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장소로 빠지지 않는 여의도 한강공원 옆에 거대한 쓰레기가 자그마치 한 달 째 방치돼 있다. 원효대교 남단 교각 아래, 공원 쓰레기를 모아둔 집하장에 모인 쓰레기만 120톤이다. 가림막이 쳐져 있지만, 쓰레기 더미는 이미 가림막 높이를 훌쩍 넘겼고, 가림막 밖으로도 쓰레기가 높이 쌓여있다. 파리도 날리고, 냄새도 참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당장 쓰레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와 일회용품과 재활용품이 모두 뒤섞여 있는 탓에 쓰레기 처리업체가 처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쓰레기를 분리해야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업체도 엄두가 나지 않는 실정. 장마나 태풍이 찾아와 비라도 내리면 오물이 공원과 강물로 스며들어 2차 오염이 염려되지만, 또 한 번의 밤이 지나고 나면 쓰레기는 줄어들 새 없이 다시 높게 쌓일 뿐이다.
한강공원에 쓰레기가 산을 이루게 된 것은 유행이 된 ‘한강치맥’, 즉 공원 음주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리면 여의도 한강공원은 발 디딜 틈 없이 왁자지껄하다. 돗자리 위에는 치킨 박스와 과자봉지, 술병이 나뒹군다. 만취한 사람들이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고, 술 마시고 한 판 놀고 난 그대로 방치해놓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연트럴파크’라는 별칭을 가진 ‘경의선 숲길공원’도 상황은 마찬가지. 북카페였던 건물이 수제맥주 팝업스토어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음주 열기는 더해져 그야말로 ‘경의선 술길’이 된 판국이다. 해당 업체는 맥주 구매자들에게 돗자리와 의자를 제공해, 공원에서 음주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
밤낮 가릴 새 없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판에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리공연이라도 하는 사람이 생기면 공원 전체가 맥주 축제장이 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결국에는 이사를 결정한 혜린(36세, 가명) 씨는 “음악소리와 고성방가에 불면증을 얻었고, 주말이 다가오는 게 무서울 정도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깨끗한 공원은 아침마다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있고, 보다 못한 주민들이 청소를 해도 다시 도로 아미타불일 뿐이다. 주변에 화장실이 홍대입구역밖에 없다보니 골목길에 노상방뇨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공원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있던 한 시민은 “취객은 소수”라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원에서 여유롭게 맥주 한 잔도 못하는 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아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술을 마실 자유도 좋지만, 술로 인해 과하게 일탈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주안(20살, 가명) 씨는 “술을 마시던 남성들이 치근덕거리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서 도망간 적이 있다”며 “술에 취한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렵다”고 말했다. 재호(24살, 가명)씨도 두렵긴 마찬가지. 친구들이 술을 마시다가 다른 그룹이랑 시비가 붙었고, 싸움을 말리다가 경찰서까지 가기도 했다.
주취 난동이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쇄도하는 탓에 현장 종사자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접수되는 사건의 15%가량은 주최자 신고고, 실신할 정도로 술을 마신 청소년들은 신원조회도 되지 않아 난감하다. 시끄럽게 난동을 부려도 지나치게 관대한 법으로 범칙금 5만 원이 전부다.
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사람들을 본 외국인들은 다들 놀란 반응이다. 유학인 A씨는 “친구들이 한강에서 치맥을 먹는 게 낭만적이라고 해서 왔는데, 취해서 잔디밭에 구토를 하거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하게 스킨십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술에 관대하다. 언제 어디서나 술을 구매할 수 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 술로 인한 범죄가 많은 건 당연한 수순이다. 2016년 발생한 7대 범죄(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방화, 마약)의 25.6%가 주취자의 소행이었지만, 법은 만취 상태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하고 되레 형을 감량해주기까지 한다. 음주규제는 선진국에 비해 지극히 미미해, 공원이나 길거리, 경기장 등 공공장소에서 만취할 때까지 술판을 벌여도 시민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전무하다.
매일 술판이 벌어지는 경의선 숲길 공원은 놀랍게도 음주청정지역이다. 하지만 버젓이 붙어 있는 현수막이 무색하리만큼 공원은 술 마시는 사람으로 붐빈다. 이미 공원 양 옆에는 테이크아웃 술집들이 가득 차 있어, 음주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분위기다.
공원이 음주 청정지역으로 운영된 것은 올해 1월부터로, 경의선 숲길공원과 서울숲공원 등 22개 직영 공원이 이에 포함됐다. 단속은 계도기간으로 3개월을 둔 후 지난 4월 1일부터 술에 취해 소음, 악취 등 다른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면 1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올바른 음주문화를 만들겠다며 엄포를 놓았지만, 4~5월 2개월간 단속 수는 0건이다. 당초 예견된 일이었다. 단속 기준이 모호하고, 공원 크기 대비 단속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만취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규제를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국립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하도록 법안을 개정했지만, 이 외에는 법적 규제가 전무한 실정이다.
선진국들의 술 판매 규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국은 공공장소에서 만취 상태로 불쾌한 행동을 하면 최대 500파운드(약 72만 원)의 벌금을 부가 받거나 심한 경우 체포도 당할 수 있다. 미국 뉴욕주도 1970년대부터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 뚜껑이 열린 술을 가지고만 있어도 1,000달러(약 11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 음주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러시아도 2009년부터 ‘반알코올정책’을 도입해 공공장소에서 음주 및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술은 주류 판매 면허가 있는 가게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사도록 허용해 술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
지속적인 금연 캠페인으로 흡연율은 20%대까지 떨어졌지만, 음주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의 경찰지구대는 거의 매일 밤 주취자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만취해 쓰러진 사람을 구조한 소방대원이 오히려 맞아 숨져도, 거의 모든 음주 관련 규제 입법 제도는 실패했다.
공원 음주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시민의식의 자정작용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음주로 인한 각종 범죄가 창궐하고, 선량한 주민들의 일상은 망가졌다. 아무데서나 술 마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즐거운 나들이를 위해 공공장소 음주 규제가 도입돼야 할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