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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 걷기 여행②

영남의 젖줄을 따라 찾은 육지의 ‘섬마을’
낙동강원류길·승부역 가는 길

이승현 기자(ysh@newsone.co.kr)  / 2010-10-08 15:08:26

강이 바다로 흘러가며 땅 위에 그린 길과 그 길을 따라 사람의 흔적이 남긴 길은 서로 다독이며 말없이 길 위를 따른다. 그 사이에는 사람을 감싸 안은 자연과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서로의 가슴에 새겨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낙동강(낙동강원류길+승부역길, 퇴계오솔길, 전통의 유교문화길, 은빛 모래길) 한강(꽃벼루재길+골지천길, 두물머리길, 여강나루터길) 금강(무주벼리길, 백제역사 비단강길, 3대포구길+금강하구길) 영산강(담양수목길, 남도식도락길) 섬진강(섬진강기찻길+꽃길) 주변의 아름다운 강변길 13개 코스를 ‘가족과 함께 떠나는 우리 강 걷기 여행 13선’으로 선정했다. 이번호에는 낙동강원류길과 승부역 길을 소개한다.

발길이 닿는 가장 깊은 곳
낙동강원류길은 황지(潢池)에서 시작해 구문소(求門沼)를 거쳐 그 이후로는 더 걸어갈 수 없는 곳, 승부역까지를 일컫는다.
백두산과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고원도시 태백은 신비로운 물의 나라다. 특히 ‘하늘못(天潢)’이라고도 불렸던 황지에서 발원해 남해로 흘러들기까지 1300리 물길, 낙동강은 여기서 아주 작고도 소박한 물줄기로 시작해 경상도 땅 내륙 깊숙한 곳을 적시며 비로소 큰 이름을 얻는다.
승부역은 황산선 눈꽃열차가 정차하는 오지역으로 이름나면서 승부리와 더불어 세간에 알려졌다. 이 일대 낙동강 상류 따라서 걷는 길 또한 바위절벽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승부역에서 양원역에 이르는 철길 5㎞ 구간은 자동차도로는 물론이고 사람 다니는 길조차 이어지지 않는 곳이다. 승천을 준비하는 신비로운 이무기처럼 오로지 낙동강만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은밀하게 흐를 뿐이다.

하늘 못에서 솟은 물은 산을 뚫고
태백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황지에서 솟아나는 물은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히 흘러가게 된다. 연못의 둘레가 100m인 황지는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하루 5000톤의 물이 솟는다.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됐다 해 황지(黃地)라고 부르는데 훨씬 이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도 전한다.
황지에서 태어난 낙동강의 물줄기는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면 큰 석문을 만들고 깊은 늪을 이루었는데 이를 구문소라 한다. 구문소 주위는 모두 석회암반으로 이뤄져 있으며 높이 20~30m, 너비 30m 정도로 동양최대 규모인 환선굴 입구보다 몇 배나 크다. 약 1억 6000만 년에서 3억 년 전 사이에 형성돼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어려운 기이한 곳이다. 주변 일대는 낙락장송,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현제 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바위, 용천 등으로 불리는 구문팔경 등이 있으며 특히 구문소 일대의 천변 4㎞ 구간은 우리나라 하부고생대의 표준 층서를 보여주는 지질시대별 암상을 비교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포근함을 담아내는 길
구문소에서 잠시 몸을 기대 쉰 낙동강은 강원도보다 더 오지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동선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의 14㎞ 구간은 철도·도로와 함께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 구간이 바로 낙동강원류길 중 백미, ‘승부역 가는 길’이다.
길 따라 이어지는 풍경은 태고의 비경을 머금고 있고, 그 풍경 속 백로와 왜가리의 날갯짓은 낙동강의 물결과 같이 한다.
승부역 가는 길은 귤현교를 건너면 승부역까지 강을 사이에 두고 철도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강줄기를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길은 짐승도 사람도 잠시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깊은 사색에 잠긴다. 햇빛이 강물의 물결에 출렁이고 물결이 바람을 달래며 넘실대는 풍경은 기억을 거르고 현실을 다듬으며 미래를 닦아주는 듯하다.
석포역부터 좁은 협곡을 걸어오던 길은 승부리에서 처음 마을을 만난다. 대여섯 채 남짓한 작은 마을 승부리. 승부리는 태백산 자락인 비룡산과 오미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아직도 나무로 군불을 때고 밥을 짓는 오지인 이 마을은 강 건너 학교마을 주민까지 17가구에 30면 남짓한 사람이 돈독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낙동강원류길은 승부역에서 걸음을 멈춘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의 4㎞ 구간은 기차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유일한 곳이다. 철길을 따라 펼쳐지는 낙동강 상류의 풍경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여행의 목적은 가슴속에 있다. 자유, 그리움, 추억 그리고 옅은 미소. 각자 가슴에 담아가는 여행의 뒷자락은 추억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아쉬움에 붙잡고도 싶다. 낙동강과 함께 걷고 달렸던 낙동강원류길과 승부역 가는 길은 가슴 깊숙한 곳에 포근함을 한껏 들이마시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