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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보본의 정신 계승하는 추석이 되길

글 |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10-09-02 15:24:38

오는 22일은 풍요로움의 대명사가 된 한가위, 추석이다.
그리운 고향산천, 꿈에 그리던 부모형제, 아련한 추억에 담긴 친구들... 이들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선물꾸러미를 안고 만원 열차를 비집고 탄다. 그동안 힘겨운 객지생활의 서러움이 복받쳤고 그리움에 사무쳐 밤새 뜬눈으로 지세우기도 했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고향인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 부모형제였던가. 손꼽아 이날을 기다려 왔다. 객지생활은 설·추석 명절이 아니고는 갈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가슴 뭉클한 감회가 밀려온다. 누렇게 익은 호박이 뒹굴고, 발갛게 익어 살며시 알몸을 들어낸 감나무 위로 고추잠자리가 춤추며 반기는 정겨운 풍경이 눈에 선하다. 마음은 벌써 동네 어귀에 들어선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며 감격적인 가족 상봉이 그려진다. 세파에 지친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에 기를 쓰고 달려온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이 산업화·도시화의 변화 속에 대부분 객지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얘기다.

이들이 부모가 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명절 때마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고 4~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고향이 8~10시간이 걸린다. 웬만하면 포기하고 되돌아 갈 텐데 향수에 젖은 마음은 오직 고향 가는 길만 재촉할 뿐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세대나 도시에서만 생활한 젊은이들의 눈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푸념이 나온다. 또한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나선 젊은이들은 속으로 불만이 가득하다. 특히 타향살이를 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귀성전쟁’이 별천지의 풍경이다. 이들에게는 추석 명절이 그냥 황금연휴일 뿐이다.

추석은 고대사회의 풍농제(豊農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한가위 풍속은 달을 숭배하는 제의에서 시작돼 농경민족의 최대 소원이 풍작이었음으로 한가위를 맞아 이에 감사하고 명년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유교시대에 들어오면서 조상을 숭배하는 의식으로 전승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날은 생활 터전을 찾아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조상의 제사에 동참함으로써 혈연의 정을 나누고 친족 간 화목을 돈독히 하며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실천 계기가 됐다. 우리가 추석에 귀성하는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효(孝)는 인간의 기본 도리로 명절을 맞이해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제사를 정성껏 올림으로써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노력이다. 이는 곧 추원보본의 정신이며, 명절을 기해 그 정신을 되새기고 길이 이어가자는 것이다.

현대의 산업사회가 이산가족을 만들었지만 추석과 같은 명절이 분산된 가족을 함께 모으는 계기가 되고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풍양속이 되고 있는 명절에 귀성전쟁을 치르면서도 고향을 찾아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친족들에게 선물도 하며, 빚을 내서라도 제수를 마련하려는 것은 추원보본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함일 것이다.

앞으로는 전통적인 추석 본래의 의미대로 명절이 이어지길 바라는 세대와 현대적인 의미로 재정립을 해야 한다는 세대로 점차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추석이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명절로 계승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행태가 변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자정이 돼서 제사를 지내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익일 출근하는 자녀들을 위해 초저녁에 제사를 모시는 가정도 있다. 명절제사도 형편에 따라 해외에서 모시기도 하고 콘도나 호텔에서 모시기도 한다. 또한 제수를 만들어주는 기업과 성묘를 대행하는 기업이 성행하고, 심지어 제사까지도 대신 지내주는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전통 제례예법이 점차 현대인의 생활 위주로 변모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추원보본의 전통과 정신만은 길이 이어져야 한다. 편의에 따라 변화하다 보면 그 정신마저도 망각·왜곡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버릴 건 버리더라도 꼭 간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만은 지속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는 속담처럼 그 즐거움과 행복이 일상에도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