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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대부해솔길 여행”

글 / 최경호(안산시 관광과장)  / 2012-10-04 15:00:17

정겨운 대부해솔길을 만나다
석양의 절정이 꽃피는 ‘낭만의 섬’. 안산의 또 다른 곳 대부도. 1994년 옹진군에서 안산시로 편입된 대부도는 애초에는 대부도, 구봉도, 선감도, 불도, 탄도 등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연결이 되어 섬이 아닌 육지가 되었다.

대부도 시작은 방아머리. 도로변에서 곰솔나무가 여행자를 맞이해 주었다. 솔밭에는 바닷물이 밀려오고 괭이갈매기가 바닷가를 맴돌고 있었다. 7개 코스 74km 대부해솔길을 알리는 황금노을색과 옅은갯벌색 리본이 해송에 매달려 한들거렸다.
연인 몇몇이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이곳 서해바다에는 만조 때가되면 바닷가 횟집 턱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걷기가 어렵다. 오늘은 다행스럽게 물이 밀려들어오고 있어 모래언덕을 따라 해변을 걸을 수가 있었다.

해안가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곰솔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솔향기가 향긋하다. 산길을 벗어나니 포도밭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바람을 맞고 강한 햇빛을 쬔 대부도 포도는 당도가 높다. 이 포도로 만든 술이 그랑꼬또 와인이다. 프랑스어로 큰 언덕이라는 의미인데 대부도(大阜島)라는 뜻이 큰 언덕이니 찰떡궁합 작명 아닌가.

그렇게 북망산에 올라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시화호와 송도 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왔고 앞으로 나설 구봉도와 대부해솔길이 펼쳐져 있었다. 산에서 내려서니 솔밭에 그늘이 가득하다. 물이 차오르는 곳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사람들은 미인송이라 불렀다. 청초하고 고고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새 아홉 개 봉우리로 이어진 구봉도로 올라섰다. 바다를 양쪽에 두고 느릿느릿 능선을 타고 다다른 곳에서 천영물 약수로 목을 축여본다.
야생화가 한들한들 여행자를 반겼다.
밀물 때가 되면 갈 수 없었는데 여인네 허리같이 잘록하다고 하여 붙여진 개미허리에 다리를 놓아 다닐 수 있게 하였다. 바닷물이 다리 밑까지 차오른 곳을 지나 다다른 곳에 낙조전망대가 서 있었다. 153m 바닷길로 나아가니 그곳에 ‘석양을 가슴에 담다.’ 라는 상징물이 수평선에 걸쳐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환상적이다. 해맞이가 새로운 희망을 떠올리게 한다면 해넘이는 오늘을 반성하며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리라.

바닷물이 시간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왔던 곳으로 발걸음을 돌려 개미허리에 다다르니 다리 밑에 또 다른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바닷가 언저리에 쌓여있는 굴 껍데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프랑스 시인 장콕또가 <귀((耳)>라는 시에서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고 노래했듯이 여행자도 잠시 굴 껍질 바다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어장진입로를 따라 다다른 곳에 할아배 할매바위가 시선을 끈다. 배타고 고기잡이를 떠났던 할아배를 기다리던 할매는 기다림에 지쳐서 바위가 되었고 할아배는 몇 년 후 무사귀환을 했으나 할매가 바위가 된 것을 보고 가여워서 함께 바위가 되었다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인증샷을 찍으며 구봉도를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기고 있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은 길
매년 수 만 명이 바지락 캐기 체험을 하는 종현어촌체험마을을 빠져나와 20여 채가 자리 잡은 구봉도 펜션을 따라 산기슭에 다다르니 야트막한 산으로 올라가는 곳에 대부해솔길 리본이 보였다. 대부해솔길 2코스 시작점인 돈지섬 안길로 방향을 잡았다. 한적한 산길을 몇 차례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동네 안길로 이어졌다. 갈대가 한여름의 초록빛 옷을 벗고 은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다다른 곳에는 돌탑이 서 있었다. 그리 잘 쌓지는 않았지만 정성이 묻어나 있었다. 11대째 대부도에 살고 있다는 횟집주인이 쌓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대부해솔길 2코스. 해안가를 따라 낮은 산으로 들어섰다. 오래전 나무꾼과 어부들이 동네와 동네를 넘어 다녔던 길을 찾아 잡목을 제거한 길은 편안했다.
이태 전 친구와 지리산 둘레길을 여행했었는데 그 친구와 이 길을 걸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물이 밀려나가 넓은 뻘을 만들어 놓은 바다는 숨김이 없어 보였다. 갯벌은 생명이다. 논에서 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큰고니가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2코스 종착지점에 있는 바다낚시터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우럭도 잡히고 돔도 잡혔다. 잡은 활어는 즉석에서 회를 떠서 소주 한 잔으로 안성맞춤 요리가 되었다.
해가 기울면서 바닷물이 황금노을색 물감을 부려놓은 듯 눈이 부셨다. 시뻘겋게 물드는 수평선은 여행자를 침잠하게 한다.

햇살 머금은 아늑한 길
어느새 중천에 떠 있는 햇살을 받으며 구릉으로 올라서니 시원하게 그린이 펼쳐졌다. 바닷가를 보며 라운딩 할 수 있는 27홀 아이랜드리조트였다. KLPGA로 수많은 갤러리들이 그린을 수놓고 있었다. 소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놓은 곳을 따라 올라가니 선재교가 앞에 떡하니 놓여있었다. 이곳은 썰물인데도 바닷물이 선착장까지 차올라 있었다.

밭에서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늑했다. 산길을 내려서니 마을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바닷가를 거닐며 <섬집아기> 동요를 불러보고 싶은 곳. 흥선리는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낮은 산을 두고 이어져 있었다. 이방인 발걸음에 놀랐는지 숲에서 새들이 종알종알거렸고 아랫동네로 내려서니 작은 배 한 척이 바닷물에 흔들려 춤을 추고 있었다.

3코스 종착지점은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다니는 흘곶마을회관. 마을이 굽이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마을길을 따라 걷다보니 고향집 생각이 났다. 효자문이 고풍스런 기와집 한쪽에 서 있었다. 효행이 이어져 내려온 마을은 평온했다.



아이처럼 꿈꾸라고 속삭이며 걷고 싶은 길
마을에서 해안가로 내려서니 쪽박섬이 서 있었다. 마치 쪽박처럼 생겼다하여 붙여 진 이름. 쪽박으로 긁어모았는지 굴 껍데기가 섬 주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앞에 또 다른 섬이 보였다. 섬 모양이 메추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메추리섬. 쪽박섬에서 메추리섬으로 가는 곳에는 모래가 살포시 덮여있고 둥근 자갈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흘곶어촌계장은 하얗게 웃으며 금방 갯벌에서 잡아 온 낙지를 들어 보였다. 옆에서 문어낙지라고 한다. 세발낙지보다 서너 배 큰놈이니 그리 불러 줄만하다. 잘 잡힐 때면 수십 마리를 잡을 때가 있다며 동네어르신들이 막걸리를 권한다. 싱싱한 낙지를 오물거리면서 먹는 맛은 옆 사람이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대부도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낙지발처럼 산과 해안길이 늘어져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대부도를 낙지섬이라고 부른다.

저 멀리 꺾어 진 해안가가 보였다. 고래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고래뿌리. 그곳은 대부도에서 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행낭곡이다.
이곳에서는 지난해부터 떠들썩하다. 예능프로그램 ‘청춘불패2’를 촬영하는 수요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넓은 갯벌을 보며 걷는 ‘아랫동심길’이 발길을 대남초등학교로 이끌었다. 드넓은 바다와 갯벌은 아이들에게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간직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여행자도 아이처럼 꿈꾸라고 속삭이며 걷는 대부해솔길 매력에 빠져본다.

바닷물이 밀려 나간 갯벌에 한 무리 괭이갈매기가 군무를 만들고 있었다. 녀석들이 애-앵-애-앵 울었다. 어린아이 울음 같기도 하고 고양이 울음 같기도 했다. 그렇게 다다른 곳에 대부도유리섬박물관이 깔끔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제방위에 유리 조각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내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는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4코스 종착점. 베르아델 승마클럽에서 말 역사관을 둘러보며 힘을 충전해본다. 이곳 바닷가에서는 말과 괭이갈매기 화음 듣는 것이 이채롭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들판을 달려보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석양빛을 띈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런 곳에서는 서 있는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자연 숙성의 지혜와 문화 향기에 빠져드는 길
이곳 5코스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동주염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염전을 가로질러 가다보면 소금이 가득 쌓여있는 창고를 볼 수 있고 소금을 만드는 체험을 하다보면 자연 숙성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1953년부터 옹기타일을 활용해 생산한 깸파리소금은 맛이 부드럽고 미네날이 풍부하다.

다다른 곳은 5코스 종착점 참살이펜션. 주말이면 2천명 이상이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곳. 130여동에는 각자 예쁜 이름들이 써져 있었다. 마치 이름으로 펜션을 선택해보라는 듯했다. 회사나 친구, 클럽 등 단체에서 많이 와서 족구 경기를 하고 있었고 가족과 연인들은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논밭 이랑을 따라 다다른 곳은 선감동. 이곳에는 가슴 아픈 한민족 역사가 스며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고아들을 수용한 선감학원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일부 사학자들은 독립정신이 있던 소년들이 일제에게 강제로 수용되어 죽임을 당한 곳이라고 했다. 역사 재조명을 통해 영글지 못한 삶들에 대한 위령비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자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뒷동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선감어촌체험마을에 다다랐다. 바닷물이 또 다시 밀려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호미를 들고 갯벌로 나갔다. 바지락을 캐기 위해서다. 갯벌은 살이 올라 있었다.

보다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경기도청소년수련관 옆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곳에서는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흙을 만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행복하게 보였다. 수련관 뒷산 너머에는 33만여 평 규모의 테마식물원 등을 갖춘 바다향기수목원이 조성되고 있었다. 내년에는 이곳 전망대에 올라 숲향기를 마시며 노을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서양화가 정문규화백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보였다. 지친 다리도 쉴 겸해서 미술관 1층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흐르는 음악에 젖어보는 것도 즐겁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종일 문화체험을 한 하루였다.
오늘 머무를 탄도를 가기 위해서는 대부광산퇴적암층 호수를 거쳐야 했다. 이곳에서는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시퍼런 물속에서 공룡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떠올리니 으스스하다.

서해낙조에 빠지다
탄도항은 대부 해솔길 6코스 종점이다. 탄도바닷길이 펼쳐졌다. 누에섬으로 가는 1.2km 길에는 풍력발전기가 여행자를 반겼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바위틈에 고인 물에서 칠게들이 이방인 발걸음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을 숨겼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삶이 고되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거리를 헤매는 삶. 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경쟁을 하여야 하는 우리 삶을 생각하면 소라게가 떠오른다. 칠게는 느릿느릿 걷는 소라게를 어떻게 생각할까. 느림보, 곰탱이, 바보…
어느 덧 누에섬 너머로 시뻘건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셔터를 눌러댔다. 장관이다. 어느새 여행자도 서해낙조에 빠져있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길
탄도항에서 사흘 전 여행을 시작했던 방아머리로 가는 길에는 탄도호가 흘렀다. 물안개가 탄도호에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은 고요했다. 대송단지 숲에서 고라니가 뛰고 습지에서물오리떼가 하늘로 날아올라 춤을 추었다.
4시간을 걸어 도착한 방아머리 공원 옆 대부 바다향기 테마파크에서는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여행자를 반겼다. 생태탐방로에는 단단하게 여문 갈대가 바람에 하늘거렸다.

여행자는 이번 ‘대부해솔길 여행’을 떠올려 보았다. 해안가를 걷다가 야트막한 산과 야생화가 한들거리던 들 그리고 포도밭과 염전을 느릿느릿 걸은 여행은 세상사 시름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갈매기가 홀로 날고 있었다. 녀석도 홀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행은 자기 발견의 과정이다. 여행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 준다.

최경호 과장
현 안산시 관광과장으로 공직에 있는 필자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제1,2회 공무원노동조합문학상을 연이어 받았고 전태일문학상도 2회나 수상했다. 또한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548km를 도보로 걷는 국토종단, 2008년부터 3년에 걸쳐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690km의 백두대간을 종주한 기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