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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글 l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14-04-03 15:36:55




“헌법 제11조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규정은 기회균등 또는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바,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서 국가가 입법을 하거나 법을 해석 및 집행함에 있어 따라야 할 기준인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 없이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 것과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권리로서, 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판시한 내용이다. (헌재 1989· 1· 25· 89헌가7).

그런데 ‘황제 노역’이라는 불평등 앞에 국민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사법정의를 신뢰하고 있는 소시민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벌금 대신 노역(환형유치)을 하겠다며 자진해서 유치장에 들어간 전직 재벌 회장이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서민들의 상식으로는 벌금을 내지 못하면 구치소에 붙잡혀가서 벌금만큼 강제노역을 해야 하며, 유치장에서 1일 감면 받는 환형유치금액은 일반적으로 5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은 1일 노역 금액이 5억 원으로 일반인의 1만 배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울화가 폭발한 것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유치장에 수감되는 서민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벌금을 제때 내지 못하고 노역장 유치 처분 등을 받은 사람이 한해 3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8년 3만 5,842명, 2009년 3만 9,508명, 2010년 3만 7,389명, 2011년 3만 4,361명, 2012년 3만 5,449명 등으로 매년 3만 5,000여 명이 유치장에 수감됐다. 이들 대부분은 벌금을 납부할 형편이 못되는 극빈자들로 벌금 대신 노역장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돈이 없어 노역장을 찾은 것이 아니라 돈이 아까워 하루 일당 5억 원이라는 거금의 ‘황제 노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 결과 508억 원의 탈세와 회사 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기소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일당 2억 5,000만 원으로 203일간 노역장 환형유치를 판결했다. 그러나 2011년 말 광주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과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으로 감형해 줬다.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1일 노역비 5억 원도 이때 결정됐으며, 49일만 유치장에서 보내면 벌금이 모두 탕감된다는 계산이다.

벌금형이 최종 확정되기 직전 해외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하다 한 교포에게 노출된 허 전 회장은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노역형을 선택하고 귀국해 유치장에 수감됐었다. 그러나 검찰이 여론에 밀려 환형유치를 결국 중단시켰지만 그는 지난달 22일부터 5일간 노역장에 유치돼 벌금 25억 원이 탕감됐다. 그것도 주말에는 쉬고, 월요일은 건강검진, 수요일은 검찰 호출로 실제 노역 시간은 10시간 정도였으며, 수사 과정에서 하루 구금된 5억 원을 합치면 30억 원을 갚은 것으로 일반 국민으로서는 평생 동안 만져보지도 못할 거금이다.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겠는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는 헌법 제11조 1항의 규정이 무색해진 것이다.

어떻게 인권이 존중되는 법치국가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물론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 위의 평등권을 향유하는 특권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법치와 정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이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그들만의 정의를 따른다. 권력과 금력이 정의가 되는 사회, 국민 위에 특권 집단을 형성하고 지배의식에 만족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평등ㆍ정의 사회는 요원할 뿐이다. 일반 국민은 ‘향판’이니 ‘향검’이니 하는 단어조차 생소하다. 토착 세력으로 인맥을 쌓고 유지로 행세하며 사리사욕으로 도덕과 윤리조차 망각한 이들과 담을 치고 살아갈 뿐이다. 별천지에 사는 인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들이 합작으로 만든 작품이 ‘황제 노역’이다. 국민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는데 알고 보니 분노만 치솟는다. 다행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대법원에서 환형유치 제도를 개선한다니, 이에 검찰 등의 성찰도 함께 기대해 본다.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법 위의 평등권을 향유하는 특권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법치와 정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이들은 법 위에 군림하고 그들만의 정의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