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left
search

 

 

ȭ
ȭ

“황금빛 들녘, 문인들 고향에서 소설 속 주인공 되기”

관광공사가 추천하는 9월의 가볼만한 문학여행지 5

권혜리 기자  hyeri@newsone.co.kr / 2012-09-03 13:50:57

마냥 푸릇하던 들녘의 끝자락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치맛자락 희롱하며 발목에 감기는 바람이 서늘하다. 목청껏 울어대던 매미울음 대신 귀뚜라미의 칭얼거림이 제법 길어진 밤사이 잠자리를 지킨다면 이제 가을이다.
요즘말로 좀‘오글거린다’하더라도 어린 시절 외워뒀던 시 한 두 구절을 떠올리게 되고, 더위에 지쳐 잠시 미뤄뒀던 책도 뒤적이게 된다. 식상하고 뻔하다 타박해도 어쩔 수 없다. 가을은 누가 뭐라 해도 역시‘독서의 계절’이지 않은가.
한국관광공사는‘독서의 계절’가을을 맞아 서둘러 ‘9월에 가볼만한 곳’의 테마를‘문학이 흐르는 길을 따라’로 정하고 한국의 문학을 경험할 수 있는 여행지를 발표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길을 걸어보고, 문인들의 고향에서 그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문학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낄 준비가 됐다면 지금 떠나자.
준비물은 여유로움과 감수성이면 된다.

◆문학의 고향에 깃들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과서에 실려 대중들에게 친숙한 가곡 ‘가고파’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그 남쪽바다 파란 물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다.
마산합포구는 본래부터 고운 최치원이 월영대 앞바다의 아름다움에 반해 오래도록 머물며 후학을 기른 문학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마산 문학의 흐름을 보여주는 창원시립마산문학관은 문학도가 아니라도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전시실은 결핵 문학, 민주 문학, 바다 문학 등 문학의 특징별로 나눠 구성돼 있는데 이중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 머무르던 작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결핵 문학은 꽤나 독특하다.
사실 마산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수많은 문인들이 피란 와 머무른 곳이다. 어려운 생활 때문인지 문인들은 유독 결핵 환자가 많았기에 요양소가 자연스럽게 문인들의 토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
결핵계몽지‘요우’와 지금도 발행되는 ‘보건세계’, 문학동인지 ‘청포도’,‘무화과’ 등을 발행할 만큼 많은 문인들이 모였었다.이 외에도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창원시립문신미술관과 마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창원시립마산박물관, 마산조각공원에 자리한 창원시립마산음악관도 볼거리다. (055)225-3695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서, 양평 황순원문학관
분홍색 스웨터에 까만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던 소녀는 소년을 향해 하얀 조약돌을 던지고 폴짝폴짝 뛰어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외쳤다. ‘이 바보’라고.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이다.
장담컨대 어떤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이만큼 짜릿한 장면은 없을 것이다.
그 소설 속 소녀가 뛰어넘어간 징검다리를 비롯해 수숫단 오솔길, 송아지 들판, 고백의 길 등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양평군에 위치한 황순원문학관이다.
소설 속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구절이 모티브가 돼 경기도 양평에 위치하게 됐다는 문학관에서는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은 물론‘소나기’를 원작으로 하는 4D 애니메이션 ‘그 날’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문학관 바깥쪽에 소나기 광장에서는 하루 세 차례 인공 소나기가 내려 소설 속 주인공 마냥 수숫단 속에서 비를 피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양평군립미술관과 경기도민물고기생태학습관 등은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하며, 기차역이나 등록문화재 답사에 관심이 있다면 구둔영화체험마을를 추천한다. (031)770-2066

◆시인이 꿈꾸던‘그 먼 나라’를 찾아서, 부안 신석정문학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에는 이런 부문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 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 번 저울질하였다.”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를 향해 내달리다 우뚝 멈춰 선 변산, 그 산과 맞닿은 고요한 서해. 그리고 전나무 숲길 끝에 단정하게 자리 잡은 내소사와 울금바위를 뒤로하고 아늑하게 들어앉은 개암사, 켜켜이 쌓인 해식 단애가 놀랍고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하는 격포 채석강 그리고 소박한 갯마을의 서정적인 풍광.
전북 부안의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이 자연은 많은 문인들을 자극하고 키워냈다.
특히 서정적인 감수성과 목가적인 시 때론 현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알려진 시인 신석정을 알고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924년 ‘기우는 해’를 발표하고 평생을 시인이자 교육자로 살았던 신석정의 발자취는 ‘신석정문학관부’에서 만날 수 있다. 부안삼절로 손꼽히기도 했던 기생이자 여류시인 매창을 테마로 한‘매창공원’ 역시 가볼만 하다. (063)580-4713

◆절경에 취해 벼랑 위에서 시를 노래하다, 정선 몰운대
시인 황동규는‘몰운대행’에서‘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라고 표현했다.
어디 황동규뿐인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애정편’의 배경이 되었으며, 김원일의 장편소설‘아우라지 가는 길’에서는 그리운 고향으로도 그려졌던 곳이다. 최근에는 그 빼어난 자연 덕분에‘닥터 진’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곡과 어우러진 몰운대의 비경은 벼랑 아래서 보면 더욱 장관이다.
또 몰운대를 에돌아 마을로 접어들면 절벽과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된 트레킹 코스로도 그만이다.
볼거리 풍성한 정선 읍내 구경도 흥미롭다. 아라리촌에는 옛집과 함께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을 해학적으로 재구성한 조형물을 구경할 수 있으며, 정선 장터에서는 강원도의 풍요로운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033)560-2363

◆영원을 추구한 시인 구상을 만나다, 칠곡 구상문학관
경상북도 칠곡은 손에 익은 시집 한 권을 가슴에 품고 찾기 좋은 곳이다.
한국 시단의 거장이라 불리는 시인 구상의 유품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구상문학관’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는 조금 낯설지 모르지만 구상 시인은 프랑스에서 ‘세계 200대 문인’으로 뽑혔으며, 작품은 영어와 불어, 독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거장이다.
칠곡은 시인이 1953에서 1974년까지 머물며 작품 활동에 매진, 당대의 예술가들과 폭넓은 친교를 쌓았는데 특히 화가 이중섭은 왜관에 있는 그의 집에 함께 머무르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 무렵 그린 그림이 ‘K씨의 가족’이다.
구상문학관에는 육필 원고를 비롯한 유품 300여 점이 전시되었고, 문학관 뒤편에 시인의 거처였던 관수재(觀水齋)가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아름다운 가실성당, 한국전쟁의 포화를 느낄 수 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기분 좋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가산산성 등도 칠곡의 명소다. (054)979-6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