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 신드롬에 사로잡혔다.
지난해 프랑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오스카 최고 영예인 각본상, 감독상, 국제 영화상, 작품상까지 무려 4관왕을 달성했다.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한국 영화사에 엄청난 쾌거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미국, 영국 등 56개 시상식에서 거머쥔 트로피만 해도 127개에 달한다.
점차 확산되는 찬사와 흥행의 연쇄효과는 ‘기생충 신드롬’을 낳았다.
북미에서는 지난달 21일 기준 4,541만 달러(약 550억 원)의 매출을 기록,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 지난 2월 7일 개봉한 영국에선 역대 외국어 영화 최대 오프닝 수입인 1800만 달러를 기록, 전 세계 티켓 판매 수입은 2억 달러를 돌파한 2억400만 달러(약 2,414억 원)를 달성했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강세인 일본에서조차도 ‘기생충’은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기생충’ 특수를 누리는 것은 영화계뿐만이 아니다. 짜파구리는 기생충의 한 장면에서 ‘램돈(Ram-Don·라면+우동)’으로 번역되었지만, 영화팬들의 램돈과 달리 새까만 짜파구리의 정체를 궁금해 하며, 연일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에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판매하는 농심은 미국에서 ‘짜파구리’를 하나의 상품으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 촬영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정원이 있는 거대한 주택과 반지하 집은 모두 세트이고, 지금은 철거가 되어 실제 모습을 만나볼 수가 없다.
아직 남아있는 영화 로케이션 장소는 영화 속 피자집 ‘피자시대’로 등장한 서울의 한 피자 가게, 주인공 기우(최우식)가 친구 민혁(박서준)에게 영어 과외선생 제안을 받는 장소인 동네 슈퍼 앞, 기우네 가족들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서 빠져나와 도망칠 때 지나가는 자하문 터널 계단 등이다. 동네 주민들이 오르내리던 평범한 계단,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터널도 외국인들이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찾는 핫 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는 관광버스 한가득 사람들이 내려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주요 촬영지를 탐방코스로 묶어 소개하기 시작했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비지트 서울(visit Seoul)’에 올린 기생충 촬영지 탐방코스 조회 수가 시상식 이후 하루 만에 6만 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재단 측은 봉 감독의 다른 작품 촬영지를 둘러보는 ‘봉준호 필모그래피’ 투어코스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일명 ‘봉보야지(bong voyage)’ 프로그램이다.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는 프랑스어 본보야지(von voyage)에 봉 감독의 성을 붙였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된 문정동 시영아파트, 살인의 추억을 찍은 난지공원, 옥자에 등장한 회현동 지하상가, 괴물의 주 촬영장소인 한강공원 등이 주요 코스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대부분이 주거지역인 만큼 시민들의 정주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투어 코스와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마포구도 아현1동 일대 촬영지를 원형 보존하며 관광명소 조성을 위한 세부사항을 검토하고 업무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수퍼 인근에 포토존을 만들고, 촬영지를 포함한 골목 투어 코스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획은 ‘가난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관광객들이 영화 속 기택 동네를 탐방하며 가난한 이미지를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우리를 빈민층이라고 낙인찍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주민은 “지나가던 관광객이 ‘여기 진짜 사람이 사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본격적으로 투어가 시작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구경하러 올지 두렵다”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SNS를 통해 “기생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가난을 관광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격차사회가 만들어 낸 불평들을 블랙 코미디로 섞어 풀어낸 ‘기생충’이 역으로 격차사회의 밑바닥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은 ‘슬럼 투어(slum tour)’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슬럼’이라는 말 자체가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외부에서 만들어진 명칭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슬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두면 더더욱 부적절하다. 한 트위터 유저는 “기생충 촬영지를 지자체가 관광 상품으로 삼는 행위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을 동물원 속 원숭이로 만드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으며, 사회 각계의 전문인사들도 “실제로 존재하는 반지하 방은 과거에 사라진 민속촌과는 확연히 다르다”며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열악한 조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도 “가난을 전시하는 행위”, “주민들의 고통에 기반한 관광 상품 개발”이라며 기생충 촬영지 관광 상품 개발 중지를 촉구했다.
해당 지역은 당초 재개발예정구역에 포함된 곳이라 주민들 사이에선 “당장 재개발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터져 나오고 있다. 관광지 조성 계획 발표 과정에서 실제 거주자들과 소통이 없었던 것이다. 한 주민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포구청 측은 해당 지역 재개발 착수까지는 10년까지도 소요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전까지만 관광단지로 활용하고 향후에는 공청회 등으로 주민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주거지가 관광으로 소비되는 주민들의 피로함까지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생충 탐방코스에서 팸투어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던 서울시는 비판 여론이 일자 ‘대규모로 진행하려는 것은 아니며 촬영지를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정보 제공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하며, 주민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격차사회에서 발생되는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합법과 불법은 명확하게 나눠지지만 선과 악의 경계는 들여다볼수록 흐릿하고 모호하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라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상대평가가 보편적인 시스템에서 누군가 상위를 차지한다면 하위를 차지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기생충’은 자본주의 체제애 대한 비판을 담은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이에 봉 감독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유지해야 하며, ‘기생충’은 당신이 다른 인간에 대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중이 완전히 파괴되고 무시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답했다.
지자체에서 영화 촬영지를 관광화 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기생충’ 영화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아현동의 오래된 슈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을 장려하는 행위는 과연 그 동네 주민들을 존중하는 일인가?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