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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트래블] 역사와 절경이 함께하는 고즈넉한 ‘영월’

산따라 물따라 태고의 시간이 흐르는 곳.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  / 2016-12-13 09:24:09

[사진]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

영월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영월은 단종의 애사가 서린 청령포에서 수달이 사는 동강까지, 사계절 내내 깨끗하고 수려한 풍광을 품고 있다. 북으로는 차령산맥, 남으로는 소백산맥이 우뚝 솟아있고, 그 사이 강이 굽이굽이 유유하게 흐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깨끗한 숲과 물에 둘러싸여 맑고 청명하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은 곳이다 보니, 이곳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닌 자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600년 전에 죽은 단종의 숨결이 모래알마다 묻어나고, 태곳적부터 한반도를 닮아있었을 산자락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과 무관히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말 그대로 슬로우시티다. 인구 4만의 작은 도시에 30여 개의 박물관이 있는 것도 느림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시사철 산과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영월로 초대한다.

한반도 지형

한반도 축소판이 영월 선암마을에 있다. 서강의 샛강인 평창강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실제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영토를 꼭 빼닮은 한반도 지도의 축소판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의 지형과 너무도 흡사해 놀라움을 넘어 신비로움마저 느껴진다.

이곳은 영월 토박이 고주서 사진작가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한반도 지형에 도로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분서주하며 한반도 지형을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도로 개설을 막기 위해 반대운동과 함께 직접 찍은 사진들로 이곳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 도로 개설 계획은 철회됐고, 지금의 풍경을 지켜낼 수 있었다.

어라연



영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가장 영월다운 곳, 바로 동강 어라연이다. 구불구불 휘어지는 물줄기를 가운데 두고, 병풍처럼 우뚝 솟은 산줄기에 폭 파묻힌 어라연 계곡은 여름철에는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요즘은 계곡과 산줄기를 끼고 도는 트레킹 코스도 인기다.

어라연은 강물 속에 뛰노는 물고기들의 비늘이 비단같이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삼선암’ 또는 ‘정자암’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시사철 갖가지 아름다움을 뽐내는 어라연은 2004년 명승 제14호로 지정되며 빼어난 자연미를 오랫동안 이어나갈 것이다.

청령포



청령포는 폐위된 단종의 유배지이자 그의 목숨이 끊어진 곳이다. 아름다운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청령포 안에는 지금도 단종의 유배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6백 년 된 소나무가 있다. 단종은 유배 생활의 아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이 나무에 매일 올랐다고 한다. 왕실도 사라진 지금, 이 소나무는 단종을 지켜본 유일한 소나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망향탑은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며 하나둘씩 쌓아서 만든 돌탑이며, 노산대는 단종이 아침저녁으로 올라와 한양 쪽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별마로천문대



‘별’과 정상을 뜻하는 순우리말 ‘마루’, ‘고요할 로’ 자를 쓴 합성어로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뜻의 별마로천문대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봉래산 800m 정상에 위치해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하 천체투영실과 4층 천체관측실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특히 천체투영실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오퍼레이터가 육성으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다른 천문대와는 차별화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아울러 국내 시민천문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직경 80cm의 주 망원경과 여러 대의 보조 망원경이 갖춰져, 밤하늘의 별자리, 행성, 달 등을 관찰할 수 있으며, 내부시설을 통해 우주의 신비를 간접 체험할 수도 있다.

별마로천문대는 영월 지역의 쾌청한 기후로 연간 관측일수가 196일에 달해(우리나라 전체 평균은 116일) 별을 보기에 최적이다. 천체관측뿐만 아니라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영월읍내 야경도 연인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고씨동굴



4억 년의 신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씨동굴은 임진왜란 당시 고씨 가족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지금까지도 고씨동굴이라고 불리고 있다. 예전에는 나룻배를 타고 가야 동굴까지 닿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동굴 입구까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찾아가기 편리해졌다.

고씨동굴은 전형적인 석회동굴이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층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는 수평굴의 형태다. 총연장은 3,388m이나, 약 500m 구간만이 관광 개발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특히, 천장에는 현재 관박쥐, 관코박쥐, 물윗수염박쥐, 황금박쥐 등이 서식하고 있어, 관람 시 잠자고 있는 박쥐도 관찰할 수 있다.

박물관고을

영월에는 박물관과 미술·전시관이 많다. 영월 시내에서 가까운 단종역사관과 동강사진박물관, 강원도 탄광문화촌, 별마로 천문대를 비롯해 미디어기자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김삿갓문학관, 묵산미술박물관, 영월동굴생태관 등 군내 30여 곳이 있다. 명실상부 박물관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마다 체험할 수 있는 것도 다양하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강원도 탄광문화촌은 석탄이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던 시절의 탄광촌을 실내에 재현해 놓아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전시관들도 있다. 해묵은 소나무가 있는 오솔길을 따라가는 즐거움도 있다. 수많은 박물관들은 아이들에게 유익한 박물관들이 많아 방학과 휴가철에는 교육·학습 기행지로 제격이다.

김삿갓 유적지

영월 김삿갓 유적지에는 풍자 가득한 그의 문학세계와 업적을 기리고, 문학 혼을 재조명하기 위해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소와 주거지, 김삿갓 문학관과 시비 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 땔나무가 없다는 핑계로 길손을 내쫓는 개성의 인심을 비꼬거나, 한자의 운을 빌려 세상사의 흐름을 재미나게 표현한 시구 등 김삿갓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시비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일대를 비롯한 영월 곳곳에서 매해 가을 김삿갓 문화제를 개최하고 그의 세계관을 기리고 있다.

법흥사

신라 진덕여왕 643년경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법흥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 보궁 중 하나로, 사리탑 옆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남아 있다.

당시 징효대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다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고, 이곳에 적멸보궁형 법당을 세웠다. 법흥사는 이들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징효대사는 법흥사 적멸보궁 뒷산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적멸보궁 안에는 부처의 삼존불이 없다. 대신 뻥 뚫린 창으로 산자락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진신사리를 봉안한 뒷산 전체가 부처의 몸인 것이다.

요선정

마을의 원·곽·이 씨가 숙종이 하사한 어제시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조선 중기 풍류가 봉래 양사언이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그 이름이 유래 됐다. 요선정 옆에는 암벽을 깎아서 만든 마래여래좌상이 절벽과 나무들과 함께 수려하게 어우러져 있다.

요선정 인근의 요선암 계곡에서는 하얀 바위가 물길처럼 일렁이며 신비로운 광경을 만날 수 있다. 흐르는 물에 실려 온 자갈과 모래가 하천 바닥의 기반암을 갈아서 마치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추구한 곡선을 닮았다. 이런 지형을 한자로 갈 마(磨), 좀먹을 식(蝕)자를 써서 마식(磨蝕)지형이라고 한다. 흐르는 물이 만들어낸 크고 작은 선녀탕과 돌개구멍은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