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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인가

글 |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09-11-04 14:23:30

“언제까지 이런 국정감사를 지켜봐야 하는가. 도대체 국정감사를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국정감사인가.” 지난 24일 국정감사가 끝나자 다수 양식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국정감사 도입 이후 22년째 반복되는 행태에 오히려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고도 했다.

‘그들만의 잔치’로 끝난 국정감사를 놓고 여야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다. 한나라당 신성범 원내대변인은 “이번 국감을 민생·정책국감으로 치르겠다고 국민께 약속하고 모범적인 국감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국정운영 과정에 드러난 문제점 등을 과감하게 짚어내며 민생과 주요 현안에 대해 생산적인 정책 질의 등으로 대안과 비전을 제시했다”고 자평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도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다”며 “이번 국감의 목표를 민생·정책 대안국감으로 설정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여야 모두가 민생국감·정책국감을 내세우고 있었지만 실상은 당리당략과 지역 이기주의, 한 건 주의 ‘포퓰리즘’으로 얼룩지고만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09년 국회 국정감사 평가’ 에서 “올해 국감에 대해 전체적인 느낌은 한마디로 행정부 변호에 급급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이 빚어낸 ‘무기력한 국감’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언론관계법에 따른 여야 갈등으로 인한 준비기간 부족과 10·28 보궐선거로 인해 참여와 집중도 결여, 피감기관의 자료제출 거부와 불성실한 답변이 겹친 ‘알맹이 없는 감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짧은 기간에 수많은 피감기관을 다뤄야 하는 한계로 인해 ‘겉핥기식’ 국감이었다고 비판했다.

‘맹탕국감’, ‘정쟁국감’이라는 비판 속에 급기야 ‘국감 무용론’이 제기되는 등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에 허탈할 뿐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모은 이슈는 4대강 사업의 부적절성과 세종시 원안수정 논란, 효성그룹 비자금수사 축소 의혹, 정운찬 총리 검증 논란 등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10·28 재보선의 ‘잿밥’에 눈먼 여야 지도부는 국정감사가 뒷전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국감에 임한 상임위원들은 고질적인 고압자세와 호통으로 피감공무원들을 윽박지르거나 피감기관장을 두둔하는데 급급했으며, 조폭을 연상케 하는 막말 등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무참하게 했다.

특히, 피감기관의 태도는 국정감사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의원에게 “잘못된 사례 하나가 개밥의 도토리처럼 발생했다”며 “말단 실무자가 저지른 실수를 장관과 연결시키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이라고 답해 정회 소동이 벌어졌는가 하면, 문제점을 지적당하자 “우리 공사는 신이 버린 직장.. 사장 한번 해봐라, ...담당자가 답변하면 될 것 아니냐”며 오만하게 응수하고, 의원 보좌진의 자료보완 요구에 “너무 파헤치면 다칠 수 있다”고 협박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국감을 실감케 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료제출 거부에다 6개월 전에 요구한 자료를 국감 당일 30분 전에 A4용지 16개 박스 분량을 제출해 국감 무력화 시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주말과 휴일을 빼면 15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487개 피감기관을 일제히 감사한다는 것은 ‘벼락치기’로 밖에 할 수가 더 있었겠는가. 그러다보니 문제만 노출되고 해결책이 없는 용두사미 국정감사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감에서 폭로되는 의혹들은 공방과 변명으로 변죽만 올려 오히려 국민들의 울분만 자극할 뿐이다.

더 이상 이런 무의미한 국정감사가 돼선 안 된다. 각계에서 ‘상시국감체제’ 도입, ‘자료제출법제화’, ‘국감사후검증제도’ 시행 등 좋은 방안들을 제안하고 있지 않는가. 현행 국감의 문제점에 대해 여야가 공감하고 있으면서 왜 이를 수용하고 실행치 못할까. 민생을 위한 정책 감사가 되지 못한다면 국정감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국정감사 결과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법률로 명문화해야 한다.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정감사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국정감사 무용론이 거론되지 않도록 국회가 심기일전해 주길 기대해 본다. 또한 금번 국감에서 불거진 의혹들은 국민통합을 위해 명백히 밝혀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