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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보게 되는 새로운 시작 ‘해남’

해남땅끝마을, 도솔암, 울돌목 볼거리 가득…

  / 2015-05-14 18:04:56


지자체관광매력탐구-해남군-트래블



5월, 점심을 먹고 창가에 앉아 볕을 쬐고 있으면 나른하게 잠이 오게 마련이다. 창틈으로 들어온 따스한 바람은 꾸벅꾸벅 더 자라고 필자를 다독인다. 기지개를 쭉 켜고 달력을 본다. 춥다고 발만 동동 구른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5월 중순이 코앞이다. 마냥 이렇게 세월을 보낼 수만은 없어 예정지도 정하지 않은 채 짐을 꾸렸다. 어디를 가볼까.

엉뚱하게도 필자의 머릿속엔 ‘땅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땅끝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굉장히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뭐든 시작과 끝이 있는데, 땅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필자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오게 될 지도 궁금했다. 항상 필자의 여행의 시작은 이렇게 엉뚱한 발상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엉뚱한 발상에서부터 땅끝 해남으로 가는 필자의 발자국이 담긴 모든 길이, 여행지가 된다.



호남선 ktx로 빨라진 관광권

사람들에게 해남은 ‘땅끝’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한반도의 끝이란 사실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방문하고 싶은 곳 1위긴 하지만, 서울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경상도에서도 거리상 방문하기가 꼭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번에 호남선 ktx가 개통됨으로써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눈에 보기 좋고, 귀에 듣기 좋고, 혀에 담기 좋은 것은 비단 자신만이 누릴 것이 아닌, 타인과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 호남선 ktx로 빨라진 관광권에 더 많은 이들이 천혜의 경관을 누리게 될 것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해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커피 한 잔을 음용이 아닌, 각성제(?) 용도로 마셨다. 5월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저 잠으로만 스쳐 지나기엔 너무도 아쉬워 눈을 크게 뜨고 5월을 필자의 눈에 담고 싶었다. ‘눈은 가장 좋은 사진기’라고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좋은 사진기를 준다고 한들 필자가 본 것과 사진기로 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5월은 나뭇잎의 색깔이 가장 예쁜 달이다. 스치는 모든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조각, 모든 게 4월과 다르다. 그래서 모두 5월엔 그렇게 산으로 들로 떠나려고 하나 보다. 버스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풍경들을 보자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도시의 켜켜이 묻은 때는 저 멀리 떠나보내고 여행이 주는 그 ‘신비로움’에 마주하러 가는 것 같았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

한반도 최남단 땅끝에 위치한 해남은 두륜산 영봉 아래 삼면이 바다에 접해 산자수려한 천혜의 경관과 찬란한 문화유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끄트머리면서 해양과 대륙문화의 시작을 동시에 상징하는 땅끝.

우리 국토와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높이 10m의 ‘땅끝탑’을 세웠으며, 또한, 사자봉 정상에는 39.5m 높이의 전망대와 모노레일카를 설치해 많은 탐방객이 이곳을 찾고 있어 땅끝의 명물이다. 

땅끝 선착장 입구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땅끝 모노레일 승강장이 이어진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봉수대다. 조선 초에 설치돼 고종 때 폐지된 봉수대는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상엔 횃불 모양의 전망대가 우뚝 서있다. 4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자 보길도, 노화도, 어룡도, 장구도, 소안도, 완도도 한눈에 보인다.

갈두리 선착장에선 노화도와 보길도를 오가는 연락선을 탈 수 있다. 1시간 거리의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말년을 보낸 섬으로 유명하다. 선착장 앞 맴섬은 일출 명소. 두 개의 바위섬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는 풍광이 기가 막히다. 1년에 단 두 번, 2월과 10월에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절경이 장관이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 한라산이 가깝게 보인다고 하니 이곳이 땅끝임을 절감하게 한다. 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비탈을 오르며 정면으로 난 창을 통해 푸른 남해 바다와 다소곳이 자리 잡은 바닷가 마을을 감상할 수 있다. 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은 수평선과 함께 아름다운 남해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져 마음이 시원하다.

백일도와 조도를 비롯해 저 멀리 진도까지, 땅끝에서 마주한 바다의 풍경은 뛰어내리면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먼 느낌이 든다.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400m의 해안 산책로로 연결돼 있고 눈앞에 바다를 두고 길을 안내하는 산책로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한낮에도 빛을 가린다.

바다와 숲을 감상하며 10여 분쯤 내려가면 드디어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에 닿는다. 북위 34도 17분 21초, 해남군 송지면 사자봉 땅끝.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에서 본 바다는 평생 마음 속 추억을 새긴다. 이곳을 누가 ‘땅끝’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수면을 거둬내면 또 다시 땅이 이어지는데…. 사람의 기준으로야 땅끝이지 지구의 입장으로 보면 그 어느 곳도 시작도 끝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 피식 웃음이 났다. 

많은 이들이 ‘땅끝전망대’와 ‘땅끝탑’ 앞에서 많은 사진을 찍는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사진첩을 다 모아 보면 사람만 다를 뿐 배경이 같은 곳이 많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땅끝탑’이다. 필자도 그랬으니까. 그만큼 의미가 깊고 수려한 경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해남 땅끝의 갈두산에서 달마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한반도 지형처럼 생겨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연인지 아닌지 한반도의 끝에서 다시 보는 ‘작은 한반도’는 자연의 숨겨진 비기에 입 다물지 못하게 한다.




남도의 금강산 ‘도솔암’

도솔암은 달마산 도솔봉에 자리 잡아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통일신라시대 말 화엄조사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졌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신라의 고승이 굳이 반도의 땅끝에 솟은 산 속에서도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암자를 지은 이유는 직접 이곳에 와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

암자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과 딱 붙어 있는 남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제멋대로 생긴 것 같지만 뜯어보면 하나하나 잘 생긴 암릉들이 손님의 눈길을 붙잡으려고 경쟁하듯 하늘로 뻗어있다.

봄철이면 암자 주위에 피는 철쭉꽃은 이 비경의 화룡점정이다. 전설의 중국 선승인 달마의 이름이 이 산에 붙은 것도 이런 풍경 덕분인 것 같다. 드라마 ‘추노’에서 조선 최고의 무장이었다가 노비 신세가 된 송태하(오지호)가 가장 먼저 도망간 곳으로 나오는 곳이 도솔암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라도 그가 여기로 도피해 온 절박한 심정이 짐작된다. 삶이 순식간에 추락하는 비극을 겪더라도, 이곳에 앉아 하늘과 바다와 산과 암자를 보고 있으면 모든 고뇌도 잠시 잊힐 것 같았다.

암자로 드는 길은 황홀하다. 오른쪽은 완도와 남해가, 왼쪽은 진도와 서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 숱한 다도해도 아름답다.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는 모두 수석을 조각해 촘촘히 세워놓은 불상 같다.

도솔암은 천자 길이의 돌기둥을 세워 그 위에 암자를 지은 것처럼 아찔하다. 낭떠러지 같은 벼랑의 봉우리 끝에다가 어찌 저런 암자를 세웠을까 놀라울 뿐이다. 아슬아슬한 암봉을 축대로 막아 전각을 세우고 손바닥만한 마당을 들였다. 마당 앞으로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한 바위 봉우리들의 위용이 대단하고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경이 절경이다. 밖에서 암자를 보면 절벽 위에 앉은 모습에 현기증 나지만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서면 오히려 안락하고 편안하다. 또한, 도솔암은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달마대사의 법신이 늘 상주하는 곳’으로 적고 있다. 달마산 도솔봉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울돌목’

울돌목은 ‘바다가 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것의 한문 표기가 울 명(鳴), 대들보 량(梁)으로 명량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보면 멀리서도 바다 가운데로 소용돌이치며 용암처럼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 

물소리도 대단해 과연 바다가 우는 듯하다. 그날은 승리의 외침과 패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있었을 것이다. ‘선조실록’엔 왜선 31척을 대파했고, 92척이 기능을 잃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 수군은 1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다만 전사자 2명과 부상자 2명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원리였을까. 그는 성웅으로 우리에게 남아, 자주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나약한 자손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고 있다.

울돌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크지 않은 키, 허리엔 칼을 차고, 손에는 지도를 들었다. 고개를 약간 숙였고, 어깨도 조금 처진 듯하다. 거센 바람에 비록 딱딱한 동상이지만 옷자락 끝이 날린다. 그의 뒷모습에서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여행자는 당당하게 호령하는 이순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장면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명량에서 똑같이 재현됐다. 그날 밤 이순신 장군의 생각과 마음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짐작 할 수 없다.

명량대첩은 이순신의 3대 대첩 중 하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한산대첩에서는 학익진이라는 전술을 남겼고, 1597년 명량대첩은 울돌목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대승을 거둔다. 다음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다. 

장군은 임진왜란 중 20회 이상의 해전을 치렀다. 그는 ‘난중일기’에 뛰어난 문장을 남겼고, 군사를 독려하는 힘 있는 연설가이기도 했다. 글재주와 언변보다는 진심과 충성, 신의에서 오는 가슴의 소리였다.

“제게 전선이 아직도 12척이나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중략)… 제가 죽지 않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왕을 위로했고, 용기를 줬고, 긍정적인 자신감으로 신의와 충성을 보였다. 그는 또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전쟁에 임했고 끝내 이겼다. 뛰어난 지략과 열정과 용기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순신 장군처럼 한다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겠다. 그 정점을 찍었던 곳이 바로 이 곳 전라우수영, 울돌목이다.




남도 1번지에 와서 꼭 먹어야 할 ‘진양주’

해남 진양주는 지난 1994년 1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면서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2010년 국비 지원을 받아 자동화 시스템을 갖췄지만 해남 진양주 기능보유자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한다. 자칫 방심하면 술이 아니라 식초가 되기 때문이다.

임금이 마시던 ‘진양주’는 조선의 임금이 마시던 술이다. 구중궁궐에서 마시던 술이 해남의 가양주가 된 사연이 특별하다. 조선 헌종 때 술을 빚던 궁녀 최씨가 궁에서 나간 뒤 사간벼슬을 지낸 김권의 후실로 들어갔고 최씨에게 술 빚는 법을 배운 김권의 손녀가 해남 장흥 임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 것이 시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남 진양주를 꼭 한 번 먹어봐야 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다. 해남에는 먹을거리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먹을거리 중 제일은 진양주다. 술 하나에도 술 담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 술의 맛은 깊이를 더한다. 순수하게 찹쌀과 누룩으로 빚었지만, 꿀을 섞은 듯 달콤하고 부드럽다.

해남 진양주는 청주 빚을 때 시루에 쌀을 쪄서 지에밥을 짓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찹쌀 죽에 누룩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 3~4일 뒤에 찹쌀지에밥을 지어 1차 발효시킨 밑술과 섞는데 이때 물 3~5되(5.4~9ℓ)를 보충한다. 1차 발효 후 2차 발효까지 26일 정도가 걸리며, 발효된 누룩이 뜨면 일일이 주걱으로 저어야 한다. 여기에 쓰는 물도 중요하다. 마을 뒤를 병풍처럼 감싸는 흑석산은 월출산의 끝 줄기에 해당하는데, 바위의 색깔이 월출산과 같은 자줏빛이다. 

여기에서 흘러내린 물이라야 해남 진양주의 진정한 풍미를 낼 수 있다. 200년 전 술을 빚을 때부터 사용하던 마을의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금은 200m 깊이의 암반을 뚫어 거기에서 난 물을 쓴다. 마을의 물이 술의 풍미를 깊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사나 집안 잔치 때 조금씩 만들던 가양주에서 이제는 대량생산을 하지만, 밑술을 만드는 일부터 여과 과정을 거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리는 것은 200년 전과 똑같다. 해남 진양주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 찾아와 그 유래와 술 빚는 과정을 듣고 시음도 한다. 부드러운 향과 맛에 반한 사람들은 반드시 해남 진양주를 다시 찾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해남을 다 여행하기엔 역부족이다. 넉넉히 이틀의 시간 여유를 잡고 와야 해남을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마무리할 때 한 잔의 ‘진양주’는 해남을 더 가까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해남은 워낙 땅끝으로 유명해서 다른 관광지가 묻히는 경우가 많다. 땅끝마을 외에도 두륜산, 고산 윤선도 유적지, 우수영, 우항리 공룡화석지 등 관광할 곳이 많이 있다. 땅끝 마을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시작, 다른 이들도 꼭 그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남유진 기자 (0166430410@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