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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우리말 바르게 쓰기 공공부문에서 먼저 시작해야

이정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 2010-05-04 16:53:51

우리나라 거리의 간판들엔 우리말, 한자, 영어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심지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섞어 놓은 것도 있다. 텔레비전 토론에 출연하는 전문가나 지식인들도 말끝마다 영어단어를 쓴다. 유행가에도 온통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가사뿐이다. 우리말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잊혀져간다. 쓰이지 않는 언어는 소멸된다. 우리의 말과 글은 점점 위기에 빠지고 있다.

한편에선 ‘한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세종학당을 만들고 한글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한글은 이른바 ‘국격’을 높이는 국가브랜드이자 우수한 민족문화로 추앙받는다. 그런데 ‘한글 세계화’라는 허울 좋은 구호 속에는 정작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그 고민은 한글을 쓰는 우리 자신의 반성과 성찰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우리말을 얼마나 사랑하고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지키고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우리말을 꾸준히 다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말 다듬기는 외래어, 외국어, 일본어투의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말 다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외래어나 외국어의 남용이다. 이는 부족한 우리말의 어휘를 늘려주거나 보완해 주기도 하고, 발달된 외국 문화를 우리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래어와 외국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불러오기도 하며 우리말의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다. 외래어나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쓰는 일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쓰는 행정·정책 용어가 어려운 외국어나 외래어로 도배돼 있다는 게 문제다. 어려운 한자어가 실은 더 많다. 꾸준히 순화를 해 왔지만 불필요한 말이 많이 남아 있다. 외국의 용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책이란 국민이 이해하고 호응을 해야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정책용어의 어려움으로 인해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의 장애가 누적될수록 국민들의 정책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려운 말 때문에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이 일반화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2002년 ‘외래어순화위원회’가 설치되어, 2006년 176개 항목에 대한 순화어를 제시하는 등 쉬운 용어쓰기 사업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1996년 총리 직속기관으로 프랑스어의 풍부화를 위한 ‘전문용어 및 신어 총위원회’를 설치했다. 외국어의 유입이 심한 경제활동, 과학연구, 기술활동, 법률활동 분야 등에서 쉬운 소통이 요구되는 표현을 프랑스어로 정비했으며, 관보에 제시된 용어는 모든 관공서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영국은 쉬운 영어쓰기 운동을 통해 5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절감했다. 어려운 정책용어를 설명하기 위한 홍보비용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미국 애리조나 국세청은 행정서식을 알기 쉽게 변경함으로써 약 3만 건의 민원을 추가로 처리할 수 있었다. 어려운 용어를 문의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감소해 담당공무원의 업무가능시간이 증가됐기 때문이다. 쉬운 언어사용을 통해서 효율적인 행정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공공언어개선을 위한 외국의 노력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언어 사용실태를 개선하는 실질적인 업무는 국어책임관이 담당한다. 각 부처별, 각 지자체별로 국어책임관을 두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어에 관한 전문인력이 아니고 주된 직무와 겸해서 국어책임관을 맡고 있어 그 활동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책임관을 운영하는 중앙부처와 지자체 비율도 약 30~40%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국어기본법」상 국어 전반에 관한 문제를 심의하는 국어심의회 역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순화하는 일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어심의회 국어순화분과에서도 공공언어개선과 관련한 안건을 주제로 회의가 열린 적은 2009년 단 한차례뿐이었다. 공공언어개선에 대한 문광부의 정책적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행정의 효율성 확보는 물론 나아가 언어의 공공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공공기관의 행정·정책 용어를 정비하는 일은 시급하다. 우선 중장기적으로 ‘공공기관의 쉬운 우리말 쓰기’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 국어심의회를 활성화하고 국어책임관을 전문인력화 함으로써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을 지속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공공언어 관련 민관 및 공공기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교육강좌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추진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글은 한자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만들어졌다. 세종대왕은 언어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소통’에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한글창제 후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말은 각종 외국어, 정체불명의 인터넷 용어 등과 어울려 ‘불통’하고 있다.
특히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기관의 공공언어가 국민들과의 소통에 무관심하다.

외국의 쉬운 용어쓰기는 공문서를 대상으로 경제, 교육 등 전 분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확산효과를 고려했을 때, 정부 공문서를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쉽고 편리한 언어사용을 통해 사회적 의사소통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고 사회통합을 위해 소모되는 비용 또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정현(李貞鉉) 국회의원은   
?광주 살레시오고·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나라당 부대변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담당관(‘93) 한나라당 16대 대선 전략기획단장, 한나라당 과학기술정보통신 전문위원,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특위 총간사위원,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지원특별위원회 역임
?現 18대 국회의원(비례대표)
?現 (사)한국연예예술인협회 고문
?現 (사)한중문화협회 고문
?現 5.18 민주화운동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