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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고장’ 청송, 비경에 빠져볼까

폭포와 기암괴석 그리고 고택 정취의 향연

박동진 기자 (pdj@newsone.co.kr)  / 2009-06-02 18:14:42

태백산맥의 끝자락을 바위로 솟구쳐 비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옥수를 흘러내리고 있으니 발 닿는 그곳이 바로 천상이 아닐 수 없다.
신선의 세계로 다가온 경북 청송은 이렇듯 속세와는 인연이 멀어,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송림을 비롯해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뤄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경북 청송으로 초여름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신이 빚은 예술 ‘주왕산’
경북제일의 명산인 주왕산(720.6m)은 한반도 산맥의 중심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국토 동남부로 뻗어나온 지맥에 위치한다.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이다.
수백미터 돌덩이가 병풍처럼 솟아있어 신라 때는 석병산이라 부르다가 통일신라 말엽부터 주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왕산은 4군데의 폭포 외에 동굴, 대전사 및 부속 암자들이 있어 천혜의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했다는 것이다. 사명(寺名)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주왕산에는 대전사 말고도 볼거리가 다양하다. 대전사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旗岩)을 비롯해 이곳 주방천 좌우로 도열해 있는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제1, 2, 3폭포가 한데 어우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주왕산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도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인근에 수백 년은 됨직한 왕버들이 물 속에서 자라고 있는 주산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월외 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으며 주왕산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情을 사고파는 시골 5일장
인심과 정이 넘치는 5일장은 또 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청송군에는 청송장 외에 진보장(3일, 8일), 부남장(3일, 8일), 도평장(현동장·5일, 10일), 안덕장(4일, 9일), 화목장(현서장·1일, 6일) 등 5일장에 6개나 열린다. 이 중 청송장과 진보장의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청송장은 청송읍내 한국통신 앞 도로변에 선다. 장날에는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장이 서며 청송특산물인 고추, 사과를 비롯한 다양한 농산물 등이 거래된다.
도평장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3시까지 장이 서며 포항과 가까운 지리적 잇점으로 인해 수산물이 싱싱하고 계절별 채소와 각종 생필품 등을 사고 팔 수 있다.
부남장에서는 남면민과 인근지역 주민들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특산물과 생활용품 등 온갖 것들이 장마당을 메운다.

과거로 가는 시간 창고 ‘청송민속박물관’
청송민속박물관은 15,120㎡(4574평) 부지에 연건평 700.45㎡(212평), 전시면적 397㎡(120평)으로 1999년도에 건립된 1종 전문박물관이다. 이곳은 내부전시와 야외전시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전시실로 들어서면 청송지방에서 절기별로 행해지던 농가의 다양한 세시풍속을 자료와 모형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모습이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인형 전시회를 보는 것 같다.
야외전시장은 주막, 물레방아, 연자방아, 조산, 입석, 솟대, 원두막 등을 전통의 모습 그대로 연출해 놓았다.
청송민속박물관은 청송의 민속문화를 조사·연구·보존·전시함으로써 향토문화의 형성과정의 고찰과 함께 올바른 지방문화의 이해를 돕고 있다.

호젓한 전통한옥 체험 ‘송소고택’
파천면 덕천리에 자리한 송소고택((松韶古宅·경북 민속자료 제63호)을 찾으면 옛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옛날에는 궁궐보다 더 큰 집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아흔 아홉칸 대갓집으로 조선시대 사가(私家)에서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집이었다.
조선 영조 때 만석꾼으로 불리던 심처대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지은 이 고택은 아흔 아홉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보기 드문 고택이다.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인지 이집은 송소 고택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심부잣집’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12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대문을 열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나긴 하지만 솟을대문의 위엄 있는 자태는 그대로 남아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건 헛담. 안채에 드나드는 여자들이 사랑채에 기거하는 남자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지은 간이 담이다. 헛담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오는데 집안 어른이 기거하던 큰 사랑채와 큰아들이 기거했던 작은 사랑채로 나뉘어 있다.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는 사랑채 뒤편에 살포시 ‘숨어’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ㅁ’자형. 문간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방과 부엌이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두지, 고방 등과 연결된다. 대문을 들어서 왼편에는 첩이 기거하던 별채가 따로 마련돼 있다.
고택의 밤은 아주 색다르다. 은은한 문살 사이로 달빛이 새어들고, 집 앞에 흐르는 개울 물소리, 논둑에서 합창하는 개구리 소리 등 도심에서는 듣지 못하던 자연의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다. 새벽 닭 울음소리는 시멘트벽에 찌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