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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관광객 신변 보장은 정부가 나서야

글 |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09-09-03 09:20:47

그동안 꽉 막혔던 남북 대화의 물꼬가 드디어 트일 전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청와대에서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일행을 30분 동안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청와대는 민감한 사안이라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받고,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설명한 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북한 조문단의 일정은 애초 1박2일 예정이었으나 이 대통령 면담 등으로 2박3일간 체류했으며, 이 대통령이 북한의 고위 당국자들과 만난 것은 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16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후 북측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와 5개항을 합의하고 돌아왔다.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활성화, 백두산관광 추진, 추석 이산가족 상봉, 육로통행 제한 해제 등 비록 민간 차원의 합의이긴 하지만 단절된 남북 교류의 단초를 마련했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고위급 조문단의 서울 방문에 앞서 지난해 12월 1일 북측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및 개성공단 등 체류 제한조치를 전격 해제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남북 화해 무드를 놓고 ‘통민봉관(通民封官)’의 전술, ‘사설(私設) 조문단’ 파견이라고 비난한다. 북측이 조문단 파견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정부와 협의한 후 승인받아야 하지만 이를 배제한 채 민간 기구인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서 추진했고, 또한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이 우리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님에도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합의한 뒤 마치 우리 정부에 그 실행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남북 관계의 개선을 원한다면 민간기구를 거칠지라도 남북 당국자 간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국가 간의 문제를 민간 업체가 합의했다고 해서 정부의 승인 없이 진행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북측은 대화 창구를 민간으로만 고집함으로써 ‘대미협상’을 위해 남북 관계를 볼모로 삼는다거나 우리 정부를 백안시(白眼視) 한다는 오해의 소지를 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당국자 간 대화의 상대로서 실체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회장과 북측의 아태평화위가 합의한 사항들 역시 제대로 구현되려면 남북 당국 간의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지난해 7월 11일 북한군의 총격으로 관광객이 피살된 이후 중단된 금강산관광의 재개는 반드시 당국자 간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당시 우리 정부는 관광객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금강산관광을 중단하고 박왕자 씨 피살에 대한 남북합동 진상규명과 북측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여태껏 아무런 조치도 없는 상태에서 민간 업체가 합의했다고 고무(鼓舞)될 수는 없다. 북측은 관광객 안전에 대한 당국자 간 구체적인 약속도 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취해주신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라고만 밝힌 상태다. 이를 믿고 대북관광을 추진한다면 또다시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 씨와 같은 억류 사건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당국자 간 확실한 관광객의 신변 안전 보장이 없는 한 대북관광을 재개해선 안 된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금강산관광을 안심하고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남북 당국이 신변 안전에 대한 보장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2004년 남북 당국은 공식문서로 ‘금강산관광지구 출입·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었지만 북한은 관광객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는 실질적으로 합의서 이행을 보장할 ‘공동위원회’ 구성이 북한의 비협조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신변 안전에 대한 실무를 처리할 공식 기구도 없는 위험스런 상황에서 대북관광을 계속해 왔었다.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철저한 대비가 우선돼야 한다. 수익사업이 목적인 민간  업체만 믿을 수는 없지 않는가. 정부 당국의 명확한 안전 보장책이 선결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정부가 북측에 요구한 사항들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억울한 주검이나 억류가 없도록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을 받아야 하며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004년 남북 당국은 공식문서로 ‘금강산관광지구 출입·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었지만 북한은 관광객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는 실질적으로 합의서 이행을 보장할 ‘공동위원회’ 구성이 북한의 비협조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