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정읍(井邑). 제대로 취향 저격할 수 있는 여행 콘텐츠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연여행, 역사광에게는 역사여행,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문화와 축제여행이 가능하다. 관광자원도 많고 스토리텔링도 강하니 정읍 어디를 가도 심심하지 않을 듯. 이번 주말, 여행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전북 정읍으로 떠나보자.
숨겨진 매력이 많은 내장산
내장산은 남원의 지리산, 영암의 월출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높이 763.5m로 197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전남 장성군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한 산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내장산(內藏山)은 예로부터 조선8경 중 하나로 유명했으며 ‘호남의 금강산’이라 할 만큼 단연 단풍이 아름답다. 해마다 가을이면 곱게 물든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단풍을 보러 전국에서 수많은 탐방객이 찾아온다. 특히 내장산의 대표 명소인 단풍터널은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108주의 단풍나무가 우거져 있어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겨울에도 예외는 아닌데, 눈이 많이 내리는 덕분에 깨끗하고 고요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봄에는 꽃과 신록을, 여름에는 짙은 녹음을 보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계절마다 다채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내장산의 풍경을 보러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정읍을 찾는다.
금선폭포와 용수폭포, 금선계곡, 백암계곡 등도 관광명소이며, 내장사 입구 동구리 골짜기에는 임진왜란 때 희묵(希默)이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울 때 만든 내장산성도 있다. 또 내장산국립공원은 백악기와 쥐라기 때 분포한 암석을 볼 수 있는데 용굴, 벽련암, 약사암, 운문암 등이 지질명소로 알려져 있다.
또 내장산에는 다양한 등산 코스가 있다. 중간에 케이블카를 타고 탐방할 수 있는 쉬운 코스부터 내장산 봉우리를 섭렵하는 난코스까지 있으니 자신의 체력과 취향에 맞춰 코스를 선택해 보자. 일정이 끝난 뒤에는 내장산리조트단지에서 고단함을 달래보는 것도 좋겠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무성서원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書院)’이 등재됐다. 서원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설립한 조선 시대 교육기관.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을 묶어 문화유산에 등재한 것인데, 그중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위치한 무성서원(武城書院)도 포함돼 있다.
무성서원은 신라 시대 말(886년)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태산(정읍의 옛 이름) 군수로 재임할 때 선정을 베푼 데에 백성이 세운 생사당(生祠堂)이 그 연원이다. 생사당은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를 올리는 곳이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다른 서원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가운데 위치해 있다. 신분의 차별 없이 학문의 기회를 제공한 무성서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으리라.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서원의 역사와 학문적 가치를 증명했다. 또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에는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무성서원 뒤에는 상춘공원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가사문학의 시초인 상춘곡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공원으로 우리 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은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지이자, 주요 무대였던 정읍시 덕천면에 위치해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반부패·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며 전봉준을 비롯한 수많은 동학도와 농민군이 일으킨 운동이다. 그다음 해인 1895년에 동학농민 지도자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운동 실패로 끝났지만, 갑오개혁과 이후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고 있다.
이 공원에는 희생자 추모시설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에 쓰였던 무기, 생활용품, 기록물 등이 보존·전시된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교육관 등이 있다. 전봉준 장군 고택을 포함해, 동학혁명 모의탑, 손화중 장군 생가터, 태인전투지, 말목장터 등 동학농민운동을 이해하는 데 좋은 역사교육현장이 되고 있다.
의녀 대장금의 고향 마실길
제주도에 올레길,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다면 정읍에는 대장금 마실길이 있다. 대장금 마실길은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에 있는 산책길이다. 조선 시대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던 의녀(醫女) 대장금의 고향인 정읍 장금산에 그녀의 이름을 딴 산책로를 조성한 것. 맑은 공기에 아름다운 옥정호를 바라보며 마실길을 걸어보자. 절로 힐링이 될 것이다.
마실길에는 총 5개 코스가 있는데, 1~3코스는 나무 그늘과 함께 마을을 가로 지르며 풍광 좋은 옥정호를 감상할 수 있다. 4·5코스는 오르막길로 시작되어 힘들지만 높이 오를수록 옥정호의 풍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산책 중간중간에는 농촌체험마을과 임병찬(창의)유적지도 관람할 수 있다.
백제가요 정읍사문화공원과 정촌가요특구
한글로 쓰인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가 만들어진 곳에 백제가요 정읍사문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정읍사는 백제가요 5곡(정읍사·무등산곡·방등산곡·선운산곡·지리산곡)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구전되다가 《악학궤범(樂學軌範)》 권5에 기록되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남편이 장사를 나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산속 바위에 올라 남편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로 지어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가 된 것이다.
공원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5m의 망부상이 있으며 정읍사노래비와 사당이 있다. 정읍사 여인을 테마로 하여 부부나 연인 간의 사랑을 스토리텔링해 ‘정읍사오솔길’을 조성했다. 이 밖에도 공원에는 정읍사예술회관, 정읍사국악원, 시립도서관, 야외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또 1990년부터 매년 가을이면 정읍사 문화제가 열리는데, 백제가요 정읍사와 백제여인의 정과 의를 기리기 위한 축제이다. 가을에 내장산 단풍놀이를 계획한다면 축제 기간에 맞춰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
정읍시 신정동에 위치한 정촌가요특구는 백제가요 정읍사에서부터 현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반영한 음악을 체험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제1전시실에는 정읍사 설화를 소개하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최고(最古)의 노래 정읍사의 가치를 소개한다. 제2전시실에는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대중음악의 흐름을 보여주며,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다. 다목적홀은 공연장과 전시공간, 카페가 있으며 건물 밖에는 한식 체험관, 만석꾼 가옥, 주막 3동, 정읍사 여인집, 인공호수 등이 있어 가볍게 나들이하며 관람하기 좋다.
박유나 기자 py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