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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善晉美’ 산시성의 5000년 역사 속으로...(2)

  / 2015-03-11 14: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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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공사, 엔문관, 진사를 답사하다

윈강석굴을 답사한 후 대동시에 위치한 윈강건국호텔(雲岡建國飯店)에 여장을 풀었다. 도중에 식사를 하고 바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원고를 정리했다. 예전 같으면 전통 시장을 답사하고 이국 지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다녔을 텐데 이번 팸투어는 그런 기분이 나질 않았다. 관광은 함께할 벗이 있으면 즐거움이 더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혼자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호텔 뷔페의 아침 식사는 대부분 유사한 메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역 특산물이 함께 나온다. 산시성에는 물 대신 식초를 제공한다. 이곳 사람들은 해독용으로 또는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 식초를 먹는다고 한다. 이방인으로서는 아직 체감이 되지 않는다.

쉬안쿵사(懸空寺)로 가는 고속도로변은 앙상한 가로수 사이로 얼어붙은 호수와 논밭 경작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 날씨는 한 여름 40℃에서 한겨울에는 -40℃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관광시즌은 4월~10월이 적기라는 가이드 이영월 씨의 설명이다. 오대산에는 5월에도 눈이 온다고 한다. 이번 팸투어 일정에 오대산(五臺山)이 계획돼 있지만, 폭설이 내려 갈 수 없다고 한다. 설경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차량통행이 불가하다는 전갈이다.


쉬안쿵사(懸空寺)의 역사를 담다

건조한 날씨로 수목이 잘 자라지 못해 삭막한 느낌이다. 현공사 입구에는 북악항산(北嶽恒山)이란 표지석이 서 있다. 항산 중턱 절벽에 벌집처럼 현공사 건물들이 붙어 있다.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깎아지른 듯이 험하고 위태로운 벼랑에 붙어 있는 건축물들은 긴장감마저 들게 한다. 깊은 계곡사이로 생겨난 호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이곳이 공중사찰로 불리는 현공사다. 


 


현공사는 대동시 훈위안현(渾源縣)의 헝산 진룽협(金龍峽)서쪽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찰은 건립된 지가 1,400여 년이나 된다. 헝산 십팔경의 제일이며 건축역사상 기적으로 불리고 있다. 현공사는 중국에서 유교 ? 불교 ? 도교가 공존하는 사찰이다. 건축구조가 완벽하고 건물의 높이가 같지 않은 건축물로 자연 지세를 충분히 이용하여 건립돼 있다. 대부분 누각들이 마치 공중에 매달린 듯이 나무기둥으로 받쳐주고 있으며, 험준한 사찰로 이름 나 있다. 장관을 이룬 현공사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계단을 밟고 오르자 가느다란 기둥에 의지한 낡은 법당이 긴장하게 한다. 어떻게 1,400여 년을 견뎌냈을까 느낄 정도다. 허술하게 관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사찰이라고 불릴 정도로 벼랑 끝에서 절경을 이루고 있지만, 보호가 시급해 보인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벼랑 끝에서 내려다보자 현기증이 생긴다, 건물은 낡아서 쓰러질 것만 같고 도색이 벗겨진 받침목은 부러질 것만 같다. 문틀이나 나무판자들도 부식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 만큼 제대로 보존관리가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윈강석굴에서도 훼손된 불상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늦게라도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곳도 보전관리가 시급해 보인다. 불상들과 불화도  본래의 색깔을 잃고 바랜 형태다. 제대로 보존해야 할 텐데 마치 그대로 방치한 느낌이다. 왜일까?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비바람에 시달리고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어쩔까? 하지만 점차 편안한 마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부처님의 가호가 있어서일 것이다. 永垂不朽(영세불후)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었는데 ‘천추에 빛나리라’는 의미다. 장관(壯觀) 이라고 새긴 바위 앞에서 사진 한 컷 찍었다.




대동시 화태호텔(華泰大酒店)에서 칼국수와 생선조림, 양고기, 쌀밥, 당면(粉絲) 등으로 식사를 했다. 칼국수에 이곳 특산물인 식초를 첨가해 먹어보고 면의 식감에 조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음식 맛은 한식과 비슷한 데 매운맛이 강했다. 청도맥주를 곁들인 식사는 오랜만에 포식을 한 기분이다.


3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엔문관(雁門關)

일정에는 오대산(五臺山) 답사로 돼 있었으나 폭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됐다는 연락을 받고 엔문관으로 코스를 변경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오대산 관광이 눈(雪)으로 인해 수시로 통제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식사 후 오후 1시 30분경에 엔문관으로 향했다. 엔문관 입구에는 관광안내소가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일반 관광객들은 이곳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가야하지만, 우리는 안내소를 둘러보고 관리자의 안내를 받아 정문까지 차량으로 이동했다. 엔문관호텔도 보였으며 마오쩌둥(毛澤東) 자필 시비가 눈길을 끈다. 심원춘설(沁園春雪)은 마오쩌둥의 심정을 표현한 시로 중국에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애석하게도 진시황, 한 무제는 문재가 모자랐고 당 태종, 송 태조는 시재가 무디었더라. 칭기즈칸도 활 당겨 독수리 쏠 줄밖에 몰랐으니 풍류 인물 세려면 오늘을 보아야 하리” 오늘날 중국의 풍류 인물은 자신이라는 심중을 밝힌 사(詞)라는 것이다. 원석에다 붉은 글씨로 새겨진 비석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엔문관 정문 입구에는 엔문관이라는 현판과 함께 역대 인물들의 초상을 새긴 거대한 석벽이 세워져 그 업적과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엔문관은 시찡관(西?關)이라고도 부른며 산시성 신조우시(?州市) 쑤조우시(朔州市) 인접에 자리 잡고 있는 만리장성의 중요한 군사 요새이다. 길이는 1km로서 담의 높이는 7m이며 닝우관(寧武關), 펜관(偏關)과 함께 ‘외삼관’이라고 불렸다. 3개의 성루가 있고 성곽은 매우 웅장하며 북쪽은 병영이, 동남쪽에는 연병장이 있다. 엔문관은 한족과 흉노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적 등 북방민족과의 전쟁터였으며, 중국 장성문화의 진귀한 유적으로 2001년 국보로 지정됐다. 3200여년의 역사를 복원한 곳으로 관내는 한족이 생활했으며 관외는 유목민이 거주했다. 전국에서 현존하는 보기 드문 ‘변관 마을’의 표본이며 역사에서는 엔먼채(雁?寨)라 불린다. 청나라에는 명월춘으로, 민국 초년에는 예먼관춘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중원 및 새외 경계에서 살며 그들의 생활 방식은 남북 겸비(南北 兼備)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하고, 전통 풍속이 아직 그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객잔도 있고 주막도 있으며 병사들이 머물고 훈련한 장소들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마치 시공을 초월해 역사의 현장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구축된 성벽은 적의 침략에 대비한 철통 같은 장벽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엔탑 망루에 올라서자 사위의 산봉우리들이 눈 아래 들어온다. 마치 천하를 내려다보는 하늘 끝에 닿은 느낌이다.

 “이광, 위징, 곽거병, 설인귀 등이 누비던 이곳이 봉화는 이미 꺼지고 장성은 고이 잠들었는데 창망한 심양 속에 은은히 멀어져가는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는다. 관광객들을 위해 곳곳에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 일본어가 병기된 설명문이 서 있어 개략적인 내용은 알 수 있게 했다. 한글은 문장을 이해하기가 나해한 번역이다.

비림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엔먼관을 칭송한 역대 명인들의 시를 당대 서예가들의 글씨로 비석에 새긴 것이며 7개 계단에 200개의 석비가 건립돼 있다. 전장에 건립된 시비가 묘한 감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비림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엔문관루(雁門關樓)를 둘러 중도에서 하산을 해야 했다. 걸어서 성곽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내려오다 진변사(鎭邊祠)라고 적인 사당을 둘러봤다. 이곳의 연공당(偃公堂)이라는 안내판에는 ‘엔문관을 수비했던 대장 중 서주 무왕의 동생 희행(기원전 1022년)을 당시의 성왕이 성씨 행씨(幸氏)를 하사해 전 세계 성씨의 원조가 되었다‘고 적혀있다. 이 사당은 엔문관을 수비했던 幸氏의 시조 연공(偃公)을 모시고 있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최초, 최고, 최대를 자랑한다. 판악(潘岳)이 지은 장성대풍가(長城大風歌)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표돌천(豹突泉)이라는 우물에는 이런 내용의 설명문이 기록돼 있다. 명나라 ‘만력판 대주지(代州志)’에 “평지에서 맹수처럼 생긴 천이 일어났습니다”라는 기록이 있어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이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가 와도 넘치지 않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엔먼채(雁門寨)라는 변관마을이 조성돼 역사의 현장으로 거니는 느낌이다. 엔먼관이라는 거대한 성벽모양의 벽면에 조성된 역사인물 들을 보며 늘어선 기마 장군들의 동상이 마치 장성을 지키고 있는 모양이다.

엔문관 답사를 마치고 태원시로 향했다. 깊은 산중 계곡이지만 고속도로가 건설돼 있다. 주변 산에는 나무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건조한 기후로 나무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긴 엔문관터널(10,358m)을 지나 석양을 마주하며 달리는 차 창에는 아름다운 전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초의 황실 원림 진사(晉祠)

태원 시내에 위치한 완스징화 호텔에 도착했다. 태원시는 산시성 성도이며 이곳에서 산시성 답사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호텔 뷔페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다. 베이징으로 떠나는 고속열차 시간에 맞춰 남은 시간에 진사를 답사하기로 했다.

진사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황실원림으로 타이위안시(太原市) 서남쪽 쉬안우엉산록(懸翁山麓)에 위치하며, 중국고대 제사건축물 ? 원림 ? 조소품 ? 벽화 ? 비명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진귀한 역사문화 유산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진사에 안 가보면 타이위안에 간 보람 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진사의 난로우천(難老泉) ? 성녀소상(聖女像) ? 성모소상(聖母像) 은 진사삼절 (晉祠三?)로 칭송되고 있다. 진사는 북위 386년에 건축됐으며, 현재까지 송ㆍ원ㆍ벽ㆍ청 시대의 건축물 100여 개와 100여 개의 조각상, 천 년 고목 20여 그루가 남아 있다. 이곳의 성모전은 송나라 때 건립했으며, 전당에는 43개의 채색 조각상이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성모전의 목조반룡(나무기동에 휘감아 오르는 용의 조각)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반룡주조로서 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진사의 조각상들은 희로애락의 다양한 표정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당시 조각기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궁녀들과 무사들의 배치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평형감을 나타내는 등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진품들이다.

입구에는 진사승경(晉祠勝境)이라는 금박 현판이 반긴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섬세한 조각상들이 역사의 현장으로 관광객들을 유인한다. 석벽에 새긴 조각들과 용맹을 자랑하는 장군 ? 무사들이 마치 살아 달리는 것 같다. 또한, 점유현옹 창량지수(霑濡懸翁 滄浪之水)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를 공급해준 우물이다. 진사는 중국의 정원문화를 잘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유산이며 국보로 관리되고 있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역으로 달렸다. 산시성 가이드(李英月 ? 조선족)와 작별한 후 10:53분 역무원으로부터 검표를 받고 고속열차 일등석에 올랐다. 요금은 288위안이며 객실에서도 여승무원이 검표를 한다. 객실은 아주 청결했으며, 청소원이 계속 걸레질을 하며 쓰레기봉투도 지급됐다. 컵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더운물이 공급되며 북경까지 2,5시간 걸린단다. 일행과 함께 산시성의 명주인 푼쥬(汾酒)를 마시면서 차창에 전개되는 협곡과 평원, 운무를 감상하며 생각에 잠긴다. 푼쥬의 생산지는 산시성(山西省) 푼양현(汾陽縣)싱화쭌(杏花村)으로 4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궁중 어주이다. 고속을 자랑하기 위해 설치된 속도 표지판은 290km/h를 표시하고 있다.

오후 2시 25분 베이징역에 도착하자 다른 가이드(남 ㆍ조선족)가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으로 잘살게 됐다며 사회주의의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소개 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1970년대 말부터 추진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중국이 달라진 핵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24시간 영업한다는 금정헌(金鼎軒ㆍ만두전문 요리 체인점 본점)에 점심이 준비돼 있었다. 다양한 만두요리와 청도맥주를 곁들여 즐거운 식사가 됐으며, 특이하게 ‘닭발요리(鳳爪)’가 나왔다. 식사 후 베이징 예술가의 거리를 산책했다. 개혁개방 이전에 공장지대였다고 한다. 사업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예술의 거리로 재탄생시켜 관광코스로 개발한 곳이다. 다양한 공예품과 그림 등이 전시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예술거리는 원래 공장 건물들을 이용하여 갤러리ㆍ예술센터ㆍ미술가의 작업장ㆍ설계회사ㆍ먹거리 등이 들어선 문화예술거리이며 세계적 스타일의 ‘SOHO식 예술 공간’과 ‘LOFT식 생활 방식’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이징 공항으로 이동해 추신강 서울시 명예부시장과 인터뷰를 마친 후 남방항공 19시 15분 편에 몸을 싣고, 아쉬움과 안도감으로 6박 7일의 산시성 답사를 마쳤다. 그동안 함께 해준 중국국가여유국 판쥐링 서울지국장과 김종원 박사, 전철규 뚜르드몽드 대표께 감사드린다.

글ㆍ사진 전병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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