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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는 차세대의 반면교사

글 |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09-10-05 17:38:57

고위공직자 개각 때마다 한 편의 수사드라마가 펼쳐진다. 국회 인사청문회장이 그 무대다. 야당의원들의 ‘흠집내기’ 질문 공세와 여당의원들의 ‘감싸주기’ 변론이 공방을 펼치는 가운데 주인공인 후보자는 모르쇠로 여유롭게 응수한다.

이를 관람하는 국민들은 “어찌 저럴 수가!”를 연발하며 분통을 터뜨리다 못해 아예 채널을 돌려버린다. 이번 9·3 개각 역시 같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좀 더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을 거라 기대한 건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였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된 서울대학교 총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신임장관 6명과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역시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위장전입·세금탈루·부동산투기·학력위조·논문표절·징집면제 등의 의혹이 줄줄이 불거져 나왔다. 김태영 국방장관만이 각종 의혹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그가 희귀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그동안 인사청문회 대상자 대부분이 이 같은 위법투성이였던 게 사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사과성 발언’으로 이를 모면하려 했다. 이에 임면권자인 청와대도 ‘직무수행에 결격 사유는 아니다’며 ‘면죄부’를 주고 대부분 임명했다. 이번 인사청문회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정략적인 ‘흠집내기’로 규정하고 ‘당시의 관행’ 또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며 자위한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하나마나한 청문회’라며 ‘청문회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검증 결과가 정권에 따라 달리 적용되거나 자질이나 능력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치우치면서 흠집내기로 정치적 공방만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9년 전 인사청문회에서 장상 민주당 최고 의원이 위장전입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반면 금번 정운찬 총리후보는 같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국회 표결로 통과되자 ‘2중 잣대’라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도덕성이 요구되는 인간적 자질문제는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더러 청문회 결과에 대한 구속력도 없다 보니 정권이나 시대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밖에 없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장전입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주민등록법 37조에 따르면 위법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위장전입을 묵인한다면 이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 범죄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위장전입은 국가의 법·행정질서를 문란케 하며, 특히 평준화를 위한 교육제도가 무너지고, 부동산 투기꾼들이 창궐할 것이다. 또한 부정선거의 단초가 되고, 선거구 확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산출에도 막대한 지장이 초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 무용론이나 축소는 천만부당하다. 청문회는 당사자의 명예훼손이나 인격모욕 등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범법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반면교사로서의 기능 등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다. 또한 고위 공직 예정자의 도덕성이나 능력을 공개적으로 검증함으로써 신뢰가 구축되고 사회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고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직사회를 미리 답습함으로써 차세대는 투명하고 건강한 공권력이 형성될 것이다. 이는 국가의 크나큰 성장 동력이다. 불법한 자가 고위직에서 군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문회를 더 확대해야 한다. 청문회 결과 불법·부정한 사실이 탄로난 후보자는 자진사퇴하거나 지명철회, 국회인준 거부 등으로 퇴출해야 한다. 만약에 이를 무시하고 임명을 받는다면 직무 수행에 내·외적으로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적 불행으로 갈등의 소지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바와 같이 청문회 법을 개선해야 한다. 부적격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후보자의 위증이나 증빙서류 제출 거부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구속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청문위원도 자질 검증을 거쳐 선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당리당략적이거나 이기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고압자세로 국민을 낯 뜨겁게 하는 의원들은 청문회장에서 몰아내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도 국민의 소리에 부응해 더욱 엄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