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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필요한 김선미 기자,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된 땅 철원에 다녀오다

  김선미 기자 (sunmi@newsone.co.kr) / 2013-10-10 09:27:24

매일 아침 8시,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지옥철에서 한 시간 동안 서서 가는 것은 일상이 돼 버렸다. 지하철 안쪽에 들어오지 않고 입구 쪽에만 개미지옥처럼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관찰하거나 독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네모난 작은 화면만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보기 힘들고 마음은 점점 각박해진다. 기술이 점점 발달해 살기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이게 정말 살기 좋아진 환경인 거지 의심이 든다. 네모난 회색빛 세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 난생처음 가본 철원은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을 말끔히 청소해주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산이 있고 맑은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보자!

첫 번째 관광지, 선녀들 전용 목욕탕 같은 삼부연폭포

고속버스에서 내린 순간 흠칫 놀랐다.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산이 보였기 때문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을 자체가 관광지로 보인다. 초가을 맑은 파란빛의 하늘 아래 산의 모습은 잘 차려입은 옷처럼 멋스럽고 운치 있다. 산 아래 집들은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어 사진을 찍으면 잘 그린 그림 같다. 투명한 하늘처럼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생기 넘친다. 철원 군청 가는 길을 몰라서 행인에게 물어봤는데 웃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사람은 거주 환경에 따라 성격과 외모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사람의 얼굴이 한 폭의 풍경화가 된 듯하다.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주위 경치를 감상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태양 빛을 만나 하얗게 빛나는 구름이 물 만난 고기처럼 떠다닌다. 그 아래 끊임없이 이어진 산들이 초록색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늘과 마주 보고 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붉은색, 주황색 물감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보는 사람들의 탄성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단풍으로 화려하게 옷을 입을 산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드문드문 음식점이 보이고 논밭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졌다. 허름한 음식점들이 고고한 선비가 머물 것 같은 집처럼 보인다. 그런 음식점들이 처음으로 예뻐 보이는 데, 눈부신 자연풍경이 내 눈에 콩깍지를 씌워서 그렇다. 철원 땅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한탄강이 보인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하늘을 유혹하는 한탄강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처음 본 삼부연폭포는 정말 아름다웠다. 미끄럼틀처럼 절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는 청순한 소녀 같았다. 계곡을 보며 청순한 소녀를 연상할 줄이야. 산을 케이크처럼 반절로 잘라 만든 것 같은 절벽의 과묵한 매력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흐르는 계곡물은 예쁜 외국인 눈동자의 에메랄드색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배우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눈동자가 떠오른다. 삼부연폭포의 아름다움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가끔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들과 풀들이 거슬리지 않다. 그 자리에 꼭 있어야 되는 사람처럼 생기 넘치는 초록빛을 자랑한다. 삼부연폭포 위로 단정한 가발 역할을 하는 나무들이 고고하게 서 있다. 계곡을 묘사한 수많은 풍경화가 이곳에서 그려진 느낌이 든다.

 삼부연폭포 오른쪽 길 위에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터널이 보이는데 터널을 통해서 보는 바깥 풍경이 매혹적이다. 초록색 신록이 내가 서 있는 자리의 풍경과 똑같아 터널 가운데에 거울을 설치한 것 같다. 마치 쌍둥이처럼 마주 보고 있는데 38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바라보는 남과 북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두 번째 관광지, 여름 래프팅의 명소 순담계곡

한탄강이 흐르는 순담계곡은 래프팅으로 유명하다. 조용히 흐르는 한탄강 위에 배를 타고 주위 경치를 감상하면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잊을 것 같다. 래프팅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이곳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조선시대 때 질병 때문에 요양 온 김관주공이 순약종자라는 약을 먹고 건강해졌다고 해 ‘순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일제시대 때는 항일운동을 모의하던 곳이었다. 순담계곡의 이름 뜻과 상징성이 역사 속에 나타난다. 조선시대 관직자가 이곳에서 명약을 먹었고, 일제시대 때는 항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깊은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장소가 됐다. 현대에는 래프팅하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정신적, 육체적 명약 역할을 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순담계곡을 지나가는 한탄강 또한 오랜 시간 동안 흐르고 있다. 마치 나에게 결국 모든 안 좋은 일들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집중해야 되는 건 항상 내가 있어야 될 자리를 지키며 직접 겪거나 주위에 들은 좋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관광지,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승일교

승일교 입구까지 뻗은 길 양옆에는 작고 붉은 꽃이 피어있다. 자잘하게 피어있는 꽃이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아 정말 아름다운 곳을 가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꽃길이 끝난 곳에 승일교라고 쓰여 있는 돌이 보인다. 그 돌을 지나고 보면 낡은 다리가 버티고 있다. 낡은 다리 아래에는 순담계곡에서 본 한탄강이 흐른다. 운치 있는 자연경관에 비해 다리는 낡고 초라하다. 알고 보니 다리는 1948년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6·25 전란 전에는 이 땅이 북한 지배하에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다리 절반만 만들고 나머지 구간은 우리 정부에서 만들었다. 짙은 회색의 낡은 다리는 남한과 북한의 합작건축물이나 다름없다.

다리 중간지점에 그 역사를 보여주는 상처가 있다. 다리 중간 지점에 깊게 파인 부분이 있는데 마치 3·8선처럼 다리를 두 개로 나눴다. 남북한이 분단을 결정했을 때 신기하게도 저절로 틈이 벌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쪽 입장만 고집하고 북한은 북한 쪽 입장만 고집하고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반으로 갈라진 다리와 같다. 북한과 우리나라가 사이가 안 좋을 때마다 그 틈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더 깊어지면 수습 불가능한 관계처럼 다리가 완전히 두 동강으로 나려나.

승일교 아래 공사현장이 보였다. 다리를 하나 더 만들려는 모습이 보였다. 옆에 화려한 다리가 더 생기면 승일교는 더 초라하게 보일 것이다. 나라는 점점 발전하고 있고 그 발전에 집중하느라 우리 역사의 상처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흩어지는 구름이 말없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듯하다.       

네 번째 관광지, 신들이 가끔 놀러 온다는 고석정

햇빛을 받아 빛나는 탱크 전시물, 박물관, 임꺽정 동상을 지나면 고석정이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옛날 사람이 간판을 만든 것 같다. 글자가 너무 정직해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고석정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구멍이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제주도처럼 심하지 않고 구멍이 적당히 나 있다. 자연이 심심할 때마다 손가락을 꾹 누르고 지나갔나 보다. 계단 양옆에 밤이 굴러다니고 밤을 먹기 위해 잽싸게 뛰어다니는 다람쥐가 보인다.

 자연이 만든 잔재미를 구경하면서 고석정 누각에 도착했다. 누각 바로 앞에 큰 바위가 있고, 그 주위를 강물이 끼고 돈다. 얼마나 컸는지 바위가 작은 산 같다. 강 오른쪽에는 동물 모양을 한 작은 바위들이 있다. 거북이 모양, 잉어 모양, 고릴라 모양 등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바위들이다. 누각에서 고개를 들어 왼쪽을 보면 붉은색 지붕의 집이 산 위에 있다. 구름이 아주 가까이 있고 그 밑으로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나뭇잎을 흔들고 있다.  

강 아래 모래톱밥이 있는데, 사람들이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강 주변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공주대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학생들은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주위 경치에 감탄했다. 누각 아래에는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노인들이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은 머릿속을 비우고 자연과 하나가 됐다. 신이 복잡하게 사는 인간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고 간 게 아닐까 싶다. 바위를 사람과 동물 얼굴에 비유하고 유유히 떠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신선처럼 마음이 풍족하고 여유롭다.

고석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시가 있다. 제목은 고석정 찬시. 노산 이은상 지음.

아름다워라 절경 한 구역/예부터 이름난 고석정/물이 깊어 검푸르고/골은 돌아 몇 굽인데/삼백 척/큰 바위 하나/강 복판에 우뚝 솟았네/위태론 절벽을/다람쥐처럼 기어올라/갈 길도 잊어버리고/강물을 내려다보는 뜻은/여기서 전쟁을 끝내고/총 닦고 칼 씻던 곳이라기에/고석정 외로운 돌아/오늘은 아직 너 쓸쓸하여도/저 뒷날 많은 사람들/여기 와 평화의 잔치 치르는 날/낯익은 시인은 다시 와서/즐거운 시 한 장 또 쓰고 가마.

고석정 옆에는 고석정랜드라는 어린이용 놀이동산이 있다. 마침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듯 붉은색, 노란색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 풀밭에서 어린이들이 부는 비눗방울이 음표처럼 떠다녔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뛰어다닌 아이들은 코스모스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먹거리, 자연의 깊은 맛에 빠지다.

눈 호강을 어느 정도 했으니 배 호강도 시켜볼까. 고석정 입구 옆에 기념물 파는 가게와 매운탕집들이 있었다. 점심 먹는데 시간을 너무 쓰지 않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버드나무 아래에서’라는 매운탕집 가게로 들어갔다. 이름 그대로 나무 아래에 가게가 있어 발끝에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매운탕을 먹으면 그만한 천국이 어디 있을까 싶다.

매운탕 집들은 한탄강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요리해서 손님들에게 대접한다고 했다. 메기는 다른 곳에서 사오지만 대부분은 직접 잡아서 요리한다. 멀리서 사온 물고기들은 한탄강에서 첨벙거리는 물고기의 맛을 따라잡진 못할 것이다.

매운탕이 불 위에 올라왔고, 사이드 메뉴로 도토리묵 무침이 나왔다. 국물을 떠먹는데 칼칼하고 매콤했다. 자극적이고 기분 나쁜 매운맛이 아니다. 국물이 입에서 목으로 넘어갈 때 시원했다. 고기의 하얀 살은 탱탱했고 입에 넣자마자 바로 녹아버린 듯했다. 방금 헤엄치고 나온 것처럼 담백하고 싱싱한 맛이다. 도토리묵 무침은 적당히 간이 밴 매콤한 양념이 인상적이다. 말랑말랑한 묵과 매콤한 채소를 얹어 먹으면 입에서 부드러운 느낌과 아삭한 느낌이 조화를 이룬다. 너무 맛있어서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다이어트 하겠다는 어제의 결심이 자연이 만든 밥상 앞에 무너졌다. 밥을 먹으면서 창을 내다보면 여기서 오fot동안 살아온 사람이 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맛집도 아니고 그냥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간 집인데도 너무 맛있었다. 채소와 물고기들이 철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자연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다섯 번째 관광지, 눈이 청록빛으로 힐링 되는 철원평화전망대

철원평화전망대로 가려면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검문소에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않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긴장한 눈으로 지나가는 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문소에서 절차를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 양옆에 노랗게 익은 벼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벼 들판을 보니 마음이 벌써 노랗게 물든 단풍이 됐다. 아직 벼들이 자라지 않은 논은 벌집처럼 보였다. 질퍽한 땅에 물이 고여 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는 사람이 못 산다고 한다. 군대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바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안보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철원평화전망대를 방문하려면 간단한 서류 작성 후 담당 부서에 제출해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람은 못 살지만, 이 땅들은 개인사유지라고 했다. 땅의 주인인 농부들이 들어와서 농사일을 한다. 노랗게 익은 벼들을 보면 풍족한 기분이 들지만,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철원평화전망대에 도착하니 긴장감이 풀렸다. 전망대 매표소 앞에 6ㆍ25 때 실제 사용한 탱크가 잔디밭에 전시돼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올라갔다. 양옆과 앞뒤가 탁 트여있어 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저수지 둑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송저수지가 한눈에 보였다. 저수지의 크기가 너무 커서 호수나 바다인 줄 알았다. 철원에는 이렇게 큰 저수가 7개 정도 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북한 땅에서 물을 퍼서 사용했는데 분단이 되고 나서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저수지를 만들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저수지가 푸른 하늘빛과 만나 사파이어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래를 자세히 내려다보면 철책이 보인다. 위에서 보면 작은 선으로 보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올려다보면 2m가 넘는다고 한다. 이 철책이 아름다운 숲을 둘로 가르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이 영문을 모른 채 서로 마주 보는 것 같다.

전망대에서 올라가 보니 북한 땅이 보였다. 우리 땅은 노란 벼로 뒤덮였는데, 북한 땅은 숲으로 뒤덮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DMZ와 비슷해 보여 북한 땅이 DMZ 같아 보였다. 북한 땅이라고 식별할 수 있는 근거는 북한초소밖에 없다. 높은 곳에 설치한 북한초소에서는 내 모습이 보일까. 보든 안 보든 상관없는데 저수지와 비옥한 남한 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눈앞의 장관은 정말 아름답다. 금방이라도 사슴이나 호랑이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청정지역이다. 눈부신 자연경관 속에서 사람 사이의 갈등, 자기 몫을 지키려는 욕심,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기심이 보인다. 자연은 살아있는 생물체들의 조화로 완성된다. DMZ 비무장지대처럼 순수하게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총성과 폭탄이 오갔던 땅에 피어난 꽃들과 씩씩하게 큰 나무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재앙이 스쳐 지나갔지만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끊임없이 생명이 탄생한다. 탄생한 생명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다. 언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견디다 보면 좋은 열매가 열릴 것이라고. 멀리서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섯 번째 관광지, 폭파당한 열차가 있는 월정리역

모노열차를 타고 내려온 우리는 철새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기러기 떼를 목격했다. 기러기들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데 아까 고석정랜드에 봤던 질서 잘 지키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양한 생김새와 습성을 가진 철새들은 매년 철원을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이다. 철새가 많이 오면 철새를 찍기 위해 철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수도 많아진다. 사뿐사뿐 가는 다리로 걸어 다니는 철새들은 고즈넉한 가을 풍경을 완성했다.

철새박물관에는 철원이나 DMZ 지역에 사는 동물들 모형이 전시돼 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동물원에 온 것 같다. 독수리와 멧돼지, 부엉이 등등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짐승들이 뻣뻣하게 서 있다.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색깔도 생생하고 털도 쓰다듬으면 부드러울 것 같다. 특히 내 허리만 한 독수리 두 마리가 실제로 독수리를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엄 있다. 날카로운 노란색 눈은 방금 먹이를 발견한 듯 부리부리하다. 이렇게 많은 동물이 우리 땅에서 살고 있다니. 호랑이까지 있으면 사파리 부럽지 않다.

다음 향한 곳은 월정리역이었다. 월정리역은 옛날에 기차역이었는데 남북한 전쟁 때 폭격을 받아 운행되진 않고 보존된 부분만 전시돼 있다. 월정리역은 군부대 바로 옆에 있었다. 하얀색 건물인데, 초등학생들이 집을 그릴 때 꼭 등장하는 모양이다. 기차역보다는 작은 교회처럼 아담하고 귀엽다. 역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철로가 있다. 철로 사이사이에 보이는 잡초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지 않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폭격을 받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기차가 있었다. 기차 본체는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철조물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기차 앞머리는 전쟁 후에 남한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위에 4001번이라고 적혀있는데, 머리만 멀쩡하고 몸 부분이 앙상한 기차의 모습은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북한은 갈수록 말라가고 있고, 남한은 몸에 붙은 살을 떼어내기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한다는 뜻이 숨어있는 걸까? 기차가 지나다니기를 기다리는 철로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일곱 번째 관광지, 주상절리가 마주 보는 송대소


군 관할 지역을 빠져나오는 길에도 볼거리가 많았다. 콘크리트 도로 양옆에 작은 코스모스가 피었다. 지뢰밭과는 어울리지 않는 코스모스다. 좀 더 달리니 6ㆍ25 전쟁 때 폐허가 된 건물이 있었다. 얼음창고, 은행, 농산물검사소 등 무너진 건물을 전시했다. 학교는 아예 터가 없어지고 초목이 우거진 숲으로 변했다. 전쟁 나기 전에는 이 지역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한다. 은행에는 사람들이 붐볐을 것이고 농산물검사소에는 볏짚들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은 재산도 잃고 친구도 잃고 희망도 잃었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타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외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군부대도 들어섰다. 다른 지역으로 떠난 마을 사람들의 아픔이 무너진 건물을 통해 느껴진다. 전쟁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주상절리로 유명한 송대소에 도착했다. 송대소 입구에는 철원홍보대사로 알려진 엄태웅 씨가 운영하는 펜션이 있다. 카페 앞을 지나가면 은은한 원두 향을 맡을 수 있고 경치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마련돼 있다. 펜션이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며 한탄강의 맑은 물 위에 투영돼 있다. 아래로 내려가 보니 자연이 만든 명작이 또 있었다. 한탄강이 흐르는 양옆에 용암이 분출돼 굳어진 화산암 지역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주상절리 절벽이 있다. 쭈글쭈글한 주름 같은 모양이 세로로 나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문드문 층이 있는데 한 번의 용암이 분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분출된 용암이 굳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송대소는 한탄강의 바닥 전체가 직각으로 내려앉아서 형성된 깊은 소다. 옛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가도 끝이 안 보이는 깊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물이 투명하고 깊어 신비롭고 고고해 보인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데 난간에 잠자리가 쉬는 모습을 포착했다. 잠자리들이 이곳 경치가 마음에 들었는지 많이 날아다녔다. 쉬고 있는 잠자리가 너무 귀엽다. 날갯짓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는 것이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것과 똑같다. 화강암 위를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피로회복제를 먹는 기분이다.  

여덟 번째 관광지, 귀여운 직탕폭포

흔히들 폭포 하면 거대한 절벽 아래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를 떠오른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고 알려진 직탕폭포를 찾아갔다. 근데 웬걸. 나이아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귀엽다. 작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아래로 조금씩 내려갔는데 내려가 보면 그나마 커 보인다. 오른쪽에는 번지점프대가 있다. 맑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지만, 목숨은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었다. 작은 폭포지만 주변 경치와 어울리며 자연미를 내뿜고 있어 철원 팔경 중에 하나로 뽑히고 있다. 전국의 많은 가족단위의 관광객과 낚시꾼이 직탕폭포를 찾고 있다. 물놀이나 낚시에 적합한 장소다.

여덟 군데를 돌아다녔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철원을 이제야 가게 되다니. 예전에 알았다면 더 많이 놀러 왔을 것이다.

여름에는 래프팅을 즐기고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다 보면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으로 피곤해진 눈이 활력을 찾아 초롱초롱해진다. 떨쳐버리고 싶은 힘든 일이 있으면 번지점프대에서 소리를 지를 수 있다. 이제까지 몰랐던 작은 잠자리가 반갑게 느껴진다. 북방경계선 너머 북한 땅을 보면 통일이 돼 하나가 된 커다란 숲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번 여행을 끝내고 나무가 가득한 숲의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