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서구가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 달서구청이 광고 천재라 불리는 대구 출신의 이제석(35)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에게 의뢰해 조성한 대형 원시인 조형물이 ‘흉물’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2만 년 역사가 잠든 곳’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달서구가 사업비 5억 원을 들여 제작했다. 1997년 그리고 2006년 달서구 진천동, 월성동, 상인동 일대에서 선사시대와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일대를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으로 해당 작품을 설치했다.
진천동 선사유적공원에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진천역까지 길이 500m 왕복 6차로 도로 양쪽에 돌도끼로 도로표지판을 내리치거나, 40∼70m 단위로 거리를 안내하는 원시인 배너가 설치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제기나 논란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이색적인 거리풍경에 신기해하며 반기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러나 잠이 든 원시인을 형상화한 길이 20m, 높이 6m 규모의 거대 석상이 들어서자 주민들과 인근 상인들은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형물의 크기가 너무 커서 위압감을 주는데다 인근 가게를 가려 상권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인근 주민과 상인 등 1,700여 명이 조형물의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달서구의회에 제출했다.
이 조형물을 선사시대로 탐방사업과 연계해 관광 명소로 추진하려던 달서구청은 인근 주민과 상인들의 예상치 못한 부정적 반응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역 특색을 활용한 새로운 관광자원이 생겨나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인근 주민들에게는 비호감 대상도 자주 보면 호감으로 변한다는 ‘에펠탑 효과’로 설득에 나섰다.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 역시 “파리 에펠탑도 처음 들어섰을 땐 흉물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세계적 명소로 변했다”면서 “테마 거리 조성이 완료 되면 지역 명소가 될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부정적 반응은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광고천재라 불리는 이제석 대표는 “우리 주위에 흔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고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광고철학을 바탕으로 이색광고물을 제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생활 속에 널려 있는 대상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영감’이 광고의 원천”이라면서 자신의 작업이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가공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쓰레기를 보석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제작한 광고는 파격적이다. 구 부산남부경찰서 외벽에는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총알이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는 이미지를 빌려 총알대신 순찰차를 옮겨 놓았고, 이라크 전쟁 반전 포스터에는 원통형 전봇대의 특성을 살려 군인이 겨눈 총구가 결국 자신의 뒤통수를 겨냥하는 장면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또 2009년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장에 걸개그림 ‘코끼리 똥을 치우는 참새’를 내걸어 강대국을 코끼리에, 개발도상국을 참새에 비유, ‘네가 싼 똥 네가 치워’라는 메시지를 강대국에 던지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런 이력의 광고천재 이제석이 제작했다는 점을 부각시켰음에도 인근 주민과 상인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조형물 철거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달서구의회에 제출하는가 하면 14일과 21일에는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예산 낭비 등의 민원을 제기했다. 23일에는 지역 국회의원을 찾아가 면담하고 “지자체장에게 연락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 논란은 결국 4월 26일 열리는 달서구의회임시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논란의 핵심은 원시인 조형물의 크기 때문에 시작됐다. 크기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달서구청과 이제석 대표는 이에 대해 ‘에펠탑 효과’를 주장하며 시간이 지나면 명물이 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세계 박람회의 출입 관문으로 건축된 에펠탑은 높이가 324m로 81층 높이의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건축됐다. 프랑스의 건축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과 에밀 누기에와 모리스 쾨클랭, 그리고 스테펭 소베스트르 등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제작한 에펠탑은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치욕을 만회하고 국력을 과시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일종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였기 때문에 20년만 설치했다가 해체될 운명이었지만 에펠탑 건설비의 대부분을 지불했던 에펠의 설득과 1차대전 당시 통신 중계탑으로 사용하자던 군부의 결정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파리를 상징하는 구조물이 됐다.
에펠탑은 석조 건축물에서 철골구조로 변하는 시대의 건축물이다. 그렇기에 예술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중요시하는 예술가들의 입장에서는 “뼈대만 앙상한” 건축물이자 “비쩍 마른 피라미드”. “예술의 도시인 파리의 미관을 망치는 흉물”이라며 항의했다. 하지만 철골 구조물이 중심인 오늘날의 에펠탑은 시대적 진보의 상징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파리를 찾게 되는 주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런데 달서구 진천동 원시인 조형물에는 어떤 기술과 시대적 인식이 결합돼 있는 걸까? 왜 시간이 지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달서구청이 내놓은 에펠탑 효과는 구체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에펠탑의 거대한 높이에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 무엇보다도 최신 기술의 결정체가 녹여져 있지만 달서구 원시인 조형물에 대한 답변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화가의 표현에 의하면 “광고하는 사람한테 예술을 기대한 자체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4월 25일이면 주민과 상인들이 제기한 ‘원시인 석상 철거 청원’에 대해 달서구 ‘정치인’들에 의해 논의되고 결정될 것이다.
양명철 기자 ymc@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