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left
search

 

 

ȭ
ȭ

‘나홀로’ 걷기여행 안전이 우선돼야

전병열 편집인  jun939@newsone.co.kr / 2012-08-03 10:57:24

호젓한 산책로가 공포의 길이 되고 피해야할 둘레길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즐겨 찾던 친숙한 길도 나 홀로 걷던 행복이 사라졌다고 불안해하며 길동무를 찾는다고 한다. 제주도 올레길 여성 살해사건 휴유증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프리랜서였던 강모(여 40) 씨는 계약했던 일을 끝내고 “제주도 올레길이 보고 싶다”며 그의 어머니께 말하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누나가 살해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동생의 불만이 올레길 운영자와 관계기관을 향해 쏟아졌다. "올레길에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어 이곳을 와 본 사람은 누구나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여자 혼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 하나만 있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 걷기여행의 개척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제주 올레길이다. ‘올레’란 문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는 ‘올레’로 굳어졌다고 한다. ‘올레’는 집 앞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뜻한다. 제주 올레길은 비영리법인인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 이사장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착안해 제주도의 도보여행 코스를 만든 게 올레길이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 조성한 25개 코스가 열려 있다고 소개한다. 올레는 ‘제주에 올래?’라는 초대의 의미도 담고 있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 오름 등 제주 속살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healing) 코스로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올레길을 걷는다.

제주 올레길은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지리산 둘레길, 강화도 둘레길, 서울 성곽길, 울산 어울길, 무등산 옛길, 부산 갈맷길...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생겨났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크고 작은 산책로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포화상태다. 명칭도 각양각색이다. 올레길, 둘레길, 산책로, 문화탐방로, 생태탐방로, 치유숲길, 삼림욕길, 체험길,.. 등등 홍보마케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삶의 질을 드높인다는 미명으로, 녹색성장의 대명사로 중앙정부에서부터 지자체까지 걷기길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마치 둘레길 조성 실적에 따라 지자체장 평가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거공약에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건강이나 사색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길을 만들어 놓고 이용하는 주민이 없다면 관리부재로 이어져 무용지물로 방치될 것을 우려한다. 또한 실적위주의 산책길 조성으로 난개발과 환경파괴의 우려가 제기되고 무리한 친환경적 조성은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그동안 당국이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성과와 환경문제만 제기했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없었다. 안전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라든가 예산부족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다. 이제 와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부산을 떨지만 실질적인 안전대책이 될지 의문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고단함을 잊고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창조하는 길을 길에서 찾기 위해 길을 걷는다. 건강한 심신을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면서 자신을 극복해 나가는 즐거움 속에 찾은 행복이 도보여행에 있다. 가족 ? 친구 ? 동료 ? 이웃과 함께, 때로는 낫선 사람과 어울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행복도 크지만 ‘나홀로’ 사색하며 내딛는 발걸음은 창조적 깨달음의 길이다. 걸어서 세계를 일주한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걸음이 잉태한 자식’이라고 했다. 예수도 부처도 걸으면서 깨닫고 가르쳤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산책길에서 생각을 가다듬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홀로 걷는 행복이 위협을 받고 있다. 살인, 강도, 성폭행 등 흉악범의 공포도 심각하지만 지나친 경호와 사생활의 침해가 우려되는 CCTV의 전방위적 감시는 호젓한 산책길의 방해꾼이 될까 걱정된다. 사색의 길이 보장될 수 있는 안전대책은 없을까. 편안하고 조용하며, 쾌적한 자연의 공간에서 나홀로 도보여행을 하고 싶다는 시민들이 많다.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더울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산책길을 조성하면서 우선적으로 시행해야할 정책이 안전이다 시민들은 당국을 믿고 당국이 만든 길이기에 안심하고 나홀로 걷는다. 시민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도 먼저 시설자체가 안전하도록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