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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래블 | 북인도 배낭여행기9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인도의 어머니 바라나시(Varanasi)

글․사진│김종원 객원기자  / 2012-08-03 15:05:17

☞필자가 만들어낸 신조어 화평선(花平線)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먹은 후 배낭을 꾸려 잔시(Jhansi)로 향했다. 카주라호에서 잔시까지 가는 길은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환상적인 유채꽃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 화평선(花平線)이다. 유채꽃이 만개한 들판에서 잠시 내렸다.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여성대원들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다. 물론 화장실은 유채꽃밭 속이다.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제발 오줌 좀 싸게 가달라고 해도 계속 뒤따른다. 하는 수없이 소변도 보지 못하고 봉고차에 올랐다. 도로 중앙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는 소들로 인해 차 운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잔시 역에 가까워질 즈음 운전사가 나한테 한국공장에 취직 좀 시켜달라고 청탁을 한다. 그냥 ‘No problum’ 몸짓으로 웃으며 넘겨버렸다.
잔시 역에서 그동안 함께했던 운전사는 델리로 돌아가고 바라나시 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역 대합실 안으로 들어섰다. 대합실은 많은 출영 객들로 붐빈다. 아니, 바글바글하다. 인도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다. 대합실 여기저기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닥에 천을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새들까지 대합실 안으로 들어와 날면서 지저귀고 분비물을 배설한다. 역 안 전신주와 나무에는 수많은 새들이 앉아있다. 인간과 새가 공존하는 잔시 역의 모습니다. 역 구내에 있는 식당에서 20루피 하는 탈리로 저녁을 먹은 후 밤9시45분에 출발하는 1107열차에 몸을 실었다. 침대칸이라고는 하지만 입석 승객이 많아 매우 혼잡스럽고 소란하다. 도둑맞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배낭을 체인과 연결해 침대에 매달고 카메라 가방은 머리맡에 두었다. 수년 전, 인도를 여행하면서 열차 안에서 신발을 잃어 곤혹을 치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만전에 만전을 기했다. 어찌어찌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향기롭지 않은 냄새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인도인이 우리 바닥 중앙에 신문지를 깔고 배낭에 발을 올려놓은 채 코를 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다. 발의 위치가 표 동무와 내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냄새였다. 고린내 나는 발의 위치를 변경해준 후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도인에게 “지난밤에 내 방에서 잠을 잤으니 숙박비를 내야할 것 아니냐?”라며 손을 내밀었더니만, 웃으면서 “땡큐” 한마디와 악수를 청한 후 재빨리 사라진다.



바라나시 역이 가까워질 무렵 악취가 진동한다. 열차 내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 배설물이 직통으로 철길로 빠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역 주변이 쓰레기들로 넘쳐나고 지저분하여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6∼70년대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역사(驛舍) 반대쪽으로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다. 도둑열차를 탄 사람들이다. 그러나 호루라기를 불며 뒤쫓는다든가 제재하는 역무원은 아무도 없다. 필자가 어렸을 때 신안동에 위치한 광주역에서는 열차가 도착하면 도둑열차를 탔다가 열차가 서기도 전에 뛰어내려 도망가는 승객과 호루라기를 불며 뒤쫓는 승무원간의 쫓고 쫓기는 한판 승부가 벌어졌던 장면이 연상된다. 오전 10시에 도착예정이었으나 12시15분에야 바라나시 역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호텔 지배인이 마중을 나와 오토릭샤를 타고 비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달려 ‘Hotel Sonmony’에 여장을 풀었다. 곧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갠지스 강(Ganges River)이 한눈에 조망되고, 특히 화장터가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그럼 여기에서 신(神)의 도시라는 ‘바라나시(Varanasi)’에 대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바라나시는 3천 년 이상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영어로는 ‘베나레스’라 하고, 현지인들은 ‘영적인 빛으로 넘치는 도시’라는 뜻인 ‘카시(Kashi)’로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갠지스 강도 영어식 발음이고 이곳에서는 강가(Ganga)라 불린다.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빙산에서 생겨난 물이 인도 평원을 적시고 흘러 징벌의 신인 시바 신의 이마에 걸려있는 초생 달을 닮아있는 바라나시의 강가는 인도인들에게는 신 그 자체이며, ‘인도의 어머니’로 불릴 만큼 신성한 존재이다.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가장 성스러운 일로 이곳에서 죽어 화장한 후 그 재를 강가에 흘려보내면 윤회(輪回)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믿는 인도인들이며, 그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 바로 이곳 바라나시이다.



붉은 천과 노랑 천에 싼 시신이 나팔소리와 함께 들 것에 실려 계속해 들어온다. 백고머리를 하고 흰 천으로 하반신만을 가린 상주가 맨발로 뒤를 따른다. 시신은 강가 물에 담갔다가 꺼내 윗옷을 벗긴 후 장작 위에 올린다. 상주가 짚으로 불씨를 받아와 불을 붙이는데, 상주와 유족들이 죽은 이의 주위를 다섯 번 돈다. 다섯 번을 도는 이유는, 육신을 이루는 자연 요소 5가지인 흙, 공기, 물, 바람, 영혼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장작이 활활 잘 타게 하기 위해 송진가루 같은 것을 뿌린다. 화장이 끝나면 상주가 강가에서 떠온 물(聖水)이 든 항아리를 뒤로 들어 올려 화장 후 타고 남은 재에 던져 깸으로서 상주와 관련한 장례절차는 끝이 난다. 상주가 아닌 가족들은 손으로 강가에서 물을 담아와 재에 뿌린다. 이후 도미(장례절차를 담당한 사람)들이 타고 남은 재와 덜 탄 시신을 삽에 담아 강가에 뿌리는 것으로 모든 장례는 끝난다. 부자들은 장작을 많이 살 수 있어 완전한 화장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자는 장작을 조금밖에 살수 없어 타다 만 시신을 그대로 강가에 흘려보낸다.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시간정도이며, 타고남은 재를 모으면 0.5∼1kg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 재를 강가에 뿌린 후 상주는 목욕을 하게 되는데 죽은 이의 재가 뿌려진 가트에서는 목욕을 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서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죽은 이의 유족은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장례를 축복해 준단다. 이곳에서 화장해 재를 강가에 뿌리면 해탈을 하게 되고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강가에서 일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자기의 태생을 직업으로 받아들여 다른 직업을 선택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오로지 자기 신분에 맞는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고, 힌두인의 신분 질서를 지키고 따르는 것이 힌두교가 가르치는 구원의 길로 이르기 때문이다. 이모든 화장 장면을 멀리서 유심히 지켜보며 카메라와 캠코더에 담았다.
강가에서는 가끔 화장을 하지 않고 돌을 메달아 수장(水葬)하는 장면도 목격된다. 수행자와 처녀, 임산부와 어린이는 화장을 하지 않고 강에 던져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오랜 풍습이 있다고 한다. 수행자는 평소의 수행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처녀는 청순하고 정결하기 때문이며, 어린이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장터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개가 타다 남은 다리 한쪽을 물고 도망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모든 것을 강물에 씻고 신에게 경배하러 왔다는 인도인, 세상 어디를 가 봐도 이곳 바라나시처럼 평온을 주는 곳이 없다는 신의 도시, 삶과 죽음이 뒤섞인 인간사의 축소판인 곳, 타락한 수행자까지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이곳을 그들은 ‘인도의 어머니’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종교에 믿음을 두는 사람, 바라나시에서 죽으려는 사람, 강가의 물로 모든 것을 씻으려는 사람, 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해탈을 구하려고 인도 전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는 곳이 바로 이곳 바라나시이다.
여기에서 인도의 또 다른 독특한 문화인 카스트 제도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카스트 제도는 아리안 족이 인도로 이주하면서 원주민 등 선주(先住) 민족들을 정복하고 동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특유한 사회제도이다. 카스트는 크게 힌두교 제사를 관장하는 ‘바라문’ 또는 ‘브라만(神官)’, 무사계급으로 여기에서 왕족이 나왔다는 ‘크샤트리아(武士)’, 농·목축업, 상업, 수공업과 기타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서민계층인 ‘바이샤(庶民)’, 피정복 민으로 구성된 상위 카스트의 노비(奴婢)에 종사하는 ‘수드라(奴婢)’의 4성으로 나뉘며, 4성에도 속할 수 없는, ‘아웃 카스트’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있는데 이들은 거주·직업 등에 엄격한 차별 대우를 받는다. 간디는 이들을 신(神)의 아들이라 불렀으며, 독립 후 불가촉천민제를 폐지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장학금제도를 설치하고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는 등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헌법상의 카스트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관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점차 차별이 해소되어 가지만 지방에서는 아직도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강가에는 다음과 같은 카스트가 존재한다.
도비왈라 :빨래를 담당하는 신분이다. 성스러운 물로 더러운 일을 한다하여 천한 계급으로 여기며 수천 년 조상대대로 내려온 가업인 빨래는 아무나 할 수 없게 정해져 있다.



야다부 :소를 관리하는 신분이다. 인도인이 즐겨 마시는 소젖을 공급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번다.
말라 :사공을 가리키는 신분이다. 배를 띄워 고기를 잡거나 강 건너로 사람을 운반함으로써 생업을 이어나간다.
도미 :장례 실무를 담당하는 신분이다.
점심식사 후 대원들과 함께 강가에 있는 가트로 나갔다. 가트(ghat)란 목욕장, 화장터 그리고 축제와 만남의 장소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시멘트 계단을 말한다. 석류정 선교사와 김효경 대원은 미리 준비해간 헌 옷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니 화장할 때 사용하는, 성수를 담는 항아리를 비롯해 여러 물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그 옆에는 온몸에 재를 바르고 긴 수염과 긴 머리를 꽈 올린 채 담배를 물고 있는 이상스런 모양을 하고 있는 사두가 있다. 눈이 충혈 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담배가 아닌 환각제를 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두 앞에는 화롯불이 있고 사두의 설법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다. 사두가 핀 담배를 돌려가며 피운다. 이방인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화장터로 가기 위해 가트를 걸었다. 한 발짝을 옮길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자칫 딴눈을 팔았다가는 소똥, 개똥, 염소똥 등 오물을 밟기 십상이다. 가끔 머리와 수염을 기른 동양권 젊은이들이 눈에 띄는데 한결같이 충혈 된 눈동자들이다. 마치 마약한 사람들 같다. 화장터로 갔다. 시신을 태운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을 쓰라리게 한다. 눈물이 계속 흐른다. 시신을 태우고 남은 잿더미를 뒤지는 소와 개도 있다. 심지어 화장하고 남은 나무토막을 땔감으로 쓰기 위해 주워 오는 노파와 숯을 줍는 아이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