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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트래블] 수원화성에서 220년 전 정조대왕의 역사와 아름다움에 빠져보자

2016 수원華城 방문의 해

문화관광저널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  / 2016-06-15 09:27:13

수원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효와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백성과 더불어 살고자 ‘수원화성’을 건설한 계획도시이다. 도심 중앙의 팔달산, 북쪽의 광교산, 서쪽의 칠보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영통과 광교 지역이 신시가지로 조성돼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함께 자연 속 전통과 현대의 멋이 어우러진 도시이다. 수원은 서울까지 1시간 거리로 접근이 용이하며, 현재 경기도의 지리와 문화,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경기도청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2016년은 수원화성의 역사가 이뤄진지 220주년이 되는 해로, 수원시와 125만 시민들은 이런 뜻깊은 해를 맞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수원화성에 더 많이 방문할 수 있도록 올해를 ‘2016 수원華城 방문의 해’로 지정했다. 수원화성 축성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대내외적으로 전달하고, 수원의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알려 관광의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18세기 동 · 서양의 축성술이 집약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됐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됐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됐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졌는데 또한,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해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했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했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됐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해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의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흐르고 있다.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돼 있다.


[사진] 능행차 연시 재연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실생활 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한 축성법, 현안ㆍ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해 축성했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수원화성은 동 · 서양의 축성술이 집약된 당대 최고의 과학적 구조물이며, 축성 당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 의미도 매우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수원화성은 그 건축기술과 모양의 특수성, 디자인의 다양성 등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 됐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해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는데, 화성행궁은 사도세자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곳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고, 1790년에서 1795년(정조 14∼19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했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화성행궁은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돼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되고 지난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 됐다.


[사진] 해우재

세계의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다, 해우재 & 화장실문화공원

세계에 단 하나뿐인 변기모양 화장실 박물관 ‘해우재’는 여러가지 화장실에 대해 알려주는 친근감 있는 박물관으로서 2층에는 우리나라의 옛 화장실, 공중화장실, 세계의 재미있는 픽토그램이 전시돼 세계의 화장실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설립자인 Mr. Toilet 심재덕 전 수원시장은 외갓집 뒷간에서 출생해 ‘개똥이’라는 이름을 얻어서인지 화장실에 대한 애착이 유별났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취급받지 못한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지로, 마침내 화장실 문제를 국제문제에서 다루는 민간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창립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본인이 생전 30년간 머물렀던 집을 허물고 변기 모양의 ‘해우재’를 건립했다.

사후 유족들은 그의 뜻에 따라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고, 이후 삼국시대, 조선시대와 현대까지의 화장실 역사와 조형물 등이 설치된 세계 최초 화장실 문화공원과 함께 2012년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장했다.

해우재와 문화센터, 문화공원은 심신을 편하게 하는 휴식장소 역할 제공과 정서함양의 체험학습 공간으로서 국내외 방문객의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사진] 광교호수공원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 ‘광교호수공원’

광교신도시 내 국내 최대 규모의 호수공원 ‘광교호수공원’은 물과 숲을 테마로 조성됐으며, 특히 광교신도시와 광교호수를 어우르는 야경은 국토교통부에 의해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차지한 바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광교호수공원은 원천유원지를 자연에 가깝게 복원하고, 기존의 숲에 더해 교목과 관목 등 수십만 그루를 식재해 자연친화적 수변 공간이자 친환경 공원으로 거듭났다. ‘어반레비’, '신비한 물너미', '재미난 밭', '신대호수먼섬숲', '커뮤니티숲', '행복한 들', '조용한 물숲, 향긋한 꽃섬' 등 6개 테마로 구성돼 있다.

인류를 위한 혁신 이야기,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

어둠을 밝히는 전구, 사람을 이어주는 전화, 문화를 전파하는 TV, 라디오, 그리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세탁기, 냉장고 등 다양한 가전기기와 함께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전자산업이 생활과 삶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전기의 발견부터 최신 스마트 기기에 이르기까지 전자 산업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인류의 삶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왔다.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에서는 이러한 전자산업 혁신의 역사와 미래를 전시하고 이야기한다. 전기, 조명, 통신, 가전, 미디어의 발전역사와 발명가 그리고 그 역사가 살아 숨쉬는 제품들이 진품 그대로 전시돼 있는 곳으로 전기와 반도체의 원리, 활동에 대한 발전상과 모습들을 영상과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또한, 최신 기술 디스플레이로 만나볼 수 있다.

발명가의 시대, 기업혁신의 시대, 창조의 시대로 구성된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은 전자산업의 역사와 더불어 또한, 삼성전자가 주도해온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을 통한 정보 분야 발전의 성과를 전시한다. 전자산업의 역사를 체험하고 혁신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사진] 통닭거리축제

따듯한 수원의 정을 한입 가득 ‘수원갈비’ ‘통닭거리’ ‘순대타운’

여행에 맛있는 음식을 빼놓고 얘기할 순 없는 법! 일단 수원하면 떠오르는 것이 ‘갈비’이다. 영동시장의 ‘회춘옥’에서 1956년 갈비구이를 판매해 큰 인기를 얻은 것이 수원갈비의 시작인데, 다른 지방의 갈비보다 크고 푸짐하며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해 맛이 매우 좋다. 옛날 수원에 큰 소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소를 이용한 음식도 다양하게 발전됐으리라 본다. 이처럼 수원갈비는 수원의 향토음식으로 가장 유명하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의 통닭거리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면서 국내관광객들은 물론 외국인관광객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수원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옛 방식 그대로 대형 가마솥에서 튀겨지는 고소한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우는 통닭거리는 저렴한 가격, 통닭의 바삭하고 쫀득한 식감, 푸짐한 양, 그리고 통닭과 함께 나오는 모래집(닭똥집)까지 매력적인 요소가 더해져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곳이다.

수원 지동시장 먹자골목 안에 위치한 순대타운은 30~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순대, 곱창, 족발 전문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맛과 푸짐한 양으로 수원지역은 물론 외지에서도 일부러 찾아 올 만큼 유명하다.


문화관광저널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