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ê²½ì¸ì•„ë¼ë±ƒê¸¸ 관광ìžì›ìœ¼ë¡œ 승부해야

전병열 ë¬¸í™”ê´€ê´‘ì €ë„ íŽ¸ì§‘ì¸

전병열 편집츠 jun939@newsone.co.kr / 2012-06-01 13:52:30

[칼럼=문화관광저ë„] ìš°ë¦¬ë‚˜ë¼ ìµœì´ˆì˜ ë‚´ë¥™ìš´í•˜ì¸ ê²½ì¸ì•„ë¼ë±ƒê¸¸(옛 ê²½ì¸ìš´í•˜)ì´ ìš°ì—¬ê³¡ì ˆ ëì— ì§€ë‚œë‹¬ 25ì¼ ì „ë©´ 개통ë다. 1987ë…„ë„ ì¸ì²œ êµ´í¬ì²œ 대í™ìˆ˜ë¥¼ 계기로 시작ë으나 2004ë…„ 환경오염 논란으로 공사가 ì¤‘ë‹¨ëœ ê²ƒì„ ì´ëª…ë°• 정부가 ëª…ì¹­ì„ ë°”ê¿” 재개한 지 3ë…„ 6개월만ì´ë‹¤. ì´ ì‚¬ì—…ë¹„ 2ì¡° 2,500ì–µ ì›ì´ íˆ¬ìž…ëœ ëŒ€í˜•êµ­ì±…ì‚¬ì—…ìœ¼ë¡œ 정부는 물류비 ì ˆê°, 관광수입 ì¦ëŒ€, í™ìˆ˜ 예방 등 1ì„3ì¡°ì˜ íš¨ê³¼ë¥¼ 기대하고 있다.

ì´ëª…ë°• ëŒ€í†µë ¹ì€ ê°œí†µì‹ì—ì„œ "ì´ì œ 내륙ë„ì‹œ ì„œìš¸ì€ ë°”ë‹¤ë¥¼ í’ˆì€ ìƒˆë¡œìš´ 항구․수변ë„시로 바뀌고 수ë„권 경제를 지역 경제와 유기ì ìœ¼ë¡œ 연결시킬 수 있게 ë다"ë©´ì„œ "ê²½ì¸ì•„ë¼ë±ƒê¸¸ì´ 관광 명소로 í¬ê²Œ 발전하고 국제화물․ì—¬ê°ë¶€ë‘ë¡œë„ ë”ìš± í¬ê²Œ í™œìš©ë  ê²ƒ"ì´ë¼ê³  ë§í–ˆë‹¤. ì´ ëŒ€í†µë ¹ì€ ë˜ "ìžë™ì°¨ë‚˜ 기계류를 ì‹¤ì€ ë°°ê°€ 중국, ì¼ë³¸ì€ 물론 러시아, ë™ë‚¨ì•„까지 운항하기 ë•Œë¬¸ì— ê²½ì œì  ê¸°ëŒ€ê°€ í¬ë‹¤"ë©´ì„œ "ì—°ê°„ 3ì¡° ì›ì— 달하는 ìƒì‚°ìœ ë°œ 효과와 2만 6000ëª…ì˜ ê³ ìš© 효과가 ìžˆì„ ê²ƒ"ì´ë¼ë©°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ì¼ê°ì—서는 ê²½ì¸ì•„ë¼ë±ƒê¸¸ì˜ ì²­ì‚¬ì§„ì— ëŒ€í•œ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물류 ê¸°ëŠ¥ì´ ê¸°ëŒ€ì— ë¯¸ì¹˜ê¸° 어렵다는 것ì´ë‹¤. ê²½ì¸ì•„ë¼ë±ƒê¸¸ ìˆ˜ì‹¬ì€ í‰ê·  6.3më¡œ 조선업계ì—ì„  5000t급 ì´ìƒ í™”ë¬¼ì„ ì´ ì˜¤ê°€ê¸° 위한 ìˆ˜ì‹¬ì„ 6m ì´ìƒìœ¼ë¡œ 보지만 5000tê¸‰ì„ ì´ˆê³¼í•˜ë©´ ìš´í•­ì´ ì–´ë µë‹¤ëŠ” 것ì´ë‹¤. ë”°ë¼ì„œ 수ë„권 물ë™ëŸ‰ 중 ìƒë‹¹ ë¶€ë¶„ì— í•œê³„ê°€ 따를 ìˆ˜ë°–ì— ì—†ì–´ 물ë™ëŸ‰ 확보가 쉽지 않다는 우려다. ë˜í•œ ìš´ì†¡ì‹œê°„ë„ ê²½ì œì„±ì— ì˜í–¥ì„ 미친다. 현재 서울 í–‰ì£¼ëŒ€êµ ë‚¨ë‹¨ì—ì„œ 서해까지 ìžë™ì°¨ë¡œ 30분쯤 걸린다. 하지만 선박으로 ì•„ë¼ë±ƒê¸¸ì„ 통과하면 1시간 30분가량 소요ëœë‹¤. 관광산업ì—ì„œë„ ì•„ë¼ë±ƒê¸¸ì˜ ê´€ê´‘ê° ìœ ì¹˜ê°€ 예ìƒë³´ë‹¤ 쉽지 ì•Šì„ ê²ƒì´ëž€ ì „ë§ë„ 있다. 서울시가 ë°•ì›ìˆœ 시장 취임 ì´í›„ ê¹€í¬ì™€ ì—¬ì˜ë„를 연결하는 서해뱃길 ì¡°ì„±ì‚¬ì—…ì„ ìž ì • 중단하면서 반쪽짜리 ë±ƒê¸¸ì´ ë  ê²ƒì´ëž€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ì´ë‹¤. 게다가 í™˜ê²½ë¬¸ì œë„ ë…¼ëž€ì´ ë˜ê³  있다.

ì•„ë¼ë±ƒê¸¸ 공사는 2009년부터 본격ì ìœ¼ë¡œ 시작ë지만 ê·¸ 역사는 800ë…„ ì „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ë¼ê°„다. 첫 ì‹œë„는 800ì—¬ ë…„ ì „ì¸ 14세기 ê³ ë ¤ 고종 때였다. 당시 ê° ì§€ë°©ì—ì„œ ê±°ë‘” 조세를 중앙정부로 ìš´ì†¡í•˜ë˜ ì¡°ìš´(漕é‹)항로는 ê¹€í¬ì™€ ê°•í™”ë„ ì‚¬ì´ì˜ 염하를 ê±°ì³ ì„œìš¸ 마í¬ë¡œ 들어가는 항로였다. 하지만 염하는 만조 때만 ìš´í•­ì´ ê°€ëŠ¥í–ˆê³ , ì†ëŒëª©(강화군 불ì€ë©´ 광성리 해안)ì€ ë±ƒê¸¸ì´ ë§¤ìš° 험했다. ì´ì— ë”°ë¼ ë‹¹ì‹œ ë¬´ì‹ ì •ê¶Œì„ ì´ëŒë˜ 최ì´ëŠ” 안정ì ì¸ 조운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ì¸ì²œ 앞바다와 í•œê°•ì„ ì§ì ‘ 연결하는 êµ´í¬ìš´í•˜ë¥¼ ì‹œë„했다. 그러나 ë‹¹ì‹œì˜ ê¸°ìˆ ë¡œëŠ” ë‘꺼운 ì•”ì„ì¸µì„ ëš«ëŠ” 게 불가능해 실패로 ë났다.

ì¡°ì„  중기 중종(1530ë…„) ë•Œ ë˜ë‹¤ì‹œ 운하 ê±´ì„¤ì„ ì¶”ì§„í–ˆì§€ë§Œ 실패로 ëŒì•„갔다. ì´ë•Œ íŒ ë„ëž‘ì´ ì§€ê¸ˆì˜ êµ´í¬ì²œì´ë‹¤. í˜„ëŒ€ì— ë“¤ì–´ì„  1966ë…„ 서울시 가양ë™ì—ì„œ ì¸ì²œì‹œ ì›ì°½ë™ 율ë„까지 ì´ì—°ìž¥ 21kmì˜ ìš´í•˜ ê±´ì„¤ì´ ì¶”ì§„ë지만, ê²½ì¸ì§€ì—­ì˜ 급격한 ë„시화와 지역 개발로 중단ë˜ê¸°ë„ 했다. 그러다 1987ë…„ êµ´í¬ì²œ 유역 대í™ìˆ˜ë¥¼ 계기로 운하 건설 ë…¼ì˜ê°€ 재개ë다. 당시 êµ´í¬ì²œì´ 범람하면서 ì‚¬ë§ 16명, ì´ìž¬ë¯¼ 5427명, 재산피해 420ì–µ ì›ì´ë¼ëŠ” 막대한 ì†ì‹¤ì„ 입었기 때문ì´ë‹¤. 정부와 지방ìžì¹˜ë‹¨ì²´, 지역 주민 ë° ì „ë¬¸ê°€ë“¤ì´ 20ì—¬ ë…„ì— ê±¸ì³ ê²½ì œì„±․환경ì˜í–¥ 검토를 거친 ë’¤ 2008ë…„ 12ì›” ì•„ë¼ë±ƒê¸¸ 건설계íšì´ 최종 í™•ì •ëœ ê²ƒì´ë‹¤.

ê²½ì¸ì•„ë¼ë±ƒê¸¸ì€ 우리 ë¯¼ì¡±ì˜ ìˆ™ì›ì‚¬ì—…ì´ì—ˆë‹¤ê³  í•  수 있으며 í™ìˆ˜ì˜ˆë°©ì˜ 목ì ì—다 ìš´í•˜ì˜ ê¸°ëŠ¥ì„ ì¶”ê°€í•œ 대형 국책사업으로 ì´ë¯¸ ì™„ê³µë¼ ìš´í•­ì— ë“¤ì–´ê°”ë‹¤. ì´ì œ ì°¬․ë°˜ ê°ˆë“±ì„ ë– ë‚˜ 기대효과를 달성시킬 수 있ë„ë¡ ê´€․민 등 ë²”êµ­ë¯¼ì  ê´€ì‹¬ê³¼ 협조가 필요할 ë¿ì´ë‹¤. 경제 논리로만 따진다면 ê·¸ 효과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겠지만 관광ìžì›ìœ¼ë¡œì„œì˜ 가치를 찾는 ë°ëŠ” 어렵지 ì•Šì„ ê²ƒì´ë‹¤. 관광ìžì›ì˜ 가치를 경제성만으로 í‰ê°€í•  수는 없다. êµ­ë¯¼ë“¤ì˜ ì‚¶ì˜ ì§ˆì„ í–¥ìƒì‹œí‚¤ëŠ”ë° ê·¸ 가치를 둘 수 있기 때문ì´ë‹¤. êµ­ë¯¼ë“¤ì´ ì¦ê¸°ê³  í–‰ë³µì„ ëŠë‚„ 수 있다면 국가는 당연히 투ìžë¥¼ ì•„ë¼ì§€ ë§ì•„야 한다. ê·¸ê²ƒì´ ë³µì§€ì´ì§€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명목 ìƒ ìˆ˜í–¥ 8ê²½ì´ ì•„ë‹ˆë¼ ë³¼ê±°ë¦¬ì™€ ì²´í—˜․ì¦ê¸¸ê±°ë¦¬ 등 다양한 í”„ë¡œê·¸ëž¨ì„ ê°œë°œí•´ì•¼ 하며 아울러 서해뱃길 ì¡°ì„±ì‚¬ì—…ë„ ìž¬ê°œí•´ì•¼ 한다. ê²½ì¸ì•„ë¼ë±ƒê¸¸ì„ 관광산업으로 승부하ìžëŠ” 것ì´ë‹¤. 경제성보다 êµ­ë¯¼ì˜ ì‚¶ì˜ ì§ˆì„ ë†’ê²Œ 향유하ë„ë¡ ì •ì±…ì„ ìš°ì„ í•´ì•¼ 하며 ê²½ì¸ ì•„ë¼ë±ƒê¸¸ì„ 놓고 정치논리로 ì´ì „투구(泥田鬪狗)í•´ì„  안 ëœ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