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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일제 강제 노역장 세계문화유산 둔갑

  / 2015-07-10 10:36:27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라는 인물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 에도시대의 존왕파 사상가이며 교육자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이론가로 여겨진다. 그는 ‘유수록(幽囚錄)’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해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유수록에서 그는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어 즉시 홋카이도를 개척하고, 제후를 봉건(封建)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카나와와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과 필리핀 루손(呂宋)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그의 제자들은 메이지 유신에 이어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주도했다.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그의 사설 교육장으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쇼카손주쿠 출신들은 정부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오늘날 일본 우익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 곳을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에 포함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쇼카손주쿠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과거에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유네스코 등재 문제와 관련해서 외교역량을 강제 노역에 충분히 반영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며 "국제사회에 이해와 공감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유산 문제로 대응한다는 것보다 다른 차원으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해명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요구대로 이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는 일본 침략 야욕의 산실이 된 이곳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안이한 대처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5일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등재심사에서 한국 시민단체 등의 반대시위가 계속된 가운데 강제징용 시설을 포함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로 합의 결정했다. 일본 측 수석대표인 이즈미 히로토(和泉洋人) 총리특별보좌관은 “일본은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 하에서 강제로 노역하였으며...,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들의 강제징용 사실을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더불어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발언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일본이 향후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것으로 믿는다”며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유산군'이란 명분으로 신청한 근대산업유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동의했다.

그러나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이 발표된 직후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일본 대표의 발언에서 ‘forced to work’ 등의 표현은 강제노동의 의미는 아니다"며 강제노역 인정을 거부해 우리 정부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forced to work를 일본어로 ‘일하게 됐다’는 의미로 임의 해석하며 강제징용 사실을 부인한 것인데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의 '강제노역' 문구 삽입 자체가 외교적 성과라고 자평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영어 원문을 원칙대로 해석하고 앞으로 어떻게 이행하는가를 지켜보면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등재된 23개 시설 중 7곳은 우리 국민 5만 8,000명이 강제 동원돼 ‘지옥섬’이라 불리는 지하 탄광 등에서 혹사당한 곳으로 122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한 맺힌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한이 서린 강제 노역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일본의 자랑스러운 관광명소가 된다는 것에 울분이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술수에 놀아난 당국자도 잘못이 있다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더 이상 우리 민족을 오욕하지 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글 l 전병열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