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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좋은 게임에 대한 소고(小考)”

이재홍(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디지털스토리텔링학과 교수)

  / 2012-08-03 12:38:48

인류의 삶의 언저리에는 늘 게임(Game)이 존재해 왔다. 게임이란 여가시간에 휴식을 즐기는 유쾌한 놀이(Amusement)의 성격이 강한만큼, 인류는 게임하는 행위 자체를 자연스럽게 즐겨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게임은 꾸준하게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변화무쌍한 문화의 흐름에 발맞추며 다양한 장르로 태동을 거듭해 왔다.

 과거의 아날로그적인 놀이들은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동적(動的)인 형태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의 디지털화된 놀이들은 대부분 감성을 움직이는 정적(靜的)인 형태가 주를 이루면서, 게임에 숙명처럼 녹아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밸런싱 문제들이 핵심 화두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정책과 일부 언론보도에서 부각시키고 있는 게임의 역기능적인 문제점들은 과몰입으로 인한 중독성 문제, 아이템의 현금거래 등으로 빚어지는 사행성 문제,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폭력성 문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과학적 혹은 의학적인 근거에 의한 사회적인 합의나 학문적인 동의를 획득하지 못하는 부분들이지만, 청소년들의 학습 활동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부분으로 규정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최근에 스마트콘텐츠의 확산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게임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층에서는 착하고 좋은 게임에 대한 필요성을 매우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지금으로써는 게임의 역기능을 질타하고, 직간접적으로 순기능 게임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게임산업계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게임업계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힘들어 하기보다는 오히려, 게임의 긍정적인 진화를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방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사료된다. 그 방책이란 착하고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의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구상에서는 게임의 순기능성을 추구하는 연구가 기능성게임(Serious Game)이라는 타이틀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능성게임은 상호작용으로 발현되는 재미와 특별한 목적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제작되는 게임으로서, 플레이어의 자발적인 동기를 유발하여, 어려운 학습내용이나 업무를 재미있게 이해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미국 육군에서 징병을 장려하기 위한 홍보목적으로 개발한 라는 기능성게임을 개발한 Virtual Heroes의 CEO인 Jerry Heneghan은 기능성게임은 교육·훈련과 동기 유발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자 과학이라고 하였다. 그의 주장대로 지금, 기능성 게임들은 교육, 훈련, 의료, 치료, 예방, 체험 등과 같은 착하고 좋은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소아암 환자의 치료 동기화 게임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관련 게임 , UN세계식량계획에서 개발한 식량지원 시뮬레이션 게임 , 한자교육게임 <한자마루>, 영어교육게임 <오디션잉글리시>, 한반도의 분단과 DMZ를 소재로 한 <나누별 이야기> 등과 같은 게임들은 이미 우리들에게 친근한 기능성게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기능성게임이 교육과 훈련, 체험 등에 국한되는 현상으로, 순기능성만을 고집하며 학습 일변도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획일적인 목표만을 추구하게 되어, 플레이어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Eric Berne은 『Games People Play』에서 좋은 게임이란 게임에 참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안녕에 기여함과 동시에 게임의 결과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 모두에게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게임플레이의 과정과 결과가 게임에 참여한 모두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Eric Berne의 주장은 좋은 게임의 기본을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좋은 게임, 착한 게임의 필요성으로 인하여 일방적으로 기능성 게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옳지 않으며, 또한 일방적으로 온라인게임을 비롯한 상용게임들의 역기능성들을 비판하는 것 또한 잘 못된 일이다.

상용게임은 상용게임대로, 기능성게임은 기능성게임대로의 독립된 제작형태를 보이기보다는 모든 대중들이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상호융합문제를 연구하여 기능성게임과 상용게임의 융합문제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일이 착하고 좋은 게임을 만드는 첩경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아케이드 게임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두 가지의 뮤직게임 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한 젊은이가 DDR(Dance Dance Revolution)게임기 위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가 손가락만으로 모니터를 현란하게 터치하며, 리듬게임을 하고 있었다. 온 몸으로 건강을 과시하는 DDR의 젊은이의 모습이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그와 동시에 <골프존>이나 Wii 스포츠게임들을 생각하며, 장 자크 루소(Jean Jaques Rousseau)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불현 듯 떠올려 보았다. <바다이야기> 의 망령이 아직도 정처 없이 떠도는 아케이드 게임업계가 루소의 명언을 기억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융합 혹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착하고 좋은 게임의 새로운 방향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최근에 개발되고 있는 한국 MMORPG들이 대거 스토리텔링을 강화시키고 있는 현상은 순기능적인 게임을 지향하는 매우 긍정적인 개발 자세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한국형 온라인게임이 안고 있던 스토리의 부족현상은 아이템의 현질문제와 반복적인 아바타사냥으로 인한 폭력성과 과몰입의 문제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캐릭터의 살상과 구원이라는 측면의 생과 사의 문제, 계기성보다는 인과성으로 형성된 사건, 시간과 공간의 상징성이 풍요롭게 조화된 세계관이 어우러지도록 스토리텔링하는 그 자체가 순기능성으로 한발 다가서는 창작태도인 것이다. 신체의 훼손이 없는 캐릭터, 몬스터를 구해주거나 보호하는 퀘스트, 굳이 보상이 없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평화스러운 미소야말로 착하고 좋은 게임의 징표가 아니겠는가?

이재홍 교수는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문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게임스토리텔링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디지털스토리텔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7년 ‘창조문학’에서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팔녀각>을 출간하였으며, 저서로는 ‘게임시나리오작법론’, ‘엄마게임해도돼?’, ‘애니메이션시나리오작법론’,‘게임스토리텔링’ 등이 있다. e-mail은
munsar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