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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진’과 ‘신의’ 등 타임 슬립 드라마

시청자에게 ‘약’일까 ‘독’일까?

글 / 윤상길(TV리포트 편집위원)  / 2012-08-08 15:55:05

요즘 안방극장에서 ‘타임 슬립’ 드라마의 인기가 심상찮다. 현재 MBC-TV에서 방송 중인 ‘닥터 진’을 비롯해 지난 5월 20회로 종영한 SBS ‘옥탑방 왕세자’,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높은 관심을 받아온 tvN의 수목극 ‘인현왕후의 남자’, 이어서 오는 8월 13일부터는 김희선 이민호 주연의 ‘신의’도 방송될 예정이다.
타임 슬립(time sleep, 시간 이동)은 사전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은 조어(造語)다. ‘시간에 미끄러지기’란 뜻의 이 조어는 1994년 일본의 대중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5분 후의 세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임 슬립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실현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많은 과학소설과 영화 속에서 사람들의 꿈과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만화와 뮤지컬에도 스며들고 요즘 TV 드라마의 대세이기도 하다. 이미 고전이 된 H.G.웰스의 ‘타임머신’은 물론이고, 미국의 고생물학자 조지게일로드 심프슨이 쓴 ‘샘 매그루더의 시간 여행’, 할리우드가 만든 ‘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맨 인 블랙’ 시리즈나 프랑스 영화 ‘비지터’에는 과거나 미래로 날아가 역사를 바꾸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타임슬립이라는 주제가 극의 기둥줄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서 현대로 오거나, 현대에서 과거로 가거나, 아예 과거와 현대 사이를 오가며 줄거리를 풀어낸다. TV 드라마의 경우 원조격인 SBS ‘천상지애’(2003년)와 ‘옥탑방 왕세자’는 과거에서 현대로, ‘닥터 진’과 ‘신의’는 현대에서 과거로, ‘인현왕후의 남자’는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어낸다.
지난 5월24일 방송이 끝난 ‘옥탑방 왕세자’는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조선조 중기와 현대를  시대배경으로 삼고 있다. 즉 왕세자 이각이 사랑하는 세자빈을 잃고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신하들과 함께 21세기의 서울로 날아와 전생에서 못다한 여인과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을 갖추고 있으며 박유천과 한지민이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현재 방송 중인 ‘닥터진’은 정반대의 설정 현대의 외과의사 송승헌이 조선조 철종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의학으로서는 거의 해결할 수 없었던 뇌수술과 제왕절개 등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기적을 보여준다.     

지난 5월 종영한 '옥탑방왕세자'

그리고 SBS가 8월부터 방송할 예정인 ‘신의’는 아예 더 멀리 고려시대로 타임머신을 쏘아올린다. 고려의 느름한 무사와 현대 여의사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과 진정한 왕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린 내용으로 24부작이다. 송지나 극본 김종학 연출, 이민호 김희선 유호성이 출연한다.
이들 드라마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를 뿐, 전혀 현실성이 없는, 철저하게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사극은 고증과 사료의 뒷받침에서, 현대극은 개연성 확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오로지 상상의 날개를 펴는 판타지에 충실하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타임 슬립 드라마에 시청자가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재미가 있어서이다. 살기 팍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일탈 심리에 적절하게 편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상상’이나 ‘공상’만큼 좋은 약도 없다.
타임 슬립 드라마의 가장 큰 이점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시간여행이란 비현실적 소재가 전제된 만큼 그에 따라오는 모든 에피소드와 등장인물의 캐릭터 설정은 작가 마음대로다.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박유천)은 사물을 통과하는 초인적인 힘을 보여주며, ‘닥터진’의 진혁(송승헌)은 현대에서 가져온 몇 가지 의료기구만으로 조선 최초로 뇌수술에 성공한다는 식이다.
그런데도 시청자는 박수를 보낸다. “에이, 말도 안돼!”라면서도 이어지는 극 전개에 매몰된다. 그것이 판타지 스토리의 매력이다. 드라마의 기본 구성에 충실한 드라마들이 보여준 ‘뻔한 스토리’, 예를 들자면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 나아가 ‘막장드라마’에 식상한 탓에 이 기발한 극 전개에 빠져드는 것이다. 제작진은 숱한 거짓을 쉴 사이 없이 만들어내고, 시청자는 이 사기극(?)을 ‘신선한 소재’, ‘색다른 구성’으로 받아드린다.
타임 슬립 드라마의 또 다른 이점은 희극 소재의 다양한 활용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생활 습관과 문화적인 차이, 삶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해프닝을 코믹 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컬어 ‘시간차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임 슬립 드라마에 있어 비현실성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재미와 흥미만을 좇는 ‘가벼운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면 개별 에피소드에 있어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배경과 충돌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닥터 진’의 경우 의술시행에 있어 의학적 전문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고, 흥선대원군이 등장하는 만큼 고증과 사료의 인용에 있어 소홀함을 경계하여야 한다. 특히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고, 도쿄방송(TBS)에서 시즌3까지 이미 드라마로 방송된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된다.
논란 속에서도 타임 슬립은 요즘 드라마의 핵심 코드인 것은 분명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자극하는 소재인 것도 사실이다. 만약 타임 슬립을 통해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을까.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가 경험하고 추억해온 과거가 이곳에서는 현재이며, 이곳에서의 현재가 그의 과거일 뿐인데 말이다.
타임 슬립 드라마 열풍과 관련해 ‘캠퍼스 라이프’가 최근 대학생들에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서울과학기술대 박민경(영어3)양은 “과거 어느 시대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느 시대를 가더라도 더 살기 좋은 세상, 더 발전된 다른 사회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의 나와 모든 것에 매우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타임 슬립 드라마 제작진이 귀담아 들을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