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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의 생명은 진실이다

  / 2015-02-05 15:55:50

자서전은 자전(自傳)이라고도 하며 작자의 생애를 나타내는 일체의 모든 자료 · 일기 · 서간 등을 포함해 광의로 해석하기도 한다. 뛰어난 자서전은 필자의 정신적 성장과 편력을 살펴볼 수 있다. 자서전에 창작적인 요소가 포함되면 자전 소설로서 문학적 가치를 가진다. 자전 소설은 자기의 생애나 그 일부를 소재로 쓴 소설로써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대로 꾸며서 기술한다는 점에서 자서전과는 다르다. 자전 소설은 작품성을 높이기 위해 경험의 일부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

저자가 자신의 생애보다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시대 상황에 더 중점을 두고 기록한 것이 회고록'이다. 자서전이 개인사에 치중하는 데 비해 회고록은 저자가 살아온 사회적 현실을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둔다. 하지만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의 말처럼 자서전이나 회고록의 본질은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토로이다.

회고록은 진실을 담아야 하지만 반드시 객관적일 수는 없다. 저자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실은 주관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날조나 왜곡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의 사욕을 위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회고록은 성찰하는 마음에서 진실을 밝히고 당시의 느낌이나 상황을 진실하게 기록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할 때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그 정황을 논증해야 한다. 예컨대 공적인 직무를 논할 때는 객관적 사실에 우선을 둬야 하고 진솔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 회고록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이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윈 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의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은 1948년부터 장장 6년에 걸쳐 쓰여 졌다. 본인의 기억뿐 아니라 각종 문서와 사서를 접목해 서술한 이 회고록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회고록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기록성 때문이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는 현장에서 그 일을 직접 체험하고 수행한 사람의 기술이 가장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퓰리처상에 자서전 부문이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97년 자서전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캐서린 그레이엄 전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은 자서전 <개인의 역사>를 통해 평범한 주부였던 자신이 워싱턴포스트 경영을 맡게 된 경위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말을 솔직하고 소상하게 털어놨다.

회고록의 생명은 진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나 루소의 <고백록>과 괴테의 <시와 진실>이 불멸의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내면의 고뇌를 적나라하게 토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삶의 지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회고록이든 자서전이든 솔직하게 기술하지 않은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건 진실이지 개인의 자랑이나 공치사 혹은 변명이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업적을 과장하고 자화자찬으로 엮어서는 독자의 반감만 키울 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공개되자 정치권과 미디어, 시민사회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4대강사업, 자원외교, 미국산쇠고기수입, 남북정상회담 등 집권 당시의 정책을 밝혔지만 대부분 자화자찬과 자기변명, 견강부회, 책임회피 등으로 일관돼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청와대까지 나서서 회고록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자칫 자중지란과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을까 우려한다. 8백 페이지 정도의  방대한 회고록이 진정성이 있는 사실적 기록이라면 국정운영에도 일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회고록을 출간했을 때 <뉴욕타임즈>에서 보도한 서평처럼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평가된다면 그 회고록은 국민으로부터 잡설로 치부될 것이다.

올가을엔 정치가들의 자서전이 쏟아질 전망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진실과 감동이 담기지 않은 자서전은 정치적 선전용일 뿐이다. 이제 국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