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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이의 ‘한숨’ 뮤직비디오 속 휴먼스케일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  / 2016-04-14 18:32:08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척도. 건축, 인테리어, 가구에서는 길이, 양, 체적의 기준에 인간의 자세, 동작, 감각에 입각한 단위가 필요하다.’ 인테리어 용어사전에 기재된 ‘휴먼스케일(Human Scale)’의 정의이다. 흔히 주거공간을 비롯해 도시 등 건축의 내·외부 공간을 설계할 때 휴먼스케일을 적용한다고들 얘기한다. 휴먼스케일이란 사람을 설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의미로, 보다 친밀감 있는 공간과 주변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 휴먼스케일은 물리적, 시각적 크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크기까지 고려한다.

보통 사람들은 서서 팔을 뻗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 즉 내 손이 닿을 것 같은 높이(약 2.4m)의 공간에서 안락함을 느낀다고 한다. 층고가 5m 이상인 건물에 들어가면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지는 경험과 함께 ‘멋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휴먼스케일을 벗어남으로써 가지는 일종의 긴장감이라고 모 건축가는 얘기한다. 천장이 높은 성당이나 교회에 갔을 때 자연스레 경건함을 느낀다든지, 전시장이나 공연장 등 거대한 규모의 건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곳에 와있다는 생각이 든다든지 하는 게 예가 된다.

우연히 건축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에서 ‘휴먼스케일’이란 단어를 듣고 그 개념을 이해하고 나니,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이 휴먼스케일 하나로 설명되어졌다.

내가 존재하는 작은 공간을 벗어나 더 큰 도시에 매력을 느끼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망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도시화,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딱 그만큼의 불안과 긴장 또한 짙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공간은 우리에게 큰 매력과 동경, 경외, 그리고 불안감을 선물한다.

최근 발표된 가수 이하이의 ‘한숨’ 뮤직비디오에도 이런 공간에 대한 고찰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라며 평범한 사람들을 다독이는 듯한 이 노래가 뮤직비디오로 형상화되는 순간, 필자의 머릿속엔 ‘휴먼스케일’이란 단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높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는 작은 사람들, 화려한 도시와 대비되는 그들의 깊은 한숨 속엔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까지 느껴졌다. 버드아이 촬영기법으로 도시의 깊이가 극대화될수록 더욱 그랬다.

가끔, 현시대는 산업화, 세계화를 명분으로 많은 이에게 더욱더 인간답지 않은 삶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손이 닿을 것 같은 높이, 즉 2.4m의 공간뿐이었을지도 모른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의 한국 국민으로서 생각해보는 바이다.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