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군청(군수 황인홍)과 군산대학교(총장 곽병선) 가야문화연구소에서 조사 중인 ‘무주 대차리 고분군’에서 신라·가야계 석곽묘와 함께 전북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최대 수량의 신라 토기가 확인됐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북지역 가야문화유산 연구 복원사업의 하나로 진행해 총 11기의 석곽묘가 조사됐다. 도굴 등의 훼손으로 잔존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지만, 축조방법과 구조 등을 파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석곽묘는 조성 방법에 따라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2기는 강돌(천석, 川石)로 벽체가 축조되고 바닥에 시상대가 없는 반면, 나머지 9기는 깬돌(할석, 割石)로 벽체가 조성됐으며, 바닥에 잔돌(소석, 小石)로 시상대를 깔았다. 이러한 조성 방법의 차이는 석곽묘를 조성한 집단이 서로 달랐음을 의미한다.
또한, 벽체가 강돌로 축조되고 시상대가 없는 석곽묘는 장수지역의 가야계 석곽묘와 유사하다. 깬돌로 축조되고 시상대가 있는 석곽묘는 옥천 금구리, 상주 헌신동, 상주 병성동, 남원 봉대리 등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들 유적과의 비교를 통해 신라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석곽묘에서는 굽달린목긴항아리(대부장경호), 목짧은항아리(단경호), 뚜껑(개), 굽달린접시(고배) 등의 신라 토기와 빼곡한 물결무늬(밀집파상문)가 장식된 가야토기, 쇠낫(철겸), 쇠손칼(철도자), 화살촉(철촉), 금동귀걸이 등 40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됐다. 신라 토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현재까지 전북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많은 수량의 신라 토기다.
석곽묘의 구조와 유물로 볼 때, 무주 대차리 고분군은 6세기 초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 기관은 이 시기 전북지역에서 신라의 진출 과정과 가야와 신라의 역학관계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했다.
황정윤 기자 hj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