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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유진모의 연예리포트l - 드라마 “야왕‘에 등장한 세여자의 3색 사랑법

글/유진모[연예칼럼니스트]  / 2013-03-04 15:10:40

SBS 월화드라마 '야왕'이 이제 중간을 넘어서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구한 운명에 놓인 세 여인의 서로 다른 사랑법이 눈길을 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퍼스트레이디가 되려는 여자 다해(수애)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의 사랑과 배신, 욕망을 그린 이 드라마는 처참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자랐건, 재벌가에서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풍요롭게 자랐건, 고위급 관리의 집안에서 귀하게 자랐건 하나 같이 상처를 간직한 극적인 사랑법을 펼치고 있다.다해에게는 애초부터 사랑 따윈 없었다.

그녀 나이 스무 살 때 구렁텅이에서 자신을 구해준 하류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거기서 하류를 유혹해 관계를 맺은 그녀는 목적이 있었다. 그녀의 욕망은 더럽고 무섭고 큰 데 비해 가진 기댈 언덕이 없었기에 미약하나마 일단 하류를 발판으로 삼기 위해 그를 사랑이라는 올가미로 엮은 것.그래서 그녀는 하류가 어떻게 돈을 벌어 자신의 비싼 대학 학비를 대주는지 알고자 노력하지 않는 미필적 고의를 서슴지 않았으며 나중에 그 출처가 하류가 호스트바에서 번 더러운 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 유학비를 대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그녀가 도훈에게 다가간 목적도 돈이었다. 물론 하류에게 바란 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차이점이지만.미국에서 함께 유학하던 시절 그녀는 4시간을 걸어 비를 쫄딱 맞고 도훈의 숙소를 찾았다. 이게 진심이었다면 애틋한 순정이고 불타는 애정이었겠지만 그녀는 도훈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철저한 상황극을 연출했을 뿐이다.다해의 욕망은 백학 그룹 며느리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전 서울시장으로서 대권을 노리는 석태일(정호빈)과 손잡고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뒤 그녀의 여자가 될 예정이다.그렇다면 도훈은 하류와 똑같은 사랑의 피해자가 된다.

단지 그녀를 사랑한 죄로 상처받고 그 큰 상처의 통증으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붓아버지와 하류를 죽인 다해의 손에 살해당할 수도 있다.다해의 사랑이 진솔함이 없는 악독한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클리셰라면 도경의 사랑은 또 한 번의 똑같은 실패를 예고하는 시뮬라크르다.백도경(김성령)의 사랑은 도훈을 향한 착각의 사랑과 하류를 향한 착오의 사랑 두 가지다. 그녀는 국가대표 승마 선수이던 10대 시절 선배를 사랑해 임신한 뒤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몰래 도훈(정윤호)을 낳았다. 그리고 주변의 눈을 의식해 아버지 백창학(이덕화)의 늦둥이 아들로 입적시킨 뒤 각별하게 도훈을 키워왔다.그에게 도훈은 아들이자 동생이고 남편 혹은 연인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사랑에 실패하고 출산이라는 큰일을 겪은 그녀는 그 이후 승마 선수에서 은퇴한 뒤 오로지 아버지의 백학 그룹 일과 도훈의 양육 및 교육에만 힘써왔다. 그녀에게 도훈은 인생의 전부다.하지만 도훈이 어느덧 훌쩍 자라 성인이 돼 다해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도경은 다해가 도훈에게 접근할 때부터 그녀의 불순한 의도를 알아채고 그녀의 접근을 막았지만 주도면밀하고 집착이 강한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다해는 결국 도훈의 마음을 사로잡아 결혼하는데 성공했고 도경은 도저히 도훈의 고집을 이겨낼 수 없었다.그렇게 절망한 그녀에게 연하의 젊고 잘 생겼으며 매너가 좋은데다 전도유망한 변호사 재웅을 가장한 하류가 접근한다. 원래 두 사람은 다해의 백씨 가문 입성을 막기 위해 거짓 연인인 척 연기하기로 합의했으나 도훈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감이 커질수록 도경의 마음은 점점 열려 어느덧 하류에게 의지하게 된다.겉으로만 봤을 때 도경에게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40대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유지하는 그녀는 겉으로는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노처녀다.

백학그룹 회장의 장녀로서 그룹의 전무 직책을 잘 수행해나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고 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사랑은 사치라고 진작부터 포기한 불쌍한 여자다.첫사랑의 실패로 크게 상심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도훈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물로 여기며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애당초 남자와의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여겼던 인물이다.그런 그녀가 다 늦게 사랑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게 됐지만 그녀의 사랑은 아프고 불행하다. 왜냐면 하류는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그토록 경멸하고 미워하는 다해처럼 하류도 목적이 있어서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진실을 알고 나면 그녀가 입을 상처는 똑같은 상황에서 도훈이 입을 상처보다 더 깊고 아프다.왜냐면 도훈은 아직 젊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의도했으며 무엇보다 처음이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이 크고 이겨낼 수 있는 세월이 상대적으로 길지만 도경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석수정(고준희)의 사랑은 인내다. 전직 서울시장의 딸인 수정은 무뚝뚝하고 사랑 표현에 인색한 차재웅(권상우) 변호사 밑에서 수년간 묵묵히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사랑을 키워왔다.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마치 며느리인 양 재웅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그의 아버지 차심봉(고인범)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등 재웅 집안의 대소사에 앞장선다.하지만 재웅은 그녀가 모르는 사이 다해의 의붓오빠 주양헌(이재윤)에게 살해당했고 현재 그의 쌍둥이 동생인 하류(권상우)가 그의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상황. 이를 모르는 수정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재웅에게 당황스럽지만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려 애쓴다.아무리 하류의 연기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수년간 애정을 나누며 살아온 수정마저 속일 수는 없는 일. 의아함이 의심으로 바뀐 수정은 하류의 뒤를 캐고 결국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인물이 재웅이 아니라 하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하류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재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주저앉는다.그녀의 감정은 분노 절망 슬픔 밖에는 없다. 그토록 사랑하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희망을 잃은 슬픔과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의지를 잃은 절망, 그리고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재웅을 연기하는 하류에 대한 분노의 폭발뿐이다.그런데 그러던 그녀가 재웅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며 옛 추억을 회상하다가 그만 하류를 재웅으로 착각하고 애틋한 감정을 품게 된다. 그 사랑 참으로 아프다. 하지만 지금은 고구려 시대가 아니다. 사망한 형의 부인을 취하는 ‘형사취수제’ 제도는 도덕적으로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다가 형의 여자를 취할 수 없다는 하류의 의사와 달리 점점 하류에 재웅의 이미지를 강제로 입혀 그에게서 재웅을 찾고자 하는 수정의 사랑은 지독한 도그마다.이렇게 지독하게 비뚤어지거나, 아니면 냉철한 상황파악을 못하고 눈이 먼 사랑이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드라마는 작가의 픽션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경험 혹은 대리경험을 통해 얻어진다.하루가 다르게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유행가의 가사 중에 가장 많은 소재는 사랑과 이별이다. 그렇게 유치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에 속고 돈에 속는 게 우리네 인생이고 감정의 충돌이라고 하지만 '야왕'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매우 아프다. 그건 실제 사랑도 아름다운 경우 보다는 아픈 케이스가 많은 현실의 반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