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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가 사는 태고의 섬 '야쿠시마'

7200살 삼나무 조몬스기 등 고대 원시림 보존

이상미 기자(sangmi@newsone.co.kr)  / 2011-03-03 17:38:43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어 유명해진 장소들은 많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선 그런 경우가 드믈 뿐더러 관객들이 실제 배경이 있으리라고 잘 느끼지도 못한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란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가공의 세계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는 배경이 된 실제 모델지역이 있다. 바로 일본열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 ‘야쿠시마(屋久島)’다. 원령공주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야쿠시마의 사진을 보자마자 기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판타지 애니메이션만큼 신비롭고 환상적인 태고의 섬 야쿠시마를 상세히 알아보자.

고대의 기억을 간직한 섬 ‘야쿠시마’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이미 애니메이션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원령공주’는 고대 일본의 숲을 배경으로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과 숲을 지키려는 숲의 신들의 싸움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고대의 숲’이란 설정은 야쿠시마의 현실 그대로다. 규슈지방 가고시마현에서 뱃길로 130km에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야쿠시마에는 수령이 1000년도 넘는 삼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해발 1300m 부근에는 수령이 7200년으로 알려진 ‘조몬스기(繩文衫)’라 불리는 삼나무가 살고 있다. ‘조몬’이란 ‘석기시대’라는 뜻으로, 이 나무의 나이는 빗살무늬 토기가 만들어지던 고대와 닿아있다.

야쿠시마는 화산섬으로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하다. 야쿠시마는 541k㎡의 면적으로 제주도의 1/3수준이지만 최고봉인 미노우라산의 높이는 1935m로, 한라산 1950m와 맞먹는다. 조그만 면적에 미노우라산을 비롯해 30여 개의 1000m가 넘는 가파른 봉우리들을 가지고 있는 야쿠시마는 섬 면적의 75%가 산악지대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보인다.

고도에 따른 기후 변화가 극명해 해안부근에서 산 정상으로 향하면, 표고가 높아짐에 따라 기후는 아열대에서 아한대까지 변하고, 그 식물체계는 마치 일본열도의 자연을 응축시킨 것과 같아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의 도로에서 보면, 수백 미터에 달하는 급사면에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희귀한 자연환경 덕분에 야쿠시마는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야쿠시마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역시 나무의 나이가 1000년이 넘는 ‘야쿠스기(屋久杉)’라 불리는 삼나무들이다. 곧고 길게 자라는 보통 삼나무와 달리 둥치가 굵고 키가 작고 뒤틀어진 야쿠스기들이 이곳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고목일수록 이러한 형태가 도드라지는데, 이는 비가 많고 태풍이 잦은 이곳 특유의 기후에 기인한다. 아열대의 뜨거운 태양 에너지는 바다를 데우고 이때 생기는 수증기가 산을 타고 올라 거대한 비구름을 형성하고, 이 비구름은 이곳에 연간 1만㎜ 비를 쏟아 붓는다.

야쿠시마의 트래킹 코스
이 신비로운 태고의 숲을 만끽할 수 있는 관광과 등산코스는 목적지에 따라 크게 3곳으로 나뉜다. 첫째 수령 7200년 된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코스, 둘째 원령공주의 모티브가 된 원시림의 계곡 ‘시라타니운스 계곡(白谷雲水)’을 둘러보는 코스, 셋째 야쿠시마의 최고봉 미야노우라산(宮之浦岳)의 정상에 올라보는 코스다.

조몬스기는 해발 고도 1300m에 자리하고 있다. 연간 1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어 현재는 나무껍질과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접근을 금하고 있어, 수십미터 떨어진 전망대에서 봐야한다. 아라카와 등산로에서 출발하여 왕복 9시간이 걸린다. 하루 만에 등정하기 벅찬 긴 코스로 체력을 요하지만 등산길은 단순 명쾌하므로 오르기에 어렵진 않다.

부근 숲에는 2000년이 넘는 삼나무들이 많이 있다. 몇 천 년 동안 삶의 세월을 말해주듯 뒤틀리고 잔뜩 꼬여 있는 부부삼(夫婦杉), 대왕삼(大王杉), 옹삼(翁杉) 등이 조몬 삼나무와 함께 숲의 신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야쿠시마의 가장 인기 있는 코스인 시라타니운스 계곡으로 가려면 야쿠시마 북쪽 미야노우라항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타고 한참을 올라야 한다. 수령 3000년으로 추정되는 야요이스기를 비롯, 니다이스기, 부교스기, 나나혼스기 등의 아름드리 야쿠스기부터 참가시나무, 조록나무, 후박나무와 같은 조엽수림과 솔송나무, 전나무 등과 같은 상록수림이 혼합된 원시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조몬스키를 보러 이 계곡을 지나다 영감을 받아 원령공주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검은 이끼를 뒤집어 쓴 바위들과 나무 밑동부터 줄기가 꼬여 올라가 비틀어진 나무형상, 커다란 뿌리를 땅 위에 드러낸 괴목들의 신비로우면서도 괴괴한 분위기가 과연 상상력을 자극할 만하다.

이 계곡에서 조몬스기까지는 8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다. 예전엔 조몬스키를 보러 갈 때 시라타니운스 계곡을 지나가야 했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코스가 되었다. 시라타니운스 계곡은 여러 가지 짧은 코스로 구성돼있고 탐방에는 대개 1~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미야노우라산은 야쿠시마 중앙부에 우뚝 솟은 규슈 지역의 최고봉이다. 산을 따라 오르면 해발 1600m의 고지에 아름다운 습지가 있고, 이곳부터 정상까지 4km 가파른 구간에는 오키나다케, 구리오다케 등 주봉을 호위하며 솟은 봉우리들이 웅장해 고산 풍경이 일품인 코스다.

미야노우라산은 여러 경로를 통해 오를 수 있다. 동쪽 안보(安房)항에서 임도를 거쳐 요도가와(淀川)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코스, 역시 동쪽의 오다테댐(아라카와) 기점, 남쪽의 오노아이다(屋之間) 온천 기점, 남서쪽의 구리오(栗生) 기점, 북서쪽의 나가타(永田) 등에서 산행이 가능하다. 시라타니운수 계곡을 통해 정상을 오를 수도 있지만 미야노우라항에서 시작해 산을 넘으려면 1박2일이 넘게 걸린다.

야쿠시마에서 가장 대중적인 산행코스는 해발 1350m인 요도가와 주차장 기점의 등산로다. 이곳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왕복하는 데 약 9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을 넘을 경우엔 북서쪽 능선을 타고 조몬스기를 거쳐 산림철도를 따라 오다테(아라카와)댐으로 갈 수 있다. 이 코스를 탈 경우 산행에만 1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