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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법치와 정의는 살아 숨 쉰다

전병열 본지 편집인  jun939a@newsone.co.kr / 2013-08-07 09:15:47

용구는 6살 정도의 지능이지만 주차요원으로 일하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예승이와 함께 단칸방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용구는 예승이가 ‘세일러문’ 가방을 갖기를 원하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사주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매일 보던 세일러문 가방이 다 팔리고 마지막으로 한 개가 남았다. 그마저도 다른 아이가 사버리자 용구는 “예승이 꺼~”라며 달려가 매달리지만 아이 부모로부터 폭행만 당한다. 월급날 용구는 일전에 가방을 사간 아이가 세일러문 가방 파는 다른 가게를 알려 주겠다는 말을 듣고 따라 간다. 하지만 아이가 빙판길에 넘어지면서 벽돌이 머리에 떨어져 사망한다. 그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어설프게 인공호흡을 시도한다. 그 아이는 현직 경찰청장의 딸이었다. 용구는 살인에다 아동성추행 누명까지 쓰게 된다. 경찰청장의 성화에 쫓긴 수사관들은 용구에게 협박과 회유, 강압 수사로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그는 교도소 7번방에 사형수로 구속된다. 결국, 용구는 예승이를 앞세운 수사관의 위협에 변명도 못 하고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고 만다. 그러나 예승이가 성장해 사법시험에 합격해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낸다.

올 상반기 관객 수 1위를 차지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줄거리다. 이 영화는 그냥 웃고 울며 넘길 멜로물이 아니라 천인공노할 공권력의 만행을 폭로한 시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정의에 의문을 제기한 영화 ‘부러진 화살’과 같이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다.

1972년 9월 강원도 춘천의 한 논둑에서 경찰 간부의 딸이 숨진 채로 발견된다. 경찰 조직은 충격에 빠지고 급기야 내무부 장관이 “10월 10일까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문책하겠다”는 ‘시한부 검거령’을 내린다. 다급해진 경찰은 같은 동네 만화방 주인 정 씨를 연행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다. 마침내 시한부 검거 마감일에 정 씨는 검사에게 범행을 자백하고 만다. 경찰은 유죄입증을 위해 증인 진술로 증거를 조작한다. 재판에서 정씨는 허위자백이었다며 무죄를 호소하고, 증인으로 나온 만화방 종업원과 정 씨의 아들도 모두 허위로 자백했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현장 목격자였던 이 모 씨는 위증죄로 구속됐다 풀려난 뒤 증언을 뒤집었다. 그러나 법원은 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정 씨의 부친은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15년을 복역한 정씨는 모범수로 석방되고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실 규명 결정을 받는다. 마침내 정 씨는 재심에서 40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 지난 7월 16일 서울중앙지법은 “국가는 정 씨와 가족들에게 26억 3,700여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 씨가 청구한 금액의 겨우 25% 정도다. 재판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오히려 불법 가해자가 됐다며 수사기관의 책임을 인정했다. 정 씨는 당시 법원도 불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불법행위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속 당시 38세 청년이었던 정 씨는 현재 79세의 노인으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법치국가의 현주소다. 국가권력에 의한 잔인한 폭력이 합법적으로 감행됐다는 사실에 정의를 신봉하는 시민들은 분노한다. 정의의 최후 보류인 사법부가 재량권을 남용하고, 실적에 쫓긴 수사관이 없는 죄를 만들어 낸 실상이다. 과거 사건뿐만 아니라 지금도 법치를 무색하게 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소위 합법적 탈옥이라는 구속집행정지나 형집행정지를 권력이나 금력이 악용한 사례다. 살인교사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도 형집행정지로 고급호텔에서 호의호식하는 재벌 부인이 있는가 하면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 동생이 8번이나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들에게는 권력과 금력이 정의요 법치다. 이기심에 혈안이 된 일부 몰지각한 공권력은 자신의 영달이나 곳간 채우기에 급급할 뿐 억울한 민초들의 아우성은 쇠귀에 경 읽기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유전무죄와 권력 무죄를 실감한 국민이 더는 국가를 불신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믿을 곳은 정의사회 구현의 최후 보류라는 사법정의다.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이 법치국가다. 또한, 무법천지로 날뛰는 일부 공권력이나 재벌의 금력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비리와 탈법이 마치 그들의 특권인양 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법치국가를 내세우고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던 역대 정권들은 결국 화려한 수사(修辭)로 끝나고 말았다. 권력기관의 개혁은 최고 통치자의 실천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