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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살금~ 지하실 조선시대 구경오세요!

권혜리 기자  hyeri@newsone.co.kr / 2012-09-03 11:37:29

‘육의전박물관’ 국내 유일 15세기 피맛길 원형도 보전지난 8월 30일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육의전빌딩 지하 1층에 ‘육의전박물관’이 개관됐다. 경기 불황기에 갤러리도 아니고 유적 관련 박물관이, 그것도 지상 8층 높이의 신축 건물 지하에 박물관이 들어섰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1월, 3·1독립만세로 유명한 탑골공원 인근 땅에 신축건물 사업시행을 위해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던 인부들이 흙바닥에서 나온 유적지 일부를 발견하고 이를 관할 종로구청에 신고했다.
즉시 전문가들의 입회 아래 문화재청의 조사와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발굴의 결과는 놀라웠다. 땅속에 조선 초기부터 600년간의 서울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있었던 것. 조선 건국~15세기 중반(6문화층), 임진왜란 전후(15세기 후반~16세기·5문화층), 17~18세기(4문화층), 18세기 후반~개항 이전(3문화층), 개항~일제강점기(2문화층), 해방이후~현대(1문화층)까지 모두 6개 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조선시대 육의전(六矣廛) 터의 발견은 관련 학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육의전’은 ‘육주비전’이라고도 하는데 국역을 부담하는 대신 정부로부터 강력한 특권을 부여받은 선전(線廛: 비단 상점), 면포전(綿布廛: 무명 상점), 면주전(綿紬廛: 명주 상점), 지전(紙廛: 종이 상점), 저포전(苧布廛: 모시·베 상점),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 생선 상점) 등 6개의 상점들을 말한다.
주로 왕실의 국가 행사나 의식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을 전담하고 그 대가로 상품에 대한 전매권을 행사함으로써 조선 말기 갑오경장까지 조선의 상업경제를 지배했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관련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를 보존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서울 한복판에서 잘 보존된 유적을 발견한 것 자체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땅을 소유한 건물주 입장에서는 이 때문에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 건물주는 수소문 끝에 청진동 재개발 과정에서 조선시대 문화유적 발굴과 보존으로 주목을 받았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황 소장은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건물을 완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그 결과 처음 유적이 발굴된 지 4년 8개월여 만에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육의전박물관’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새롭게 빌딩 속에 문을 연 전체 면적 505.33㎡(약 153평) 규모의 박물관 바닥은 온통 강화유리로 덮여있다. 유구를 층을 두고 그대로 전시 중이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유리 위를 걸어 다니며 조선조 시대의 유적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 국내 국공립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다. 또한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직접 유적을 관찰할 수도 있다.
박물관의 유적을 감상하기 전 다음의 두 가지 포인트를 미리 숙지하고 있으면 편리하다. 

첫째. 흥미로운 토층의 전시
일반적으로 유적이 발견 된 후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옮길 때 토층도 함께 전시된다.
토층은 발굴지역의 지하층에 퇴적된 역사와 문화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토층전시가 말 그대로 흙을 떠서 전시하는 것이라 일반 관람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유구 전시라는 특성 탓에 토층의 전시에 특별히 정성을 들인 ‘육의전박물관’은 토층표면에 시기구분선을 표시하고, 토층과 토층사이 시기별 역사적 사건을 표현했다. 또 조명으로 입체감을 주는 등 이른바 ‘입체 전시’를 기획했다. 덕분에 토층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일반 관람객들의 토층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둘째. 국내 유일한 15세기 피맛길의 원형 보존
사실 ‘육의전박물관’이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국내최대 규모의 유리막 전시도 발굴에 얽힌 사연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전시된 유구의 보존성과 희소성 덕분이다.
특히 서울에서 조선시대 피맛길의 원형이 남아있는 유일한 박물관이다. 육의전박물관에 전시된 유적에는 15C와 16C의 피맛골의 유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피맛골, 또는 피맛길이란 이름은 조선 시기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큰길(종로) 행차를 피해 자유롭게 다니던 골목 또는 길이란 뜻이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은 시전 상인이 창고나 생활공간 등으로 사용했던 행랑(行廊·대문 양쪽이나 문간 옆에 있는 방) 유구 등이다.
미국 피바디엑세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육의전 가운데 하나인 ‘저포전’(紵布廛·모시 상점)에서 각종 제사 때 사용했던 ‘저포전기(紵布廛旗)’를 복원한 전시물도 관람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시전의 역사와 체계, 거래 방법과 도구, 뒷이야기 등도 확인할 수 있다.
황평우 관장은 “육의전박물관은 문화재 보존과 개발의 상생 해법을 찾은 결과물이자 고고학 발굴유적 전시관의 모범 사례”라고 자평했다.
박물관은 앞으로 월요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개관한다. (02)722-6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