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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유물은 스스로 돈을 벌지 않는다”
오늘의 창조물 미래문화유산 정착 고민해야

  / 2009-07-30 11:33:54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5대 궁과 조선왕릉 등 역사 문화 자원을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한다고 밝혔다.

최근 문화 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뭇 달라졌다. 그 본래의 가치 이외에 산업ㆍ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 ‘과거의 자산’이 현재의 도시와 국가에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셈이다. 곳곳에 산재한 문화 유산을 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유럽이 그 좋은 예다.

이에 본지는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김효정 책임연구원을 통해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 유산의 효용성을 되돌아 보고,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 편집자 주

"인간 정신의 창조물은 발생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지속적인 사회적 노동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은폐된다. 19세기 문화의 운명은 문화가 바로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된 데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문화재’ 속에서 환상으로 나타난다. 환상 또는 망상, 환영은 이미 상품 그 자체이며, 이 상품 속에서 교환가치 혹은 가치형태는 사용가치를 은폐한다. (발터 벤야민)”

현대 문명의 혁명적 진격에 제동이나 걸던 천덕꾸러기 문화유산이 요즘처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주목받기는 처음인 듯하다. 모순되게도 현대문명의 결과로 얻어진 경제적 기반과 교통기술, 정보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세계관광시장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자 지금까지와 달리 핵심적인 관광 상품으로 떠오른 문화유산의 산업적·경제적 가치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제의 폐허가 오늘의 경제적·산업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

여기에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부되면서 문화유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즉 기능적 더욱 기능적, 혁신적 더욱 혁신적인 것을 외치며, 숨 가쁘게 낡은 것을 새것으로 교체해오던 도시들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생산력에 수반되어 나오는 여러 가지 신제품이나 혁신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낡은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아낌없이 버려지던 낡아 빠진 과거의 침전물을 통해 도시의 미래에서 오늘을 보게 되었으며, 끊임없이 버려지는 문명화 과정에서 과연 남아 있을 것이 무엇인가 반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방식은 종전의 완전교체 개발방식에서 과거 장소적 흔적과 기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기능이 완전 소멸돼 소생불가능한 부분만을 개선하는 재생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처럼 이유와 목적은 다르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과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유산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으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쓰임’과 ‘유용성’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우선 그 이면에 내포된 ‘무엇을, 어떻게’라는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사실 문화유산의 관광 상품화가 지역경제의 자극제로서 가치가 확산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활용 가능한, 속된 말로 돈이 되는 문화유산이 뭐가 없나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심지어 ‘없으면 만들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문화유산의 상품화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자행된 무차별적인 도시개발이 아쉽기만 하고, 그렇게 서둘러 지워버린 ‘과거의 자산’이 안타깝기만 하다. 몇 천만 명 관광객이 몰려들어 도시가 마비될 지경이다. 비명을 지르는 유럽의 도시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고, 조상 잘 둔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 못내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문화유산을 만드는 것도, 버리는 것도 모두 우리이다.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것들 중에서 일정 시간 이상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 존재한 것들만 획득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인간의 창조물이 문화유산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시간을 연속시키기 위한 현재적 노력이 필요하다.

혁신과 신상품의 유혹, 보다 찬란한 문명에로의 진입을 위해 우리가 창조한 생산물의 시간적 연속성을 빼앗는 행위는 곧 문화유산의 발생과 존재를 차단하는 행위로 과거가 없는 오늘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누구보다 앞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로부터 외면당하고 사라질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만들어 가는, 즉 혁신과 지움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도시적 또는 지역적 현실이라면 과연 현재 남겨진 유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을까? 문화유산을 통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모든 지역이 앞 다투어 돈 버는 유산을 꿈꾸는 것이 현실적일까?

앞서 발터 벤야민은 인간의 창조물은 발생에서 뿐만 아니라 저승에서 조차 사회적 노동을 요구한다고 했다. 즉 인간의 창조물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즉각적으로 새로운 기능에 대응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으며, 낡은 것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수많은 새롭고 편리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 나약해진 물성을 재생하기 위해 요구하는 비용과 노력이 될 수도 있다. 내용이야 어떠하든 문화유산을 만들고 남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이상의 사회적 비용과 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혁신과 진보가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부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최첨단의 문명을 만들고 있다는 긍지를 심어주었다면 문화유산을 만드는 과정은 아무런 사회적 편익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문화·정신적 가치’를 내세워 대접받기만 요구하는 현대문명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꾼이었다. 오늘날, 문화유산이 지역 경제 또는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모든 결과에 대가가 따르듯 문화유산을 단순히 과거의 침전물로 여기고 그것을 유지·전승하는데 노력하지 않는 자는 문화유산이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문화·정신적 혜택은 너무나 당연해 열외로 하고도 지금 많은 도시들은 유물 보존에 대한 숨은 노력의 대가로 문화유산을 통해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재화뿐 아니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도시 또는 지역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무엇을 계획하던 성공의 기반이 되고 있다.

영국의 글래스고나 에딘버러 등 도시재생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도시를 보면 언제나 도시의 배경에 잘 보존되고 유지되어온 문화유산이 버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에서야 우리는 사멸하기 시작한 것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혁명적 에너지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미래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쓸쓸하기만 하다.

문화유산 관광으로 먹고 산다 트집 잡는 유럽의 도시들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남은 것이라도 잘 이용해 보자’고 안간힘을 내어보지만 아무거나 집어 들고 ‘몇 백 년이 되었다’고 무심하게 내뱉는 그네들과 비교하니 한 없이 초라해진다.

‘있을 때 잘하지’란 말을 누구나 알 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예측은 쉽지 않으며, 또한 과거의 유물이 어떻게 소용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과거의 산물이 과거의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으며 그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유물은 절대 스스로 돈을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없어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을 접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유지·보완할 것이며, 오늘의 창조물을 어떻게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글. 김효정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