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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를 법으로 강제해야 할 지경이라니...

글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15-09-15 14:25:17


그의 팔순 가까운 부친은 중풍으로 쓰러져 언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모마저 충격으로 치매증상이 나타났다. 혹시나 회복될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백방으로 쫓아다녔지만 점차 기억을 잃어만 갔다. 그는 집안의 막내로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결혼한 언니들과 오빠는 제 살길이 바빠 부모를 돌볼 형편이 못 된다고 외면한다. 그는 혼자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 생활을 위해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안타까움에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며 부모와 함께할 것이라고 고집한다.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테지만 우리의 전통 윤리관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가족이 우선이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정신이 더 강하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부모·자식과 형제간에 재산 다툼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 패륜범죄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 윤리의식은 개인주의 사상에 밀려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는 실정이다. 특히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부모 부양문제가 국가 어젠다로 대두됐다.

물려줄 유산이 많은 부모는 생전에 전 재산을 증여해 줬다가 노후에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전 재산을 넘기는 것은 노후를 위해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 노인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전파되고 있다. 재산 때문에 천륜까지 의심하는 지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들은 일부일 뿐 대부분의 사람은 전통 윤리관을 지켜가고 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세대들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외면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자기중심적 문화를 선호하고 개인주의로 가족 공동체 의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히려 개인을 위해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는 세태다.

지난해 40%의 시청률을 기록한 KBS 2TV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그 세태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차순봉(유동근 분)은 세 자녀의 개인주의적 의식에 실망하고 성인이 된 20세 이후부터 들어간 모든 양육비는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한다. 이로 인해 가족 간의 신뢰와 애정을 회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녀를 상대로 낸 부양료 청구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135건에서 2014년 262건으로 10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급기야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자녀에게 증여한 재산을 되돌려 달라는 이른바 ‘불효자식 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으며,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불효자의 행패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법률까지 제정해야 할 지경일까. 불효자식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으며 국법으로 다스리는 중범죄였다. <고려사> ‘형법지’에 보면 부모 공양에 소홀하면 징역 2년, 부모를 구타하면 목을 베는 참형에 처했으며 실수로 구타를 해도 3천 리 밖으로 귀양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민법 556조에는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형법상 범죄행위를 했을 때는 증여를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558조에는 증여를 이미 이행한 때는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 이번 새정치민주연합과 법무부가 추진하는 민법 개정안은 증여가 끝나버린 재산도 돌려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부모·자식 간의 인연이 파탄에 이른다면 부모가 증여재산을 환수해 노후를 대비하게 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또한, 패륜 범죄행위는 당연히 법을 강화해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의 패륜을 감추거나 선처를 호소한다. 패륜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금지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효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전통 윤리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일부 망나니들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의 위상을 추락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불효자 방지법 제정은 심사숙고해야 할 민족적 사안이며 결코 정치적 의제가 돼선 안 될 것이다.    





“불효자 방지법 제정은 심사숙고해야 할 민족적 사안이며 결코 정치적 의제가 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