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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글 | 전병열 본지 편집인  / 2009-06-30 13:05:16

“지방자치단체장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다.” “나는 경제 전문가지 정치인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정치력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일부 단체장들의 일갈이다. 국민들의 ‘정치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불신이 도를 넘어 ‘정치혐오증’으로 전이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도 이같이 정치인으로 불리는 걸 회피할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6월 방미 출국에 앞서 방송한 라디오 연설에서 “민심은 여전히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엔 대증요법(對症療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이후 직·간접적으로 강한 정치 혐오감을 드러냈고, 때론 정치를 외면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정치는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지탄 받을 행태를 지속해 왔다. 18대 국회는 개원 후 직무를 수행한 기간보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일삼은 날이 더 많았다.

예컨대 15대 국회는 54일 일하면서 39일 싸웠고, 16대는 53일 일하고 3일 싸웠으며, 17대는 45일 일하고 싸운 날은 30일이었다. 이때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18대는 82일간이나 지각 개원을 한 후 ‘네 탓 내 탓’으로 정쟁을 일삼다가 간신히 예산만 처리했고, 임시국회 2개월 동안 겨우 12일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세비는 꼬박꼬박 챙겨갔다.

게다가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가 동원돼 성을 깨는 공성전을 방불케 한 지난해 12월의 국회 모습에 국민들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삼켜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단상점거와 몸싸움, 폭력, 농성 등 난장판 국회로 해외 언론에 대서특필 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샀는가 하면 쌍방간 고소·고발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더하게 했다. 정치의 장이 아니라 격투장, 농성장이 돼 버린 국회는 국민들에게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나게 했다.

다가오는 임시국회도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등을 이유로 단독국회를 열기로 했으며, 민주당은 ‘미디어 관련법’ 등 이른바 ‘MB악법’ 저지를 천명하고 나서 또 하나의 난장판 국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는 각종 사회개혁 법안 등 입법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까지 85개 중점 법안처리를 약속했지만 야당의 실력 저지로 무산되고 말았다. 더 이상 국회에 기대할 것이 없어진 것이다. 심지어 국회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거수기’나 ‘식물국회’가 돼버린 의사당은 여야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아전인수적인 ‘진흙탕의 개싸움’은 여전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정치가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정치 허무주의가 팽배하고 혐오감까지 드러낸다면 이는 민주국가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이다. 다양한 권력이나 집단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정치의 한 목적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국가에서 대립과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 않는가.

시급히 정치력을 회복하여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이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이 맡긴 책무이다. 하지만 이를 방기(放棄)하고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직무를 유기한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정치를 외면하고 자신의 의지만 관철시키려 한다면 독선과 오만의 정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다 만족시켜주기는 힘들다. 다만 이를 수렴해 설득하고 조율하면서 국민통합을 이뤄 나가야 한다.

‘경제 살리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겠다는 발상은 작금의 국내외 상황으로는 쉽지 않다. ‘부자정권’, ‘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 등의 비난이 일어나는 것도 정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갈등과 불만이 심화될수록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정치의 덕목은 포용이며 기술은 이해와 설득이다.

이를 바탕으로 진정성을 보인다면 갈등과 불만은 해소되고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특히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긴다면 존경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성공한 정치인이 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