급격히 불어나자 그들의 장자 상속법 체제에서는 차남 이하의 아들들을 자신의 운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해외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모험적이고 공격적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바이킹의 기질이 다른 민족을 침입하고, 교역하고,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뛰어난 항해기술과 최고의 배를 갖추었다. 용머리 같은 것을 조각한 뱃머리의 후미 양 끝을 날렵하게 올린 배는 거친 물결을 헤치면서 남쪽, 동쪽, 서쪽의 세 갈래로 휘저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비롯해 잉글랜드의 반을 식민지로 만들었으며, 계속 세력을 확장하여 프랑스에 정착했다. 리스본과 카디스와 세빌을 점령했고, 이탈리아 북쪽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면서 피사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노르망디에 정착했던 일부 바이킹들은 시칠리아로 압박해 들어갔다. 유럽일대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바이킹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바이킹의 후예들은 그곳을 지금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여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흘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젊은이와 늙은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여유로워 보였다. 삶이 여유롭다는 것은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2019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6개국 중 1위는 핀란드, 2위 덴마크, 3위는 노르웨이가 차지했다. 한국은 54위였다. 북유럽 국가들이 모두 상위를 올라있다. 이렇게 북유럽이 국민 전체의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얻은 답은 시민이 정부를 신뢰하며 공무원과 정치인이 청렴하다는 것이다. 공직자가 부패했다면 성공적인 사회복지를 실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북유럽 시민들은 공직자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북유럽 4개국, 즉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 순위의 세계 상위권을 매년 다툰다. 2018년 180개국 순위를 보면, 뉴질랜드 1위, 덴마크 2위, 핀란드·노르웨이·스위스가 공동 3위 스웨덴·싱가포르가 공동 6위이디. 한국은 45위였다. 상위에 있는 나라의 공통점은 공직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덴마크의 청렴도는 언제나 세계 1·2위를 다툰다. 국회의원은 청렴하고 특혜와 특권을 포기하면서 보통 국민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시민이다. 국회의원 2명당 비서 1명이며, 국회의사당 앞에는 승용차 대신 자전거가 즐비하고,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장관도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나라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으며, 덴마크 의원들의 소득이 대한민국 국회의원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만 국민들을 위해 일한다. 그기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비서 3명, 인턴 2명으로 모두 9명을 두고 있어 덴마크와 비교된다.
그렇다고 덴마크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덴마크는 복지국가이면서 동시에 성공적 자유시장경제체제다. 복지는 무한정 솟아나는 샘물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돈을 벌어 와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를 튼실하게 키워 풍족한 부를 쌓은 다음 많은 세금을 거둬 두툼한 복지를 제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2014년 4월 타계한 덴마크 총리 앵커 요한슨 씨는 지어진 지 50년 된 임대 아파트에서 47년을 살았으며, 걸어서 출퇴근했다. 정치란 서민과 함께하는 것이라며 방 두 칸짜리 집을 떠나지 않았고, 이웃 주민과 격의 없이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유럽의 기업들의 경쟁력 또한 세계적이다. 기업에서도 대표의 특권의식보다는 타협적이며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덴마크는 2015년 기업이 일하기 가장 좋아하는 나라 1위에 올랐다. 덴마크에서 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노사분규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사분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와는 대비가 된다.
북유럽은 시민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어서 복지를 위해 쓴다. 덴마크의 소득세는 40%에서 60%, 부가가치세는 25%로 높은 세율이다. 월급의 반이 세금으로 빠져나가지만, 개인이 곤란에 처했을 때 정부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수긍한다. 오히려 안정된 삶의 기반을 제공하는 국가의 복지제도를 자랑스러워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스웨덴 국민의 58%가 세금 내리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변했다. 이런 현상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국민 간의 공감대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북유럽은 학비가 대부분 무료이다. 덴마크의 경우 공립 초·중·고등학교의 교육비는 무료다. 대학 및 고등교육과정의 경우는 등록금도 무료일 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은 정부에서 매달 생활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덴마크 교육의 특징은 다 함께 잘 해야 한다는 협동을 강조한다. 학교에서는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창의적이면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은 북유럽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들은 검소하다. 유럽인들의 소박함과 검소함은 실용주의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도 나타나듯이 스칸디나비안들은 명품에 관심이 없다. 중고품 마켓 시장도 활성화되어 있고, 중고품들은 작은 그릇에서부터 옷, 악기, 가전제품, 패션 소품, 각종 가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명품에 무관심한 그들은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북유럽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북유럽의 개별 복지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이다. 제도가 아니라 신뢰라는 자본이라는 것이다. 북유럽 복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안은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토론과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한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북유럽에는 있고 대한민국에는 없다. 복지의 개념은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장경제에 걸맞은 경제인을 육성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포함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중심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정의로운 경제를 실천해야 하는 한국은 북유럽 국가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 자유시장경제 체제, 공직자가 청렴한 사회, 특권이 없는 국회의원, 기업이 일하기 좋은 곳, 다양성을 가진 창의적인 교육, 검소한 생활 방식은 이번 북유럽을 여행을 통해 느낀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