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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숨겨진 보석을 찾아서

가깝고도 먼 미지의 ‘울산 투어’

이주형 기자 (ljy2007@newsone.co.kr)  / 2010-06-30 11:11:01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마니아들조차 울산은 가깝고도 먼 도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산하면 그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로고만 머릿속에 뱅글뱅글 맴돌 뿐, 여행과는 도무지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울산 주변에는 경주나 밀양, 부산과 같이 국내 여행의 순례지로 손꼽히는 도시가 둘러싼 탓에 미처 울산 여행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러한 겉핥기식의 선입견이라면 이제 그만 털어내자. 울산 구석구석 숨겨진 보석 같은 세계가 우리를 향해 유혹의 손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고래를 찾아 떠나다
울산시청을 출발한 지 20여 분. 살며시 내린 차창 너머로 짭짜름한 바람이 훅하고 밀려온다. 바다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이처럼 시각이 아닌 후각이 먼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바다 내음에 긴 여정으로 쌓인 긴장마저 사르르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가장 먼저 도착한 장소는 과거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이자, 현재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된 장생포해양공원. 여기에는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이 나란히 둥지를 틀고 있다.

지난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는 전 세계적으로 고래의 개체 수가 급감하자 상업적 포경(捕鯨·고래잡이)을 사실상 금지했다. 이후 사라져가는 포경유물을 보존·전시하고자 지난 2005년 고래박물관이 처음 개관돼 고래도시 울산의 역사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된 고래박물관은 포경역사관과 귀신고래관, 어린이체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797점의 다양한 유물을 전시해 포경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고래 두골 형상과 실물 골격을 비롯해 고래잡이에 사용한 도구, 장생포에 있던 고래 해체장 등을 테마별로 전시해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체험관도 마련했다. 고래 프로타주 체험과 골격 만져보기, 입체 자석 퍼즐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체험공간을 조성해 고래에 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들 때 즈음, 고래박물관을 빠져나와 고래생태체험관으로 향했다. 체험관 안으로 들어서자 해저터널과 고래수족관, 4D 영상관 등 다양한 이색 체험공간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서도 터널형의 대형 수족관을 헤엄치는 돌고래 세 마리를 쫓아 시선은 단번에 멈추고 만다. 바로 장꽃분(11살)과 고아롱(8), 고다롱(6)이다. 이들 돌고래는 지난해 울산 남구청으로부터 각각 이름을 받고 주민등록증까지 발부받은 당당한 울산시민이다. 동물시민과의 생각지도 못한 유쾌한 만남에 입가에서도 자연스러운 미소가 슬며시 번졌다.

하지만 무언가 모르게 밀려드는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드넓은 동해를 호령하는 고래를 직접 보고 싶다면 장생포항에서 출발하는 ‘고래바다여행선’에 승선하자. 희귀종 귀신고래가 자주 출몰한다는 ‘울산귀신고래휘유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을 비롯해 울산 연안을 샅샅이 탐사하는 동안 바다를 차고 오르는 위엄찬 고래의 모습을 눈앞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장생포 고래고기
울산에 와서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은 바로 고래 고기. 고래는 콜레스테롤이 전혀 없는 고단백 식품이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다. 또한 바다 생물이지만 포유류에 속하는 만큼 고래 고기의 맛과 육질은 육류에 가깝다. 주로 생고기, 오베기, 우내, 육회 등의 요리가 있으며, 부위별로 모두 12가지 맛이 난다고 한다.

이국적 낭만이 넘치는 간절곶
장생포항을 벗어난 차량은 금세 31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바다를 곁에 두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멀리서 순백의 새하얀 등대가 간절곶에 당도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한적한 평일 오후이지만, 일찍부터 찾아든 무더위에 간절곶 어귀는 거북이 차량들의 행렬로 때 아닌 진통을 겪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에메랄드빛 바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바다 앞에만 서면 순진무구한 아이가 되고 만다. 간절곶을 찾은 관광객들도 마치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여기저기서 잇따라 환호성을 쏟아냈다. 슬그머니 사람들의 틈바귀를 파고든 기자도 푸른 동해의 비경을 가만히 카메라에 담아본다.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간절곶.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이곳이 특별하다 여긴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이다. 우선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선정된 간절곶 등대는 이국적 낭만이 묻어나는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 등대 주변에는 흐드러지게 핀 들꽃과 울창하지는 않지만 꼬불꼬불한 모양의 소나무 숲이 무척 정겹다. 게다가 등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대충 카메라 셔터만 눌러도 나만의 특별한 화보가 만들어진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소망우체통’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빨간 우체통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소망을 담은 엽서를 무료로 배달할 수 있다. 가끔 하늘나라로 떠난 가족이나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엽서들이 집배원 아저씨의 마음을 애잔하게 적신다고 한다.

‘옹기마을, 흙으로 혼을 빚는다!’
매번 아이들 손에 이끌려 테마파크나 놀이동산을 찾던 부모라면 이번 울산 여행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국내 최대의 전통민속 옹기마을인 ‘외고산옹기마을’이다. 이곳 마을은 옹기문화관과 옹기아카데미, 옹기문화공원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전통옹기 제작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거나, 온 가족이 함께 옹기 만들기에 참여하는 기회도 제공한다.

외고산옹기마을을 방문하기에 앞서 마을의 내력을 알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를 배가하는 요인. 외고산옹기마을의 역사는 지난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허덕만 옹기장이 이곳에서 가마를 만들어 옹기를 굽기 시작하면서부터 옹기촌이 형성됐는데, 한때 전국에서 몰려온 장인과 도공 350명이 함께 거주하며 생산된 옹기를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의 거센 물결로 인해 차츰 옹기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었고, 지금은 128가구 가운데 40여 가구가 오순도순 힘을 모아 전통 옹기 제작에 구슬땀을 쏟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외고산옹기마을은 지붕 없는 커다란 박물관과 같다. 마을 어디를 가든 옛 선조들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온다. 특히 여기저기 놓인 옹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양지바른 뒤뜰에 놓인 옹기를 정성스레 닦고 또 닦던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

그래서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들은 손 때 묻은 옹기 하나도 그냥 스쳐 지나치지 못한 채, 잠시 눈시울을 붉히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