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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세 무서워서 ‘가마솥더위’도 견뎌야 한다니...

전병열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  / 2016-08-12 10:06:30

한증막 같은 실내에서 에어컨을 모셔놓고는 더운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에 의존해 무더위와 싸워야 하는 한국의 서민 실상이다.

모 신문 보도에 따르면 9일 오후 4시 서울 신림동에 있는 임대아파트 단지. 39㎡(약 12평)가 대부분인 서민용 주택이지만 한 동 전체 72가구 중 42가구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섭씨 32도를 넘는 폭염(暴炎)에도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는 곳은 4가구뿐이었다. 주민 권경자(70) 씨는 “전기요금 무서워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현관문부터 문이란 문은 다 열고 지낸다”고 말했다. 작년 여름 에어컨을 설치했다가 월 전기요금이 30만 원 넘게 나왔다는 김대성(40) 씨는 “아이들이 집에 없으면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켤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 보도는 같은 날 오후 5시 가양동의 임대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전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김 모(52) 씨는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가능하면 더위를 견디려 한다”며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많이 사는 동네 사람들도 누진 요금을 걱정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주민 이종수(52) 씨는 “너무 더워서 온 가족 네 명이 거실에 나와 에어컨 아래에서 자는데, 스무 살 넘은 아이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면 미안하다”고 했다. 또 서울 길음동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김현화(37) 씨는 “집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들을 자주 몸을 담그게 한다”며 “한창 더운 시간에는 일부러 서점·카페 등에 가는데 그 비용도 만만찮다”는 것이다. 이진희(38) 씨는 “여덟 살 아이가 땀띠가 나서 전기 사용량을 계속 짐작해가면서 에어컨을 틀고 있다”고 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때문이다.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이 높아지는 구조로 가정용 전기요금은 6단계로 나눠 부과된다. 1단계는 100㎾h 이하로 ㎾h 당 요금이 60.7원, 6단계는 500㎾h 초과로 ㎾h 당 요금이 709.5원이다. 누진율 적용으로 요금이 11.7배로 높아진다. 예컨대 평소 전기요금을 4만 4,000원가량 내는 가정이 하루 세 시간씩 에어컨을 틀면 요금이 9만 8,000원으로 폭등(暴騰)한다. 6시간씩 틀면 18만 원이 넘는다. 그야말로 서민들에겐 ‘가마솥더위’보다 전기세가 더 무섭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생활양식의 변화로 가구당 평균 전력 소비량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도 누진제 구조는 2007년 이후 10여 년 동안 불변이다. 전기료 누진제는 1차 오일쇼크 뒤인 1974년 가정용 전기 소비를 억제해 산업용 전력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입됐다. 전기가 부족했던 당시로선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세계 어떤 국가도 한국처럼 징벌적 누진제를 적용하는 곳은 없다고 한다. 미국은 2단계에 1.1배, 일본은 3단계에 1.4배다. 다른 나라도 많아야 3단계 범위에서 2배 이하 요금을 부과한다.

서민들은 누진제가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것에 불만이다. 상가에 적용되는 일반용은 ㎾h 당 105원, 산업용은 81원이 일률적으로 부과된다. 가정용은 누진 2단계에만 들어가도 ㎾h 당 125원으로 일반용과 산업용보다 비싸진다. 반면 분야별 전력 소비 비중은 산업용 53%, 일반용 20%, 가정용 13% 등이다.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가정이 전기료 부담은 더 크다. 형평성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시내 상점들은 에어컨을 틀면서 문까지 열어놓고 영업을 한다. 특히 대기업들은 거액의 전기요금 감면 혜택까지 받는다. 한국전력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2014년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받은 상위 20개 기업의 감면액이 3조 원을 넘는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한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2013년도에 78%인데 현재는 80%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당시 고소득층의 사치품으로 취급되던 에어컨이 이젠 시민의 ‘생활필수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기세가 무서워서 한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한다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서민들의 삶의 질을 드높이겠다는 정부가 오히려 민생을 핍박하는 악법을 도입한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여야 정치권에서도 누진제의 실상을 알고 개편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요지부동이던 정부에서도 임시방편이지만, 한시적으로 완화를 검토한다는 소식이다. 시급히 개선해 서민들의 전기세 공포를 해소해줘야 한다.


전병열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