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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위해

류웅재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2010-04-05 10:59:39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금언은 원래 슈마허(E. F. Schumacher)라는 영국 경제학자의 동명의 책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바로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즉 ‘인간 중심의 생산양식과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량 생산에 의한 대량 소비 사회로의 진입, 생산성 향상을 염두에 둔 투자의 조직화와 거대 규모화, 이로 인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생산과 부의 현격한 격차, 자원 고갈과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 욕망의 무한 확장 등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대신 책은 인간 중심의 생산과 기술을 내세우며 자본 집약적이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량 생산 대신 저렴하고 누구나 활용 가능하며 친환경적인 사람에 의한 생산을 주창한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사회에서 점증하고 있는 생태(ecology)에 대한 관심과 부합하고 인간을 기술의 도구가 아닌 인간을 위한 기술을 추구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이는 경제학에 있어 대안적 생산양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문화, 국가적 차원의 문화관광정책이나 기업의 메세나 전략의 수립, 나아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개개인의 일상과 삶의 양식에도 적용되고 고려되어야 할 시대적 패러다임이 아닐까 한다.

지자체의 문화정책 및 산업 관련 일을 하며 만나는 공무원이나 행정가, 실무자들 중 상당수는 20년, 아니 10년 후의 장기 정책에 대해 말하기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대신 올 해, 늦어도 2~3년 후에는 어떤 구체적이고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사업과 아이템에 더 직접적인 관심을 갖는다. 이를 두고 개별 부처나 담당자를 탓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과거 고속도로나 공장을 최대한 빨리 완공하는 것을 치적으로 여기던 정부의 성과 위주의 관행과 업적주의는 오늘날 문화정책과 행정에도 온전히 전이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건국가의 멘탈리티(mentality)라 할 만한 이러한 조급증과 쏠림현상은, 그러나 문화콘텐츠와 관광산업, 지속가능한 한류, 막걸리나 한식의 세계화 등을 기획할 때에 유사하게 적용되기에는 매우 이질적이며 또 비효율적인 것이다.

비록 문화관광산업이 건설과 조선, 자동차를 대체할 차세대 국가 기간산업, 국부와 먹을거리의 원천이라 할지라도, 매력콘텐츠로서 문화와 관광에 접근하는 태도는 사뭇 달라야 한다. 이는 문화상품이 쓰고 버려지는 소비재가 아니라 향유자의 성정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바로 사람의 마음에 관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MICE산업, 의료 관광, 크루즈 관광, 대규모 테마파크와 스튜디오, 고부가가치 융·복합 관광단지,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운 영화제와 비엔날레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축제들은 현재 정부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화관광 관련 사업들과 이의 향후 비전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단어들이다. 물론 이러한 거대 규모의 사업과 인프라 구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관광산업의 성패는 서울이나 뉴욕, 시드니나 두바이, 홍콩이나 도쿄 등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비슷비슷한 테마파크와 스튜디오, 거대한 쇼핑몰과 호텔 등에 달려있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날 문화관광산업으로 크게 성공한 국가와 도시, 지역을 보면, 이러한 거대 인프라와 볼거리의 스펙터클(spectacle)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소담한 지역문화와 특색 있는 자연, 음식과 문화유산, 무엇보다 그 곳에서 오래 살고 즐기며 향유하는 정주민 위주의 그것이 잘 어우러지고 어떤 계기를 통해 강력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오늘날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정착된, 퍽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이다.

이제 지역의 지역성과 역사성을 간과하거나 심지어 지워버리는 거대 기획과 건설에 무리한 힘과 자원을 소비하는 것을 문화정책과 동일시하는 시각에 대해 냉정하게 성찰해야 할 때이다. 지역의 다기한 삶의 방식과 무수한 이야기들,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일상과 애환을 말하기(story-telling)하는 방식에 의한 ‘작고 아름다운’ 문화를 기획하는데 고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