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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순교자 부부의 아픔이 깃든 일본 아키타

101번 눈물의 기적, 아키타 성모성지를 방문하다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  / 2015-07-16 14:51:19
























남녀 주인공이 함께 거닐던 하얀 설원과 아름다운 청록색 물빛아래 신비로운 전설이 깃들어 있는 타자와 호수. 한국인에겐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로 유명한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秋田縣)의 풍경이다. 이렇듯 아키타현은 전체 면적의 70% 이상이 산림으로 이뤄져 있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또한 드라마에서처럼 유백색의 온천수에 노천 혼탕 체험까지 가능한 쓰르노유, 타마가와 등 오랜 전통의 온천들이 아키타현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많은 여행객들이 아키타에서 대자연을 벗 삼아 지친 몸을 회복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어 가는데, 이런 아키타가 최근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로 주목받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 일 신자들의 마음을 담아 건립한 ‘아키타 한국인 순교자 현양비’
매서운 바람에 겨울비까지 쏟아지던 지난해 11월 3일. 아키타 야바세혼초 젠료지(全良寺)의 한 묘역에서는 한국인과 일본인 6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아키타 한국인 순교자 현양비’ 제막식이 열렸다. 현양비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가 1624년 일본 아키타에서 순교한 조선인 식스토 가자에몬과 가타리나 부부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이들은 당시 일본군이 포로로 삼은 조선의 많은 기술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가톨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아키타 남부 데라자와 은광산 인근 마을에 생활했는데,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8개월간 감방에 갇혀 가혹한 대우를 받고는 끝내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후 2005년 아키타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 국제음악회에 참가한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들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곤 일본의 신자들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순교자비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한, 일 신자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 한국 신자들은 순교자비건립위원회를 조직, 후원금을 모으고, 일본 교회 측은 순교사료조사와 순교지 매입 실무 등을 맡았다. 당시 황기진 순교자현양비건립위원장은 “우리 선조지만 400년 동안 잊혀진 분들을 이제야 현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한, 일 신자들의 친교가 우리 선조인 순교자들을 현양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사실 아키타는 두 분 외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당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번 한일 교류로 현양비가 세워지면서 다른 순교자들의 현양에도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현양비가 세워진 후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같은 조선인 순교자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 듣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많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성모 발현의 현장, 성체봉사회 가톨릭 수도원


아키타에는 성지 순례자들이 또한 많이 찾는 신비로운 장소가 있다. 아키타역에서 차로 20분 정도 들어가 가파른 소에가와 유자와다이 언덕을 지나면 널찍한 평원이 나타나는데, 일본 사찰을 연상시키는 전통 목조건물의 모습과 대비적으로 지붕 끝에 십자가 조각이 인상적인 성체봉사회 가톨릭 수도원이 그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키타 성모성지’로 더욱 잘 알려진 성체봉사회 가톨릭 수도원은 1946년 가톨릭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도모임이 발전해 1970년 아키타현에 설립된 여자 수도원이다. 이곳이 성모성지로서 유명해진 것은 수녀원 경당에 모셔진 목조 성모 마리아상 때문이다. 1963년 조각가 와카사 사부로(若峽三郞)가 제작한 이 성모상은 1975년부터 1981년까지 약 7년간 101회에 걸쳐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를 두고 성모 발현(하늘나라의 성모 마리아가 특이한 방법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일. 발현 시 여러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한다)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긴다.

수녀원의 사사가와 아녜스 수녀에 따르면 1973년 6월 28일 그녀의 손에 열십자로 교차한 성흔이 나타난 데 이어 성모상의 손바닥에도 똑같이 성흔이 나타났다고 한다. 성모상의 성흔은 눈물이 흐르기 전에 나타났다가 눈물이 흐른 후에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 눈물의 일부를 아키타대학 법의학과에서 분석한 결과 인간의 체액, 즉 ‘눈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성전의 오른편, 일반 신자들의 순례가 제한된 곳에는 성모상의 눈물을 닦은 솜을 모아뒀다.

성전을 나서면 수도원의 정원들이 보인다. 정원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성 마리아의 집’,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순례자의 길’, 에덴동산을 나타내는 ‘마리아의 정원’, 한국 순례자들의 봉헌금으로 신축된 일본 전통가옥 형태의 성당 등이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의 숨결을 느끼고자 성체봉사회 가톨릭 수도원을 방문하고 있다.

일본의 대자연이 선사한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한국인 순교자의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성모발현의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올 여름 아키타현에 방문해 보자.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현양비에 새겨진 식스토 가자에몬과 가타리나 부부의 넋을 위로하면서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