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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관광 l 중국 네이멍구자치구②

칭기즈칸의 얼이 살아 숨 쉬는 內蒙古의 속살을 보다
티베트식 불교사원 우당자오 탐방, 웨이신골프휴양지 체험

글·사진 ㅣ 전병열 기자  / 2010-10-08 09:23:10

대초원의 여명은 선선했다. 한낮의 불볕더위에 타들어가던 풀들이 다시 생기를 얻어 초원을 파랗게 물들였다. 일교차가 심해 밤에는 초가을 날씨를 보이기 때문이다. 파오에서는 구름에 가려 일출의 경관을 보지 못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다고 했는데 그 곳까지 안내하기로 한 내몽고 여유국장이 사정이 생겨 계획이 무산됐다. 광활한 초지에는 군데군데 말과 양떼가 보이기도 했으며 파오 바로 앞에서는 낙타들이 싱싱한 풀잎을 뜯어먹으면서 노니는 광경이 무척 평화로웠다. 모기와 벌 등이 많다며 약을 준비하라는 통지를 받고 사전 준비를 했지만 예상 외로 숙소에는 모기가 없었다.

전통차와 빵, 만두 등 몽골식으로 아침을 먹고 8시경에 바오토우(包頭)로 출발했다. 내몽고 최대 장전불교당인 우당자오(五當召)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내몽고 중심도시 중 한 곳인 바오토우는 몽골어로 ‘사슴이 사는 곳’이란 뜻으로 도시 주변은 넓은 초원으로 형성돼 있다. 어느날 칭기즈칸이 사슴사냥을 했는데 사슴이 나무 밑에서 사라져 나무를 팠지만 사슴은 없고 나무뿌리가 사슴처럼 생겨 바오토우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바오토우로 가는 연도에는 대초원의 대지가 펼쳐져 있었지만 뙤약볕에 풀들이 푸석푸석 말라가고 있었다. 간혹 푸른 농지가 보였는데 여기는 농부들이 물을 계속 공급해주면서 귀리나 유채, 감자 등 밭작물을 경작하고 있는 곳이란다. 이곳에는 양봉을 위한 벌통들이 즐비했다. 도로변에 간간이 보이는 농가는 토굴을 방불케 할 정도로 흙으로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다. 언덕 아래 지어진 주택은 흙벽을 쌓고 흙을 섞어 지붕을 이었으며 담장은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다. 언덕에는 곳곳에 토굴을 파서 더위를 피하고 농산물을 저장한다. 몽골 역시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없다고 한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기 위해 도회지로 모두 떠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촌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다.

바오토우를 가다
거건타라 초원에서 4시간 넘게 이동해야 우당자오에 도착한다고 한다. 김동환 가이드(조선족 3세)의 몽골 야사를 들으면서 창밖에 펼쳐지는 전경을 감상하며 지루함을 달래야 했다. 몽골의 농촌 변화도 우리와 같이 흙집에서 시멘트집으로, 아파트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초원이 이어지는 이곳은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방치된 폐가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산들은 전부 민둥산이며 간혹 한 그루의 푸른 나무가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90m가  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강우량이 적고 작열하는 태양에 식물이 견디지 못해 대청산(大靑山)이 대광산(大光山)으로 불린다고 한다. 식목을 해서 가꿀 수도 있겠지만 이곳까지 미칠 그만한 여력이 없다. 도회지 주변에는 초원의 사막화를 방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식목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행정기관이나 교육기관이 너무 멀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이 없어 거의 이용을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를 소유한 젊은이들이나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정도란다.

가이드의 왕소군에 대한 야사가 들려왔다. 기원전 33년 한나라 원제 때 궁녀로서 흉노족 수령 ‘호한사선우’에게 시집을 가면서 화친을 맺어 60여 년간 우호관계를 지속시킨 명비(明妃) 왕소군의 능이 몽골 따헤이(大黑)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묘는 인공으로 축조한 흙무덤으로 높이가 33m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황실에는 궁녀들의 초상화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가 있었는데 궁녀들은 예쁘게 그려달라며 화가에게 뇌물을 주었지만 왕소군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가진 화가는 왕소군의 초상화에 보기 흉한 점을 그려 넣어 황제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게 했다. 황제는 흉노족과의 화평을 맺기 위해 왕소군을 여동생이라 속이고 시집을 보내 버린다. 그전에 황제는 왕소군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식사를 함께하면서 왕소군의 본 얼굴을 보게 되고 초상화와 너무나 다른 어여쁜 용모에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화가의 초상화에 속아 화가 난 황제는 그 화가를 죽였다는 것이다. 왕소군은 흉노족에게 방직기술과 논농사를 가르치면서 화친을 도모해 후세에 길이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됐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번 답사에는 왕소군능이 빠져있어 둘러보지 못했다.
중국관광은 가이드들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를 유발시킨다. 홍보물에 빠져있는 내용들도 가이드들의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고증이 없는 내용들이기에 가이드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돼 전해진다. 왕소군에 얽힌 전설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몽골 티베트불교사원 우당자오 탐방
바오토우시 북서쪽 인산(陰山)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우당자오(五當召)는 주변이 온통 풀 한 점 없는 민둥산이다. 깊은 골짜기에는 푸른 농지가 보인다. 지하수를 공급해서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간혹 산등선에 보이는 나무가 신기할 정도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의 황량한 산세와 비교해 더욱 푸르게 보인다. 황무지가 돼 버린 메마른 산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금수강산이 더욱 자랑스러워 새삼 감회가 솟구친다. 대초원을 끼고 있어 녹색광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무색했다. 인위적인 농지를 제외하고 그 어디에도 생태 자연녹지는 보이지 않는다.
우당자오가 위치한 곳에 들어서자 큰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게 조성돼 있었다. 우당자오는 내몽골 자치구에 남아있는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중국 32대 라마사원 중 하나이다. 청대 강희제 때(1662~1723년) 티베트의 자스룬부사를 모방하여 산세에 따라 건조하였으며, 그 규모가 방대해 6전(殿), 3부(府), 1당(堂)과 94동(棟)의 라마숙소가 있다. 우당자오 경내에는 각종 재료로 주조한 1500여기의 불상이 있으며 대형 벽화에는 역사 인물, 풍속, 신화, 산수화조들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소수민족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1200여 명의 승려가 불교 이론을 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오당소’라는 것은 원래 티베트어로 ‘하얀 연꽃’을 뜻하며 몽골어로는 ‘버드나무’를 뜻한다. 티베트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고, 1749년에 중건되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보전하고 있다. 이곳의 박물관에는 몽골인들의 역사와 전통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생활도구와 장식용품, 전통악기와 의상, 무기류 등이 전시돼 있다.
우당자오 주차장 앞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간이식당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우리 일행들은 바오토우시 여유국 초청으로 몽골파오로 건립된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몽골 식단은 어디를 가나 양고기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특유의 냄새가 나질 않는다. 몽골만의 조리 비법이 있다고 한다. 양고기는 1년생이 가장 맛있으며 식용으로 기른다고 한다. 지역이나 초원의 여건에 따라 맛이 다르단다.
바오토우시 여유국 부국장으로부터 우당자오에 대한 소개를 듣고 우당자오를 탐방했다. 우당자오는 한 마을로 이뤄진 것처럼 그 규모가 컸다. 라마교는 칭기즈칸 시대에 전파됐다고 한다. 청나라 만족들은 아들 2명 중 1명을 의무적으로 라마교에 보냈다고 하며 혜택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라마교사원의 위상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란다.
유료 입장으로 라마승이 입구에서 입장권을 받고 있었다. 건축물은 웅장했으며 다양한 불상과 초상화를 모신 불당들이 즐비했다. 광각사(廣覺寺)라는 몽골어와 티베트어를 병기해 새긴 간판이 걸린 불당이 보였다. 우당자오가 원래는 광각사로 불렸다고 전한다. 불당 앞에 서 있는 큰 코끼리 조각상에는 특이하게 생긴 동물들이 타고 있었다. 조각상과 큰 당산 나무에는 소원을 비는 하다(비단천)들이 널려있었다. 몽골족들은 자연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인지 샤머니즘적인 생화풍습이 전래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여러 모습의 불상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당시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라마승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우호적인 미소를 주고받았다. 우당자오 입구에는 몽골파오가 늘어서 관광객들의 숙소로 이용되는가 보다. 오당소반점(五當召飯店)이란 간판이 몽골파오에 몽골어를 병기해 걸려있다. 몽고의 간판에는 반드시 중국어와 몽골어가 병기(竝記)돼 있는 게 특색이다. 법으로 규정돼 있다고 한다.
감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정교한 조각과 웅장한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이를 관광자원화해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것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국의 관광산업 정책은 관광대국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광산업 개발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음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웨이신 골프휴양지 체험 답사
몽골 장전불교당인 우당자오 탐방을 마치고 내몽고 우라터(烏拉特)전기 빠인화(巴音花)진에  위치한 웨이신(維信)국제골프휴양지로 향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1박을 하며 골프체험을 한다. 이곳은 내몽고에서 처음으로 건립한 대형 종합골프휴양지다. 국제표준 골프장과 66개의  고급별장, 실내외 수영장, 온천목욕센터, 헬스클럽, 노래주점, 식당, 회의실 등이 구비돼 있는 18홀 규모다.(연락처 : 0478-362-2888)
객실이 2개인 콘도형 숙소에 김종원 박사(공학)와 함께 배정됐다. 김 박사는 중국 팸투어에서 종종 함께하는 친숙한 사이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카트로 골프장을 탐방했다. 해발 1000m에 위치한 웨이신골프장은 전장 7128야드의 링크스 타입으로 업다운이 거의 없으며 나무한그루 없이 벙크와 코스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긴장감을 준 것이 특징이다. 골프장 내에 넓은 호수를 만들어 시원함을 주고 있다. 한국의 골퍼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연습장에 들러 몽골에서 처음으로 샷을 날려봤다.
저녁 만찬에는 이곳 골프장 임원들과 지역 여유국 담당자들이 참석해 분위기를 돋웠다. 몽골인들의 손님접대 문화는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로 감명을 준다. 내일 새벽 5시에 골프체험 라운딩이 예약돼 있어 김 박사와 먼저 숙소로 향했다.
새벽 5시에 ‘티업’이므로 4시 30분경부터 서둘러 준비해서 클럽하우스로 나갔다. 아직 라운딩 하기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무런 사전 준비기 안됐기 때문에 ‘골프용품점 직원을 불러 장갑과 티, 골프공 등을 구입해야 했다. 골프용품과 ‘캐디피’만 개인이 부담키로 해 캐디피 100위안을 포함해 모두 170위안을 지불했다. 골프장에서 골프백을 빌려 필드로 나갔다. 사전에 계획된 체험행사가 아니라서 준비가 제대로 되질 못했다. 하지만 몽골의 아침 공기가 상쾌해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로 아침날씨는 시원하고 쾌청했다.  
필드는 평지나 다름없었지만 그린 주변에 벙커가 조성돼 있어 긴장감을 더했다. 일행 중 4명이 라운딩을 하기로 계획했으나 한 명이 불참해 3명이 소위 ‘황제골프’를 했다. 골퍼들이 별로 없어 한산한 가운데 한국에서 온 골퍼들이 라운딩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국에는 캐디가 각 한 명씩 배정된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버디’를 하는 행운도 즐기면서 골프장을 답사했다. 일정에 쫓겨 아쉽지만 9홀을 라운딩하고 일행에 합류해 아침 식사를 마쳤다. 아침 8시에 사막 체험을 위해 샹샤완(響沙灣)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11월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