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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은 정의사회 구현의 당연한 요건

전병열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  / 2016-10-11 15:10:00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자 사회가 마치 혼란에 빠진 것처럼 어수선하다. 이 법 적용 대상자들이나 이들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들은 정황을 살피며 움츠려들고 있다. 이들과 무관한 사람들도 혹시나 경제적·사회적 활동에 지장이 초래 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제정된 법률이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이 미친다면 그만큼 우리사회가 부정청탁에 만연돼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성은 인지상정인 연고주의가 강하다. 예로부터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 닥치면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왔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고향 사람이나 친척들에게 취직 부탁도 예사롭게 해왔다. 그런 일들은 인정으로 생각한 것이지 부정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당시에 그런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출세한 사람들인데, 향리에서 존경을 받았다. 감사의 선물을 주기도 했으며, 거절당하면 몰인정한 사람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했을 뿐이다. 삼성그룹이나 LG그룹, 효성그룹 등 창업주 고향 사람들은 취직 우대를 받았다. 고향 사람이 회장이니까 자연 고향 사람을 챙기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였다. 당시는 부정 청탁이라는 용어도 생소했었다. 경쟁사회가 되면서 인정의 도를 넘어 이권으로 개입되고 부정부패와 연루되면서 연고주의가 갈등의 요인이 된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 이젠 범법행위로 처벌 대상이 되는 세상이 됐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2011년 ‘벤츠 검사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제정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직 여검사가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벤츠 자동차와 샤넬가방 등 고가의 선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연인들끼리 주고받은 선물일 뿐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사들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고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혐의를 일부 벗거나 무죄를 받는 배경 속에서 공직자의 부정부패 방지 법안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었다. 이 법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가 2016년 7월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로 발의 4년여 만인 2016년 9월 28일 이 법이 시행됐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은 4만 919개 기관이다. 학교와 학교법인, 언론사가 3만9천622개로, 전체의 96.8%를 차지한다. 공공 분야를 보면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선관위, 인권위 등 6개 기관과 중앙행정 기관 42개가 포함됐다.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 17개 시·도 교육청 등 260개 기관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공직유관단체 982개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 321개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다. 적용 대상 인원은 무려 400여만 명에 이르며 이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이 부정청탁을 하거나 금품을 건네면 모두 처벌 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국민 전체가 법 적용 대상이라고 봐야 한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그동안 관행으로 치부됐던 접대 문화가 대 변화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관련 축산 식품업이나 화훼업종, 골프, 음식점 등 관련 산업은 피해를 호소하며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에서는 선생과 제자와의 관계도 순수한 정으로 주고받는 카네이션과 캔커피까지도 부정청탁 뇌물로 보느냐 아니냐를 놓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 법 시행 후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국민 87%가 김영란법으로 불편함 못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불편을 느끼다는 응답자는 10% 불과하다. 또한 ‘잘된 일’ 71%, ‘잘못된 일’ 15%로 지역, 성, 연령, 지지정당 등 모든 응답자 특성별로 긍정적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절대 필요한 요건이다. 다만 공정하게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 법치국가가 무색하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법으로 국민의식 개혁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전병열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